-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이원복(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기축(己丑),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내외 경제전망은 그리 밝지 않습니다. 소의 해로서 행동거지에 우공일보(牛公一步)의 자세와 우공의 덕목을 본받을 때인 듯 합니다.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질병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비 온 뒤 지면이 더 굳어지듯, 어린이들이 병을 앓고 나면 똑똑해집니다. 겨울을 겪은 나무가 단단하니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긍정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마음과 정신도 마찬가지이니 의기소침(意氣銷沈)된 우리들을 고양(高揚)시켜 축 처진 어깨에 힘을 부여하며, 꿈과 희망 그리고 자신감을 주는 그 무엇이 절실 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금년도 중점과제의 목표가 ‘문화로 기운생동, 2009 대한민국’이니 3대 중점과제의 하나가 ‘문화로 여는 행복한 세상’입니다. 지난해 5월부터 시작한 국립박물관의 무료화도 금년까지 지속됨은 같은 맥락입니다.
한 곡의 음악이나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은 찌들고 지친 이들에게 절망을 벗어버릴 새로운 힘을 줍니다. 올해는 베토벤(1770-1827)의 스승이자 ‘교향곡의 아버지’로 지칭되는 오스트리아 출신 하이든(1732-1809)의 2백주기(週忌)가 됩니다. 웅혼한 ‘천지창조’는 절대자인 창조주에 대한 영광과 찬미만이 아닌 신의 모상대로 탄생한 인간에 대한 자신감의 회복도 포함합니다. 우리 국악 가운데 궁중의식에 사용된 아악(雅樂)의 백미인 ‘수제천(壽齊天)’은 왕실의 위엄과 장엄을 드러내는데 느림과 유장함 미학의 극치로 이를 듣노라면 일상의 소요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이에 서구인들이 ‘천상의 음악’으로 칭합니다.
금년은 병자호란 때 청(淸)과의 화의를 극력 반대했고 적장의 심문에 굴하지 않고 이역 하늘 아래서 윤집(尹集,1606-1637) · 홍익한(洪翼漢,1586-1637)과 함께 장렬한 최후를 맞은 삼학사(三學士)의 한 사람인 오달제(吳達濟,1609-1637)의 탄생 4백주년이 됩니다. 이분들 중 가장 젊은 29세 나이로 순국한 오달제는 묵매(墨梅)에도 뛰어났습니다. 해주오씨 문중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그의 유작 <묵매>에는 1705년 숙종(肅宗)이 쓴 ‘둘이 없는 신묘한 묘필’이며 ‘빛나는 절개와 의리’, ‘밝게 비추는 효성과 충성’을 극찬한 어필(御筆)과, 1756년 영조(英祖)가 하사한 시를 후손이 화면에 옮겨 쓴 제시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이른 봄 꽃망울을 터트리는 매화의 고고함과 지조는 우리 선비의 지조와 해맑은 마음 그대로이니 그림은 이를 그린 그 사람이지요.
또한 올해는 ‘조선의 화성(畵聖)’으로 지칭되는 정선(鄭敾,1676-1759)의 탄생 333년이자 타계 250주기가 됩니다. 60년 넘는 화력(畵歷)으로 생존 시 화종(畵宗)으로 지칭되었으며 진경산수(眞景山水)를 이룩해 한자문화권에서 우리 그림의 특징과 독자성(獨自性) 및 위상을 선명히 드러냈습니다. 적지 아니한 명품을 남겼으니 그의 유작 가운데 1751년 76세 노필의 완숙미를 보이는 장마에 씻긴 인왕산의 웅혼한 풍치를 담은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 1734년 59세에 그린 <금강전도(金剛全圖)>(국보 제217호) 등은 파천황(破天荒)의 그림 세계입니다. 이들 그림 앞에 서면 강한 힘이 감지되니 이는 18세기 조선왕조 문화 저력 그 자체란 생각이 듭니다.
2009년은 박물관에게 의미 있는 해입니다. 우리나라 박물관의 역사가 1백년이며, 현재 국ㆍ공ㆍ사립박물관 수가 6백을 넘습니다. 대한제국에서 일제강점기에 앞서 1908년 창경궁 내 제실박물관(帝室博物館)을 건립해 그 이듬해인 1909년 11월부터 일반에게 공개했습니다. 명실공히 근대적 의미로 우리 박물관이 100년 되는 해입니다. 이에 국립중앙박물관은 ‘한국 박물관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지난해 11월 3일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 선포식을 갖고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발 빠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100년의 발자취를 정리하고, 미래 바람직한 박물관의 발전을 도모하는 여러 기념사업으로 100주년 기념식, 세계 유수 박물관장 포럼, 국제학술대회, 100주년 기념 특별전, 뮤지엄 엑스포, 100년사 편찬, 기증 · 기부운동, 100주년 기념 상징물 건립 등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은 결코 고정된 공간이 아닙니다.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쉼터이며, 익살과 낙천적인 민족 정서와 생명력의 재확인, 명품과 걸작을 통해 고갈된 창의력이 소생되며 회복케 하는 백수백복(百壽百福)이 깃든 공간입니다.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가 만나는 문턱 낮은 복합문화공간인 국립박물관에 여러 분 모두를 초청합니다. 한 번 들려주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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