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50대 가장들에게 직장동료나 주변의 아는 사람들이 묻지 말아야 할 두가지가 있다. 한가지는 자녀 합격여부다. 고입 연합고사나 대학입시 합격을 묻는다면 실례란다. 또 하나로는 자녀 취직여부를 묻는다면 벌금감이란다. 합격여부는 그렇다 치더라도 취직됐냐고 인사말을 건냈다가는 벌금을 내야할 정도로 살벌한 사회가 됐다. 물론 우스갯소리다.
취업한파가 수년째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해 몰아닥친 국제금융위기는 고용시장을 더욱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엊그제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12월 고용동향을 보면 5년만에 마이너스로 반전됐다. 쇼크 그 자체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을 졸업했다고 한들 취직은 무슨 취직이 됐겠는가.
또 우울한 소식으로 이달 들어서 실업급여 신청자가 100만명을 돌파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즉, 실직했더라도 실업급여조차 신청할 조건이 안되는 비정규직을 합하면 그 숫자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처럼 일자리 문제가 좀처럼 호전되지 않자 캥거루족 또한 늘고 있다.
캥거루족이란 캥거루가 새끼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것처럼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을 못해 부모님께 얹혀 살거나 취직했다 하더라도 자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의지하며 사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최근에는 ‘십장생’이라는 은어까지 등장했다. 10대들도 장래에 백수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는 줄임말이라니 쓴웃음이 절로 난다.
취업난이 계속되면서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삼팔선(38세 사표) 사오정(45세 명퇴) 오륙도(60세까지 근무하면 도둑)라는 은어가 유행했지만 십장생까지 등장할 줄은 몰랐다. 취직이 힘들어지자 이태백들 가운데는 아예 구직을 단념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들 구직단념자는 실업자도 아니다.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돼 실업통계 숫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통계청은 경제활동인구를 취업의사(구직활동) 여부로 결정하기 때문에 구직단념자는 실직자가 아닌 비경제활동인구인 것이다.
이러한 고용시장 상황은 또 ‘메뚜기족’이라는 신조어를 유행시키고 있다. 메뚜기처럼 이곳 저곳으로 직장을 옮겨다니는 것을 말한다. 인턴사원으로 근무하다가 정규직원이 되지 못하고 그만둔 뒤 다른 직장에 또 인턴사원으로 근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아르바이트 형태의 취업이다.
어떻든 미증유의 경제난속에서도 민족의 대명절인 설은 어김없이 찾아 왔다. 앞으로 엿새후면 설날이다. 그러나 설 대목 경기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다. 그나마도 대형마트로 사람들이 몰리는 바람에 재래시장은 더욱 을씨년스럽다. 재래시장에서 대목장을 포기한지 오래지만 그래도 몫돈 좀 만져보려던 상인들의 소박한 바람은 사그라든지 오래다.
설날이 반갑지 않은 사람들이 또 있다. 이태백과 사오정들이다. 심각해진 대인기피증은 친지를 만나기가 두렵다. 조카들 세뱃돈 챙기는 일보다도 어디 다니느냐고 또는 취직됐냐고 물을까 겁난다. 벌금을 물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경제난은 사회복지시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년같으면 연말연시나 양 명절에는 소외계층이나 사회복지시설에 온정의 물결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번 설에는 사회복지시설도 유래없이 썰렁한 분위기다. 부자들의 사회적 책임이 절실한 때다.
지금의 경제위기는 터널에 비유되고 있다. 깜깜한 암흑속으로 진입했지만 언젠가는 환한 빛이 보이는 터널 끝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 끝을 짐작하기 어렵기 때문에 두려울 뿐이다. 경제난 타개에 정부도 발벗고 나섰다. 청와대는 지하 벙커에 비상경제상황실을 설치했다. 마치 전시작전상황실을 방불케 한다.
아무튼 올해는 사오정들이 더 많이 생겨날 것 같다. 주위에서 따뜻하게 감싸줘야 한다. 이태백들도 때빼고 광내서 설을 쇠지는 못할 망정 희망을 담은 떡국을 먹어보자. 어둠이 짙기에 새벽이 더 환하게 밝아온다. 내년인지 내후년인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불황의 끝은 있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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