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재벌은행법

진 봉 헌(전 전북지방변호사회장)

본격적인 겨울이 다가오기 전에 경제 한파가 먼저 도래했다. 겨울의 한복판에 있는 지금 국민들은 온난화된 겨울추위보다는 경제위기로 인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더 떨고 있다. 겨울의 한파는 봄이 오면 물러나지만, 이번에 다가오는 경제 한파는 2-3년간은 지속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더 우울한 이야기는 그 경제 한파가, 지방, 중소기업, 영세자영업자, 비정규직등 소외계층에 더 큰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의 부도와 개인의 파산이 속출하고 있는 현실에 억장이 무너진다. 이 추운계절에 막다른 골목에 이른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과 아픔이 어떠할 지 눈에 선하다. 지금 당장 서민에 대한 즉각적이고 포괄적인 구제책이 시급하다. 생존의 갈림길에 선 무직자, 실직자, 폐업한 자영업자에 대한 생활비와 주거비, 피복비, 학비에 대한 부조와 재활프로그램의 작동이 즉각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확실하게 이와 같은 경제위기를 초래한 원인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10년 전 외환위기를 초래하여 무수한 사람들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정부가 또 다시 이러한 위기를 자초한 것을 용서할 수 없다. 용서해서도 안 된다. 지난 외환위기에 대한 책임자 처벌이 용두사미로 끝나고, 원인에 대한 철저한 검중이 이루어 지지 않은 것이 이 번 경제위기의 근본원인이다. 책임을 엄하게 묻지 않는데 누가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겠는가. 능력이 없는 자, 사심을 가지고 행정을 하는 자는 두 번 다시 공직을 넘보지 못하도록 책임소재를 명명백백하게 가리고 가혹할 만큼 엄하게 처벌하여야 한다. 그런다 한들 아무런 잘못이 없이 막다른 골목에 이른 사람들보다 더 억울하겠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금융시스템 전반에 대하여 철저한 검증과 제도개선을 하여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책임인지, 노무현 정부의 책임인지에 대해서는 국민들은 관심이 없다. 만일 정치권이 그와 같은 구태의연한 책임공방이나 벌린다면 이 나라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여야 할 것 없이 거국적으로 나서서 국정조사를 실시하여야 한다.
국정조사의 대상과 범위도 단순하다. 국정조사의 목적이 10년 전 외환위기를 당하고도 또 경제위기를 당한 사실에 대한 반성과 재발의 방지에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부끄럽게도 이 번 경제위기와 10년 외환위기는 너무나 흡사하다. 과도한 단기외채가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멍청하다고 손가락질을 당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단기외채가 누적된 것은 은행들이 단기외채가 금리가 더 싸다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차입하여 대출경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연봉 10억대의 은행장과 임원들이 단기외채의 위험성, 환율의 위험성이라는 초보적인 리스크관리도 못했다는 말인가. 외환보유고의 절반에 가까운 2000억 달러의 외채를 거의 단기외채로 얻어 온 은행들은 이 번 경제위기의 주범이다. 또 은행을 감독하는 금융당국은 그동안 어디 갔다 왔는가. 남의 나라에서 초단기 빚을 얻어다가 무한경쟁을 하며 대출해준 어마어마한 대출금은 아파트 값을 천정부지로 올리는 부동산투기 광풍과 묻지 마 해외투자펀드 광풍을 불러일으키다가 광풍이 사라지자 쪽박 짠 빚쟁이만 양산하였다. 과다한 가계부채, 아파트 값의 폭등, 과도한 토지가격의 상승 등 우리나라 경제의 악재 역시 은행들이 주된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그것도 남의 나라에서 빚을 얻어다가 그런 일을 조장했으니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경제위기와 10년 전 외환위기의 유일한 차이가 있다면 외환위기 때는 종합금융회사가 파산하고 뒤이어 기업이 부도났다면, 이번에는 은행이 유동성 위기의 수렁에 빠져 있고, 가계가 파산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은행 발 경제위기가 현재진행형이다 라는 사실이다. 시중은행들은 2월까지 정부와 한국은행에서 빌린 외화 정책자금중 167억 달러를 갚아야 한다. 이미 은행들은 금융위기 이후 정부와 한국은행으로부터 총510억 달러를 수혈 받은 바 있는데 아직도 정부와 한국은행의 구호 손길을 기다리는 다급한 처지에 몰려 있다. 그리고 이러한 외화유동성 불안은 원_달러 환율의 급등으로 이어져 수입물가의 상승을 초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벌은행법을 통과시키려는 현 정부는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선 재벌의 돈이라도 끌어다 쓰자는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현재의 금융위기의 본질에 비추어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며 국가경쟁력을 근저에서 무너뜨릴 위험성이 매우 크다. 현 정부가 지향하는 모델은 골드만삭스, 메리린치 등과 같은 세계적인 투자은행인데 이들은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파산 또는 인수.합병된 실패한 모델이다. 또 핵심적 내용인 금산분리 완화도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벽을 허물겠다는 것인데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하면 은행은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기업의 부실이 은행의 부실로 이어진다면 국가경제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또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으로 유출되어 그나마 건실한 기반을 유지하고 있는 제조업마저 부실화시킬 위험성이 높다.
재벌은행법은 국가경제를 거꾸로 후퇴시키는 악법이다. 지금은 현재의 경제위기에 대한 전면적인 국정조사를 실시하여야 할 시점이다. 경제위기를 초래한 원인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나라의 금융시스템 전반에 대하여 철저한 검증을 하여야 한다. 금융관련법 개정은 그 뒤에 금융시스템의 제도개선 차원에서 전 국민 토론을 통하여 추진하여야 할 입법사항이다. 일 처리의 선후가 바뀌고, 국가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갈 위험성이 큰 재벌은행법의 강행처리는 유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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