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국가 경쟁력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60년대 교과서에는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개미는 겨울이 닥치기 전에 열심히 일하고 모아 두었다가 겨우내 양식 걱정 없이 편안하게 지내는 데 베짱이는 한 여름에 시원한 나무그늘에서 노래나 부르고 실컷 놀고 지내다가 겨울에는 먹을 양식도 없어 개미에게 구걸하러 온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초창기에 근로의 중요성을 고취하려는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우화이다. 그런데 “신판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에서는 개미와 베짱이의 신세가 뒤바뀌었다. 개미는 열심히 일하고 베짱이는 노래 부르고 노는 것은 똑 같은데 개미는 단순 노동으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반면 베짱이는 여름에 부른 노래를 판권으로 팔아 겨울에도 오히려 더 많은 소득을 올리고 개미를 도와준다는 것이다. 잘 만들어진 영화 한편이 자동차나 가전제품 수만 대를 수출하는 것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듯이 문화산업이 고부가가치 상품을 창출하는 현 세태를 반영한 우스개이다.

피터 드러커는 그의 저서 “21세기 지식 경영”에서 “21세기는 문화산업에서 각국의 승패가 결정될 것이고 승부처는 바로 문화이다. 문화는 단순히 보고 즐기는 삶의 질에 국한되는 테마가 아니라 경제발전의 주요한 축이자 국력의 척도이다“ 라고 갈파한바 있다.

유네스코도 21세기를 문화의 시대로 예견한 바 있는데 이는 21세기 글로벌 정보화 사회에서 문화가 한 나라의 상품과 서비스에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함으로써 국제경쟁력을 제고하는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문화가 국가경쟁력에 직결된다는 사실은 핀란드에서도 실감할 수 있었다. 핀란드 주재 대사로 헬싱키에 3년간 근무하면서 놀란 것은 핀란드가 유럽국가들 중에서도 법정 근무시간이 가장 짧고 휴가는 가장 긴 편인데도 일인당 국민소득이 4만 불이 넘고 수년간 국가 경쟁력이 세계 일위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핀란드에서는 일 년 내내 수많은 문화 행사가 개최되는데 특히 백야현상으로 밤이 거의 없는 여름이면 전국 방방곡곡에서 지역별로 특화된 각종 문화행사가 개최되어 일 개월 이상의 여름휴가를 즐기는 핀란드국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있다. 바닷가에 지어진 멋진 성에서 한 달간 벌어지는 사본리나 오페라 페스티발이나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쿠오모 챔버뮤직 페스티발은 유럽 및 세계 여러 나라의 음악애호가들을 끌어들여 수개월 전에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기가 어려울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핀란드에서 수준 높은 문화행사들이 전국적으로 동시 다발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배경에는 핀란드의 문화지원정책이 많은 우수한 지휘자들과 음악가들을 배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핀란드는 인구가 520여만 명에 불과하지만 북유럽 최초로 1882년에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창단되었고 인구 3만명에 불과한 지방에도 오케스트라가 운영될 정도로 예술활동이 활발한데 이는 일인당 연간 100불에(미국은 6불) 달하는 문화 지원금의 역할이 크다. 문화지원금 외에 의무교육의 일환으로 예능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별도의 개인 레슨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가 있어 재능이 있어도 돈이 없어 재능을 발굴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보장하고 있다.

문화행사의 활성화는 일석 사 오조의 효과를 올리고 있다. 우선 국민들의 문화욕구 충족을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글로벌 시대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필수적인 창의력을 키우는데 기여한다. 또한 국민들의 해외여행 수요를 줄이고 해외 관광객 유치를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 하고 무역외 수지를 개선하는 데도 큰 몫을 한다.

핀란드 문화정책의 성공은 우리나라와 전북에도 귀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높은 문화적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고 일본,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지역에서 한류의 성공은 우리의 문화 경쟁력을 검증해준바 있다. 예부터 예향으로 알려진 전라북도는 문화자산의 보고이다. 훌륭한 문화자산을 잘 활용해 나간다면 문화의 세기인 21세기에 국제경쟁력을 제고하는데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 각급 지자체를 중심으로 지역 문화행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러한 문화행사가 지역만의 잔치로 끝나지 않고 전국적이고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가고 경제적 파급효과를 거양하기 위해서는 보다 창의적이고 치밀한 계획과 지원이 요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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