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미네르바

미네르바(Minerva)는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전쟁과 지혜의 여신이다. 지금까지 필자에게 미네르바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이 사법연수원 시절이었다. 필자가 사법연수원에 다니던 시절에 연수원 생활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제공하는 이른바 ‘사법연수원 소식지’가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기억한다. 연수생들에게 건전한 토론마당을 제공하고 연수원 생활에 필요한 정보와 의견을 교환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소식지를 만들기로 하고 그 이름을 공모하였는데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는 몰라도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지혜의 신인 ‘미네르바’가 소식지 이름으로 낙점되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격주로 발행되던 ‘미네르바’에는 연수생들의 각종 동호회 활동이나 연수원 생활의 고충과 애환 또는 연수원의 수업일정 등을 게재하여 연수생들에게 유용하게 이용되던 기억이 새롭다. 따라서 필자에게 ‘미네르바’는 빛바랜 사법연수원 시절 추억의 한 편린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인터넷에 우리나라 경제전망 등에 관하여 비관적인 기고를 하던 한 블로거가 구속되었다.
미네르바는 150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대표적 투자은행 중 하나인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을 예측하여 상당한 내공을 쌓은 경제학의 고수(?)로 이름을 날리더니 계속해서 한국의 종합주가지수가 500까지 떨어질 수 있다거나, 중소기업의 80%가 도산할 가능성이 있다거나, 아파트값이 폭락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인터넷에 쏟아내 그렇지 않아도 위축되어 있는 한국경제에 상당한 심리적 부담을 주었다. 그가 지난 12월 '정부의 달러 매수금지 명령'이라는 글을 인터넷에 유포하였는데 그 내용들이 전기통시기본법 47조 1항을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검찰에 체포되어 구속되자 그의 구속을 놓고 또 다시 한국사회가 진보와 보수진영으로 분열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찬반양론이 팽팽하다.

미네르바가 체포되어 구속되었을 때 필자는 세 번 놀랐다. 미네르바가 인터넷에 쏟아낸 글의 내용으로 보아 분명히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월가의 금융회사에 재직하던 대단한 경제학 식견이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는데 예상과는 달리 전문대 졸업의 30대 무직자라는 사실에 한 번 놀랐고, 요즘 엄격해진 법원의 구속영장처리실무에 비추어 설마 구속까지 되겠는나 하는 의구심을 깨고 법원이 영장을 발부한 사실에 또 한번 놀랐으며, 영장을 발부한 판사의 신상이 인터넷에 나돌아 다시 한 번 더 놀랐다. 자신들의 의견과 다른 결정을 하였다는 이유로 영장발부에 대한 법률적 관점의 비판이 아닌 판사 개인에 대한 인격적 모욕을 가하고 신상을 공개하여 협박하는 것은 법치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
어떤 일이 벌어지면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근거와 이유를 제시하면서 가장 타당한 결론을 도출해 내는 토론문화가 정착되지 못하고 상대방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와 마타도어를 통하여 일방적으로 뭉개버리려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사고방식이 인터넷이라는 가공할 위력을 가진 매체를 통하여 더욱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닌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미네르바’는 이 사건 이후 자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아달라고 하소연하면서 자기의 글이 온라인에서만 통용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라고 말하였다는데 혀를 찰 노릇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필자는 미네르바가 인터넷 매체의 위력을 과소평가하여 별다른 생각없이 그런 글을 썼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인터넷에 글을 올렸는데 자신의 글에 대하여 엄청난 사회적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우쭐해진 나머지 조금씩 도취되어 점점 더 충격의 강도가 높은 내용의 글을 쓰게 된 것이 아닐까?
아무튼 정치권과 진보 보수 양대 진영은 미네르바의 구속과 법적 처벌을 두고, 나아가 사이버 모욕죄의 신설을 놓고 날선 공방을 벌일 것이 분명해 보여 미네르바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2009년 새해 벽두에 정치적 사건의 한복판에 서게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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