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화두는 단연 미국자본주의의 몰락이다. 미국 안과 밖 혹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 간 약간의 시각차는 있으나 신자유주의의 상징인 미국자본주의가 몰매를 맞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그들이 조장한 금융위기 탓에 전 세계가 고통을 받는 와중에도 이를 아랑곳 않는 미국 금융기관 CEO들의 도덕적 해이가 분노를 사는 중이다.
혼 날만도 하다. 망하거나 망해가거나 하는 미국 금융기관 수장들은 빚 잔치는 물론 천문학적 숫자의 성과급 나눠먹기, 자가용 비행기 운항 같은 초호화 생활 등등 지탄받을 행동을 서슴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나 의회가 성토하는 분위기 속에 며칠 전에도 정부돈 받아 연명하는 AJG가 성과급 잔치를 강행하는 등 파렴치한 행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탐욕의 화신에 다름 아니다. 남이야 죽든 살든 나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자본주의 타락이요 천민자본주의의 전형이다. 사태가 이런 데도 책임지는 사람도 안 보인다. 미국 자본주의 타락은 몇 년 전 엔론 월드컴 사태 때도 마찬가지였다. 거액의 분식회계와 회계부정은 당해 기업의 도산은 물론 주변에 많은 피해를 주었다. 반성은 없었다. 시끄럽기만했다.
원래 미국식 자본주의가 이런 것은 아니었다. 이른바 청교도 정신이 미국 건국과 이후 눈부신 발전의 원동력이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청교도 정신에서 기독교라는 색채를 빼면 아주 건전한 윤리도덕이 떠오른다. 즉 청교도들은 말 그대로 ‘깨끗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로마가톨릭의 부패에 반기를 든 그들은 자기 죄를 늘 반성하고 소명의식과 경건주의로 일관된 삶을 살았다. 근면, 자비, 금욕, 절제 등은 그들이 받드는 미덕이다. 병자를 간호하고 이교도까지를 포함한 신의 백성들을 구원하고자 했다. 개인의 이익보다는 공동체의 번영이 우선이었다.
이 청교도 정신은 오늘날 미국을 세계 최강국의 반열로 올린 기반이었다. 법 제도는 물론 현실정치에서도 이 청교도 정신은 늘 살아 숨쉬었다. 물론 경제생활도 이 테두리 안에서 이뤄졌다. 두터운 미국 중산층은 청교도 정신의 가장 강력한 실천자였다.
물질만능과 배금주의가 판을 치는 오늘의 미국은 청교도 정신의 쇠퇴에 다름 아니다. 많은 위기 때마다 미국인들은 청교도 정신에로의 복귀를 외쳤다. 하지만 지금은 이 호소도 별로 먹히지 않는 듯 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미국 자본주의 타락은 남의 일이 아니다. 미국 본뜨기에 일로 매진해 온 우리나라도 이 급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선 경제가 미국발 금융위기 때문에 죽을 쑤고 있다.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를 외치며 -사실은 아메리칸 스탠더드이지만- 미국 따라하기에 급급했던 업보다. 경제만이 아니다. 천민자본주의도 그대로 들어왔다. 오로지 돈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가계 대출은 가파르게 늘고 저축률은 급전직하다. 자본주의를 받치는 윤리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 대로는 안 된다. 미국 청교도 정신부터 되돌아 볼 때다. 공동체 의식부터 회복해야 한다. 최근 공무원이나 대기업, 금융기관 임직원들이 급여를 깎아 일자리를 지키고 만드는 것은 작은 시작이다. ‘나’라는 좁은 우물 속을 벗어나 뭉쳐야 산다는 평범한 진리를 실천하는 좋은 기회다. 징발이니 뭐니 불만도 없지 않겠지만 다 같이 살자는 데 인색하면 안 된다. 검약과 근면, 절제, 저축도 실천에 옮겨야할 덕목이다. 이런 사회 기풍이 회복된다면 이 경제위기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미국은 지금 우리의 반면교사다. 극단적인 자본주의의 탐욕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우리는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 이왕 미국을 베낄 바에는 그들의 선조들이 가졌던 청교도정신까지 베껴야 한다. 천민자본주의는 버리자. 배울 건 배우고 버릴 건 버리면 된다. 여기에 우리 전통 미덕을 접목하면 새 패러다임도 가능하다. 그래서 한국 자본주의가 장래 글로벌 스탠더드가 되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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