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뉴딜을 국정 최우선 의제로 전환해야

백 종 만(전북대 교수)

1996년 전 국민의 68.5%를 차지했던 중산층은 2000년 61.9%, 2006년 58.5%로 감소했다. 반면 빈곤층은 1996년 20.3%에서 22.4%(2000년), 23.6%(2006년)로 증가했다. 가구주의 소득의존도는 빈곤층 50.0%, 중산층 65.6%, 상류층 59.7%로 중산층은 주로 가구주의 근로소득에 의존하고 있고 보유자산이 적어 실직 등으로 한번 빈곤층으로 추락하면 중산층으로 다시 복귀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노동연구원은 올해 경제성장률이 정부 예상대로 -2%에 그칠 경우 공식실업자는 96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이런 추세라면 중산층→서민층→극빈층으로 이어지는 계층 하향이동이 심화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중산층의 추락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정부는 3월 23일 중산층 복원 프로젝트로 휴먼뉴딜정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중위소득 50∼70%인 중하층 213만가구와 최저생계비 이상∼중위소득 50%인 차 상위 계층 84만가구 등 약 300만 가구를 중산층 키우기 정책의 표적인구 집단으로 설정하였다. 휴먼뉴딜은 △중산층 탈락방지 △중산층 진입 촉진 △미래 중산층 육성이라는 3대 핵심 정책방향으로 구성되었다. 이를 위해 추경 등을 통해 일자리 유지·창출 정책을 펴고, 공교육 강화를 통한 사교육비 경감과 주거비 및 교육비 부담 완화 등의 정책을 적극 추진한다는 것이다. 특히 차상위 계층을 위해 기존 사회안전망 혜택을 확대하는 한편, 직업교육훈련 강화, 고용지원 서비스 확대 등의 정책도 펴기로 했다. 또 아이디어만으로 손쉽게 창업할 수 있는 1인 창조기업도 활성화 한다고 한다.
정부가 제시한 휴먼뉴딜을 구성하는 정책내용은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들 정책은 기존에 나온 복지와 교육, 노동 관련 정책들을 `휴먼뉴딜`이라는 국정 의제로 묶은 것이다. 하지만 ‘휴먼뉴딜’을 ‘녹색뉴딜’과 함께 국정 아젠다의 두 축의 하나로 천명함으로써 이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자는 정권의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기존 정책들이 `휴먼뉴딜`로 묶이면서 시너지 효과를 낼 지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가 될지 여부는 정부가 ‘휴먼뉴딜’을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진정성을 가지고 추진하는가에 달려 있다. 휴먼뉴딜 관계 장관회의와 휴먼뉴딜 당정협의회 등 휴먼뉴딜 추진체계를 구축키로 한 것을 보면 일단은 확실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중산층을 살리겠다며 제시한 정부의 정책분야와 기본방향이 현 정부가 집권초기부터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각종 정책들과 정반대의 것이기 때문에 과연 휴먼뉴딜 정책이 기존 정책과 상충되지 않고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 것인지 의혹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중산층 탈락방지 정책을 말하지만 이와 모순되는 정책이 중점 정책으로 추진되고 있다. 일자리 유지방법으로 내세운 ‘일자리 나누기’는 임금을 감소시키고 해고를 줄이는 것으로 감소 된 임금을 보전하고 대신할만한 소득보장정책의 개혁과제는 보이지 않는다. 주거, 교육, 의료비 등을 가계 지출을 감소시키겠다는 정책도 기존 정책과 상충된다. 부동산 규제의 완화 내지 철폐가 주택 가격을 하락시킬 것인가? 사교육을 줄이고 공교육을 강화한다고 하지만 특목고, 자율형사립고 등의 정책이 과연 공교육을 강화하는 해법이 될 수 있는가? 민간건강보험을 활성화하고 의료산업의 규제를 풀어 의료를 산업화 하겠다는 정책이 의료비의 절감 정책과 어떻게 양립할 것인지 구체적인 플랜이 없다. 중산층 진입촉진 정책 역시 모순이다. 개인역량을 보존, 강화하고 일을 통해 빈곤탈출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일자리와 효과적인 교육정책이 필요하다. 종합부동산세를 거의 폐지하는 수준으로 변화시키고, 세금을 감면해주면서, 복지비용을 어디에서 조달할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도 없다. 미래중산층을 육성정책도 마찬가지이다. 공교육 경쟁력 제고와 아동/청소년을 위한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정책과 교육을 시장경쟁에 내모는 정책이 과연 조화될 수 있을까?
정부에서 발표한 휴먼뉴딜정책은 이명박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해온 시장화 정책과 시장만능주의를 전면적으로 수정하지 않는 한 국민을 속이는 사기극에 불과하다. 휴먼뉴딜 정책을 국정의 핵심 아젠다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의료, 교육, 주거, 사회보장의 영역에서 추진되고 있는 시장논리가 과잉 지배하는 제반 정책들을 우선 철회한다고 선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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