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을 한다는데,

*, 이성계는 고려가 기울 무렵 오목대에 올라 자신의 웅지를 하늘과 조상에게 알린다. 그 후 그는 결국 조선을 건국하고 태조에 오른다. 태조는 건국 초기에 새로운 권력의 재편에 고심하게 되고, 그래서 태조는 신흥세력을 키울 거점으로 본향인 전주에 경기전을 세우기로 했다. 전주의 경기전은 태조가 조상들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설립한다는 명분을 앞세웠지만 실상은 개국 초기 신 권력의 중심지로 활용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그러나 이를 눈치 챈 구세력들의 반대가 극심하였고, 경기전은 이렇게 하여 조선 초기 신. 구 권력의 최대의 접전지 역할을 하게 되었다. 태조는 경기전을 축수하기 위해 전국의 내노라하는 대목장과 화원을 불러들이고 교동에 임시 어진청 등을 세우게 된다.
많은 젊은 신진 사림들이 전주에 몰려들고, 한편으론 고려 말 유신들도 전주로 밀려들어 그야말로 전주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쌓인다. 그런 와중에 경기전 건물 도면이 완성되어질 무렵 대목장은 알 수없는 사건으로 어느 날 남천 가에서 변사체로 발견되고......... 이렇듯 경기전이 권력 갈등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아무도 대목장을 맞겠다는 인물이 나서지 않는데....... 때마침 초록바위 밑에 사는 한 젊은 도목수가 살았는데,,,,,,,,,,,,,,,,,,,,

왜 경기전이 소설이 되고, 영화가 될 수 없는가? 궁금해서 간단히 상상해 보았다.

*, 지난 연말 전주를 다녀간 일본인들 중 두 사람이 다시 전주에 온다. 그들은 전주에 오는 것이 아니라 광한루를 보고 싶어 찾아온다. 지난 연말 광한루를 보지 못한 아쉬움이 너무 커 곧 다시 오는 것이다. 그들은 영화를 통해 춘향전을 알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궁금하다.
춘향이는 광한루에서 그네를 탔을까. 녹음이 한창이고 지천에 꽂이 흐드러질 무렵 춘향이가 큰 나뭇가지에 매달려 그네를 타는 모습을 상상하면 어찌 아름답지 않을까. 그런데 정말 춘향이는 광한루에서 그네를 탔을까. 잘 알려진 데로 춘향이는 한물간 늙은 시골 기생의 딸이었다. 아버지도 없이 홀어머니 늙은 기생의 딸이 옥색치마를 입고, 그것도 몸종을 거느리고 광한루에서 그네를 탈 수 있었을까. 물론 모를 일이다. 사실일 수도 있고, 가상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누구도 소설 속에 그려진 춘향의 모습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하기야 춘향이의 존재 자체가 허구일 수 있지만, 그러나 아무도 그런 의심을 하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광한루는 더욱 우리 가슴에 아름답게 남아있다. 많은 사람들이 광한루를 찾는 이유이다.

춘향이가 실제로 광한루에서 그네를 탔거나 아니거나 하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춘향전 소설이나 영화, 창극을 통해 광한루를 기억하고 꼭 한번은 그 시절 아름다운 젊은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그려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광한루만큼은 그 때 그 시절에 분명히 존재했던 실체였기 때문에 춘향이의 존재도 그러했을 거라 믿는다. 역사가 상상이라는 옷을 걸치면 이렇듯 우리 가슴에 더욱 진하게 살아있게 된다는 것이다.
역사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우리의 삶은 과거 역사로 인해 얼마나 풍요롭고, 넉넉한 여유를 갖는지 모른다. 그러나 역사는 교과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교과서에서 읽는 역사는 머리에 남지만, 소설이나 영화 등 예술 속에서 보는 역사는 가슴에 쌓인다. 역사를 가슴에 담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역사를 문화로서 사랑하게 된다.

*, 지자체들이 역사를 발굴하고 그것을 문화자산으로 활용하기 위해 스토리텔링을 한다고 한다. 묻혀있는 역사를 찾아내 사실을 복원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역사는 온전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 없다. 언제나 극히 일부분만 남겨준다. 그래도 우리는 그 적은 부분을 통해 전체를 이해하고 상상한다. 보이는 극히 적은 부분만 보려는 사람은 역사학자이다. 그러나 적은 부분을 통해 전체를 느끼려는 사람은 예술가이다. 문화는 인간의 상상력의 밭에서 자라는 꽃들과 같다. 전라북도는 너무나도 많은 역사적 유산들이 있다. 이 유산들이 예술가들의 상상 속에서 꽃 피기를 기대해 보면 좋을 듯하다. 그래서 스토리텔링이 단순히 역사를 외어 설명하는 수준이 아니길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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