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정치 드라마의 종말

요즘 세간에는 ‘록히드 사건’이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 있다. 1970년대 일본 열도를 뒤흔든 다나카 가쿠에이 전수상의 독직사건이다. 박연차 리스트 이후 노무현 전대통령을 둘러싼 뇌물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 전대미문의 메가톤급 독직사건이 입줄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정치와 돈의 유착관계가 새삼 관심사가 되는 시점이다.
1976년7월27일.
일본이 발칵 뒤집혔다. 일본 수상까지 지내고 그 이후로도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온 다나카가 검찰에 체포된 것이다. 죄명은 뇌물수수. 이른바 ‘록히드 사건’이다. 검찰 설명으로는 다나카가 전일본항공사에 압력을 넣어 미국 록히드사 항공기를 쓰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 대가는 미화 200만불이었다. 일본 최대 정파의 영수인 다나카는 이날 이후 몰락의 길을 걷는다.
사실 다나카는 꼬리를 무는 금전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높았다. 그의 수상 재직시절은 ‘결단과 실행’이라는 구호 아래 경제를 활성화하고 중공과의 수교를 하는 등 업적이 적지 않았다. 국민들은 그의 과감한 정치에 열광했다. 특히 초등학교 출신이라는 그의 자수성가 스토리는 일본 국민들에게 하나의 신화였다. 그러나 다나카는 록히드 사건 이후 금권정치의 상징인물로 격하 된다. 돈 정치 하면 록히드 사건과 다나카가 어김 없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럴 만도 하다. 록히드 사건 이외에도 그의 평소 행동은 비판받아 마땅했다. 일본 최대의 정치후원조직인 ‘월산회’를 거느리면서 관급공사를 무기로 표를 매수했다는 혐의가 있었다. 또 그가 권력을 이용해 치부하고 있다는 비난도 끊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그는 돈이 정치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럼 그 이후 일본 정치는 제대로 돌아갔을까.
답은 아니다 쪽이다. 최근 일본 검찰은 제1야당인 민주당 오자와 대표의 보좌관을 체포했다. 특정기업으로부터 불법적으로 정치헌금을 받았다는 혐의였다. 오자와는 차기 선거에서 집권 가능성을 가진 거물이다. 오자와는 앞서 이야기한 다나카파의 적통으로서 그를 정치적 스승으로 모신다는 말도 나온다. 앞으로 검찰의 칼날이 직접 오자와를 겨냥할 것인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여기서 보듯 금권 정치 하면 역시 일본이다. 금권정치의 사전적 의미는 소수 부유계층이 지배하는 정치다. 돈으로 정치한다는 뜻이다. 일본에서는 3다 즉 세 가지가 많아야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소속된 파벌의 의원과 지지 유권자 그리고 돈이다. 물론 일본만 돈 정치가 성행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역시 금권정치라면 빠지지 않는다. 돈이면 다 통하는 미국정치라고들 한다. 정치 비용이 천문학적인 미국에서 정치인의 가장 큰 미덕은 부유함이다. 미국 국회의원들 가운데 백만장자가 수두룩한 이유다. 미국 정치에서 돈 쓰는 것은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다. 따라서 얼마를 쓰던 그 것은 자유다. 물론 기부금은 제한이 있지만 정치광고 등 외곽지원은 무제한이다. 당연히 이익단체들의 큰 손 개입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남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눈길을 안으로 돌리면 우리나라 금권정치의 발호는 그들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옛날 ‘차떼기’가 떠오른다. 이후 소소한 건은 그칠 새가 없었다. 며칠 사이 막 터진 노무현 전대통령 뇌물수수 혐의는 그 절정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대통령 일가가 모두 나서서 돈을 받았다는 검찰의 설명은 ‘록히드 사건’을 뺨치는 대형 폭탄이다. 아직 드라마의 파국은 시작되지 않았다. 검찰과 노 전대통령 사이의 법적 다툼이 이어진 후 결론이 나올 것이다. 그렇지만 깨끗한 정치의 상징이던 노 전대통령의 독직 스캔들은 충격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국민들은 일종의 패닉 상태다. 떡 얻어먹을 일도 없는 굿 구경만 남았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나 돈 정치는 있었다고 스스로 위안할 도리 밖엔 없다. 권력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소시민들은 어안이 벙벙하다. 그저 제발 돈을 둘러싼 저질 정치드라마가 그만 나왔으면 하고 빌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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