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은 없었다. 교만한 민주당에 대해 준엄한 심판이 내려졌다. 좀더 좁히자면 오만한 386세력에 대한 경고였다. 민주당은 이미 전주지역 후보 공천과정에서 부터 패배했었다. 따라서 29일 재선거 결과는 후보가 확정된 이후 쉽게 당락예측이 가능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이렇게까지 힘없이 무너질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전주에서 무소속 당선은 민주당에 대한 민심이반이라기 보다는 ‘애증’의 표현이라고 보는 것이 아직은 적절하다. 다시말하자면 그동안 한결같이 지지해온 민주당에 대한 실망감과 철없는 386지휘부에 대한 채찍으로 보면 된다. 미운놈 떡하나 더주고 이쁜놈 매한대 더때리라는 속담과 같은 이치다.
이미 알려졌듯이 민주당 386들은 정동영이라는 거물 정적을 배척하기 위해 덕진 선거구를 전략공천 지역으로 못박은 뒤 지역민심은 아랑곳하지 않고 낙하산 공천을 감행했다. 386지휘부들이 책상머리에 앉아서 전주시민을 볼모로 휘두른 전횡은 그야말로 전략도 전술도 없었다. 물론 정장관이 성급하게 미국에서 출마선언한 원인(遠因)을 감안하더라도 그들은 전주시민을 무시해도 너무 무시했다.
전략공천이라면 원내에 진입시킬수 있는 유력한 인물이 있음을 전제하에 말그대로 전략적으로 이뤄져야 하는게 기본 상식이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민주당의 덕진 전략공천은 ‘절대로 정동영은 안된다’는 오기의 발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칼자루(힘)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대내외에 과시한 ‘시위’에 불과했다. 덕진 재선거는 정후보를 제외하고 그 누구도 필패한다는 사실을 386들도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철부지들은 지난 90년 11월 전남 영광.함평의 보궐선거를 동경했을지도 모르겠다. 당시 평민당은 13대 총선에서 당선된 서경원 의원의 의원직상실로 보궐선거에 이수인(작고) 영남대 교수를 공천했다.
이수성 전총리의 동생이기도 한 이의원은 영남대 정치학과 교수였고 호남과는 전혀 연고가 없었다. 당시는 영호남 지역갈등의 골이 깊어 우리사회의 큰 골칫거리였다. 이를 타파하기 위한 전략으로 김대중 평민당총재는 이교수를 공천한 것이다. 이 후보는 73%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민자당 조기상후보를 눌렀다. 이후보의 당선으로 영호남 갈등이 얼마나 치유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당시 정치.사회 상황에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마도 전략공천이라면 이러한 케이스가 모범답안 일게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덕진선거구는 전략공천지역으로 선정돼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동영이 미국에서 출마선언을 하고 미처 입국하기도 전에 민주당은 서둘러 전략공천 지역으로 선포한뒤 대문을 걸어 잠가버렸다.
이후 민주당은 김근식 경남대교수를 전략공천했지만 예측됐던대로 큰 표차로 낙방했다. 김교수는 아태평화재단,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등의 경력을 지닌 남북문제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민주당은 정동영후보가 통일부장관을 지냈기 때문에 김교수의 경력을 대항마로 선택했던 모양이다.
김교수는 통일문제 전문가여서 지난해 4월 총선에서도 민주당 비례대표 28번 후보로 공천됐다. 그렇지만 김교수는 당선 가능성이 거의없다(한나라 22명. 민주 15명 당선)고 판단해 공천을 반납하기도 했다. 결국 비례대표에 이어서 지역구에서도 쓴잔을 마시고 18대 국회와는 연을 맺지 못했다. 어찌보면 김교수도 386패거리들의 희생양이 된 꼴이다.
민주당 386들은 4.29선거 결과를 놓고 MB정권에 대한 심판의 승리로 자축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당권을 지키기 위해 재보선 결과를 아전인수격으로 자평하는 사이 ‘개혁’을 요구하는 민심 부메랑은 당의 핵심부로 날아들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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