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민영화의 위험성

백 종만(전북대학교 교수)

현 정부에서 의료민영화 정책의 추진은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와 영리병원의 허용이라는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많은 국민들은 의료민영화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다는 정부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민간의료보험 활성화의 폐해는 영화 <식코>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민간의료보험이 중심인 미국의 의료보험료는 지난 8년 동안 두 배 올랐고, 지난 8년 동안의 임금 인상보다 3.7배나 더 올랐다. 미국에서 파산자의 절반 이상이 의료비에 기인한 것이었고, 미국 총 의료비의 25%는 행정비용과 오버헤드 비용으로 지출된다. 현재 4500만 명 이상의 미국인은 의료보험이 없으며,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들의 80%는 현재 일을 하고 있지만 의료보험이 없는 것이다. 치솟는 의료비는 특히 중소기업 고용주가 자신의 노동자들에게 의료보험을 구입해주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의료 체계는 예방과 공중보건에 지나치게 투자를 적게 한다.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의 16%를 국민의료비로 사용하면서도 국가의료제도의 성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거의 꼴찌 수준이다. 이러한 문제가 많은 미국의료제도를 개혁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보험회사자본과 병원자본의 반대로 번번이 실패하였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의료 재정의 공공성 수준이 53%에 불과하여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평균인 72.3%에 비하여 20% 포인트 낮고, 프랑스나 스웨덴 등 유럽의 주요 선진국에 비해서는 약 30% 포인트나 낮은 수준이다. 의료 공급을 담당하는 병원 중 공공병원의 비중도 우리나라는 10%에도 미달하여 유럽 선진국의 50~90% 수준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실정이다. 이렇듯, 의료 제도의 공공성 수준이 낮아서, 재정 면에서는 민간의료보험이 엄청나게 시장을 넓혀가고 있으며, 의료 공급에서는 민간병원이 주를 이루면서 불필요한 병상 및 시설 경쟁으로 자원의 낭비가 심각하다. 병원의 대형화, 고급화, 상업화로 의료 시장의 과열 경쟁으로 중소병원은 도산하거나 파행적 의료 행태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가 아닌 의료공급체계에서 공공의료의 비중을 늘리는 일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영리병원 허용을 전면적으로 선언한 경제부처의 논리는 영리병원을 만들면 의료수지 적자를 개선하고 병원 간 경쟁을 통해 의료서비스 질이 높아지고 의료비는 저렴해지며, 일자리 창출도 가능한 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첫째 영리병원 허용은 의료비 폭등을 불러온다. 투자자에게 수익을 배분해야 하는 영리병원은 환자 진료보다는 수익 창출을 위한 기업임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것이다. 외국의 연구에 따르면 영리병원 의료비가 비영리병원보다 19% 높고, 미국의 메디케어를 비교한 대표적 연구도 영리병원 의료비가 16.5% 높다고 한다. 둘째 영리병원 허용은 우리의 건강보험제도를 붕괴시킬 위험성이 크다. OECD 국가에서 영리병원 허용된 나라들은 공공병원의 비율은 60-95%인데 반해 우리는 공공병원 비율이 7%에 불과하다. 병원협회의 자체조사결과를 보면 국내 병원들은 영리병원이 허용될 경우 영리병원으로 전환하겠다는 의향을 가진 병원들이 80%나 되었다. 영리병원의 비중이 가장 높은 미국도 13%정도만이 영리병원이다. 현재 정부는 비영리병원의 영리병원으로의 전환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으나, 병원자본의 압력으로 영리병원으로의 전환을 허용하는 정책으로 전화될 가능성이 크다. 공공병원이 턱없이 적은 한국에서 영리병원이 확산된다면, 비급여 진료 항목의 증가와 보험수가의 인상요구로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 유지가 어렵고, 결국 당연지정제 폐지와 건강보험 붕괴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셋째 정부는 해외진료비 수지적자로 드는 연간 6000만 달러정도의 비용을 영리병원 허용으로 해결하겠다한다. 해외의료서비스의 대부분은 해외원정출산 때문으로 국내에 영리병원을 허용한다고 해서 원정출산이 줄어들 수 있을까 의문이다. 2007년 해외의료서비스 적자액은 665억원으로 전체 해외서비스 지출총액인 19조의 0.3%에 불과하다. 원정출산을 해결할 수도 없고 또 해외서비스 지출액의 0.3%에 불과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보건의료제도의 근본을 뒤바꾸려 하는 것은 상식을 넘어선 정책이라는 시민사회의 의견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의료민영화는 일부 병원자본과 민간보험회사의 수익만 늘려 주고, 정부가 부인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의료기관 당연지정제의 폐지, 국민건강보험제도의 붕괴, 일차의료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도미노 현상을 야기할 것이다. 영화 <식코>와 같은 사태가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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