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이 실종된 춘향제를 보내며

1931년 음력 5월5일 이른 아침 춘향사 건립에 앞장선 남원국악원의 전신인 권번과 지역유지 그리고 국악동호인 서울 평양 개성 전주 광주 진주 동래의 명기100여명이 참석하여 제를 올린 것이 오늘날 이어지고 있는 민족 최고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춘향제의 시초이다. 일제치하 그것도 창씨개명을 강요하며 민족문화말살정책이 극에 달하고 있을 이때 권번에서는 춘향사 건립과 춘향제향을 왜 모시게 되었을까?

춘향아씨의 정절과 부도정신을 통해 그리고 희미해져가는 민족예술의 보존과 부흥을 통해 그렇게도 절실히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많고많은 나무 중에 어찌하여 대나무로 춘향사를 지키게 하였을까? 그시절 보잘것 없고 천시와 괄시속에 근근이 풀칠로 연명하던 그들이 그렇게도 정성껏 제향을 모시며 얻고자 했던 그 무엇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자 했고 또 그뜻을 기리고자 노력한 적이 있던가?

언제나처럼 올해도 서로의 반목과 불협화음속에 춘향제가 개최되었고 춘향제의 의미와 정체성조차도 찾아보기 어려운 정체불명의 축제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역의 축제는 지역민들의 익명적이면서 공동체적 합의와 약속을 통해 지역의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가치들을 확인하고 표현하는 화합의 장이어야 함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춘향제가 누구의 손에 의해 태동되었고 또 무엇이 축제의 중심적 역활을 해왔으며 발전시켜온 성장 동력 이었는지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연구를 통해 이벤트적 축제가 아닌 진정한 남원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해야 할 제79회 춘향제는 그 어느 때 축제보다 많은 걱정을 갖게하는 축제가 되고 말았다.

세계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향토문화축제는 지역민들이 축제의 중심에서 축제를 이끌고 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춘향제는 춘향아씨를 통해 지역의 이미지를 재생산하고 전통문화예술의 도시로 브랜드적 가치를 향상시켜나가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축제는 전야제 공연에서부터 축제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을 갖게 하였다 . 일제치하에는 춘향사 건립과 춘향제향을 통해 얻고자 했던 민족문화의 자긍심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버젓이 일본에서온 북 연주팀이 개막공연으로 무대에 올리어 진것은 참으로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시대적 문화적 변화가 있었고 문화의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 할수 있다지만 적어도 춘향제에서 만큼은 잘 살펴보아야 했다 .1천5백만원이라는 막대한 출연료를 지급하면서까지 그렇게 춘향제의 의미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 했던 것일까?

1931년 시작한 춘향제사가 점차 국악인의 참여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판소리를 중심으로 한 전통예술이 공연되기 시작했고 전국 판소리 명창대회등을 비롯하여 대한민국 최고가는 국악축제에서 세계화와 관광 상품화한다는 과정에서 현대화되었거나 서구화된 공연물이 축제의 중심에 있는 현실에 춘향제에 대한 본질적 요소를 다시 정립해야 될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이다.

그 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볼거리를 관광 상품화하는 것은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상당히 긍정적인 면이많다. 향토문화축제를 관광 상품화할 경우 그 지역의 관광화가 동시에 이루어지며 그 지역의 개성을 확실하게 보여줄수 있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축제의 주체인 지역민으로서는 축제의 즐거움보다는 무엇인가 잘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감에 부담스러운 행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번 춘향제와 같이 청소년과 젊은층을 겨냥한 인기 연예인 초청공연등 재미위주의 프로그램 기획은 춘향제와의 연계과정에 뚜렸한 설득력이 없어 뜻 있는 전문가들로부터 우려의 목소리를 낳기도 했다.
향토문화축제는 지역민들이 즐기면서 동시에 관광의 효과를 누릴수 있는 개성 있는 전통문화가 중심이 되는 축제로 재탄생 되어야 비로서 특색 있고 경쟁력 있는 관광상품 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남원=김수현기자 ksh5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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