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가로막는 정당공천

지난 4월 19일 일본에서 실시된 22개시의 시장선거는 무소속후보의 전 지역 싹쓸이라는 획기적인 결과로 사람들에게 적잖은 놀라움을 주었다. 일본에서는 지역시민운동가 출신과 같은 비정당인이 자치단체장에 당선되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지역사회에서 정당정치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평가가 가능할 만큼 탈정당화 현상이 뚜렷하다. 일본인들은 이제 정당정치를 지역사회발전과 통합의 걸림돌로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일본의 이러한 변화는 무엇보다 기존 정당에 대한 실망에서 출발하고 있는데, 자신의 삶과 직접 접촉하고 있는 지방정치영역에서 중앙정당의 영향력을 최대한 피하고자 하는 주민들의 욕구가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지역주민들의 이러한 선택은 특히 정당정치가 혼탁할 때 주민자치의 독립성을 확보하게 해주어 지방자치의 자율성과 주민이 원하는 방향으로의 정치변화를 꾀하는 효과를 가져다준다. 일본지방자치에서의 이러한 탈정당화현상은 한국의 지방정치현실과 정당공천제도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현재 한국의 정당정치는 비민주성과 정치적 부패로 인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고 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4·29재보궐선거조차 정당정치가 오히려 후퇴하고 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현재의 지방선거 정당공천제도 하에서는 지방정치마저 중앙정당의 이러한 후진성을 그대로 답습하게 돼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방자치의 생명은 지역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기초로 한 창조적 풀뿌리 민주주의이며, 그 중심에는 기초자치단위에서의 지방정치 독립이 놓여 있다. “민주주의의 최상의 학교이며 민주주의 성공의 보증서”라는 지방자치의 실현은 가장 작은 자치단위에서의 자율성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현재의 지방선거에 대한 정당공천권은 지방정치의 중앙예속화 현상을 가져와 자율과 독립성이라는 지방자치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더욱이 지금처럼 한 정당이 특정 지역의 지방의원과 단체장을 독식하는 지역주의적 정당구조 하에서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주의 원리마저 위협받고, 지역의 현안 또한 지역주민의 의사보다는 중앙정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결과를 낳는다.
한국의 정당정치는 아직도 계파정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권력관계는 공천과정에서 계파간 세력다툼으로 나타나며, 자기 계파를 늘리기 위한 치열한 경쟁과 대결이 벌어진다. 그러다 보니 참신한 정치신인을 발굴한다는 취지의 지방자치 정당공천제도는 계파싸움에 의해 그 취지가 유명무실해지고 결국엔 나눠먹기식아니면 힘겨루기식 공천이 이루어지기 일쑤이다. 이러한 실정이다 보니 지방정치인들에게는 중앙정치권의 계파적 유력인사에게 충성하는 것이 공천권을 확보하는 길이 되고 이렇게 당선된 이들은 결과적으로 지역주민을 위한 정치가 아닌 중앙당의 입맛에 맞는 정치를 하게 된다.
전북지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민주당이 분열됨으로써 지역정치인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극심한 눈치보기와 줄서기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이들의 관심은 벌써부터 어느 쪽에서 낙점을 받는 게 당선에 유리할지에 쏠려있어, 지역의 생활정치를 챙기겠다는 준비와 각오는 뒷전이다. 많은 사람들은 지방정치인들의 이합집산으로 인한 지방자치의 후퇴를 크게 걱정하고 있다.
또 다른 문제점은 지방정치후보자들의 공천에 있어서 지역구 국회의원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다보니 지방정치인들, 특히 기초자치단체 정치인들은 공천을 대가로 지역의 조직관리자로서 국회의원선거활동에 조력하는 공생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검은 돈이 오가는 공천비리도 빼놓을 수 없다.
정당공천으로 인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정당의 민주화와 투명성을 확보하고 정치개혁을 통해 공천제도의 공정성을 찾는 길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처럼 정당정치에서 이를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에서는 지방자치를 살리고 지역에서 출발하는 아래로부터의 정치발전을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 풀뿌리민주주의의 가장 작은 단위인 기초자치단위에서의 정당공천제는 폐지되는 게 마땅하다.
변화가 없는 중앙정치의 후진성은 가장 아래로부터의 정치변화에 의해 바뀌어야 한다. 그러자면 지역주민에 의한 독립된 지방정치가 가능하게 하는 선거제도개선이 급선무다. 진부하고 식상한 정치, 그것을 바꾸기 위해 정치권과 시민모두 제도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실천이 필요한 때다. /임성진(전주대교수, 사회과학부 행정학과)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