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파킨슨 법칙이라지만
미 연방정부가 황야 한 가운데다 거대한 고물 하치장을 건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한참 계획을 세우던 참에 행정부 관리 한 사람에게 하치장에 도둑이 들어 약탈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행정부는 야간경비직 사원을 모집하는 공고를 냈고, 곧 적당한 사람이 나타나 채용했습니다.
직원을 채용하고 나자 또 새로운 문제로 말들이 오가기 시작했습니다. “행동지침이 없으면 야간경비원이 어떻게 일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행동지침을 만드는 사람들을 위해 다시 두 개의 일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경비직의 임무를 설명한 문건을 만들었고, 다른 사람은 시간 계획표를 짰습니다.
또 다른 문제가 튀어 나왔습니다. “야간경비가 정말로 양심적으로 일을 수행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이번에는 야간경비들을 관리하는 부서를 만들어서 두 사람을 고용했습니다. 한 사람은 야간경비가 일을 양심적으로 하는지 조사하고, 다른 한 사람은 보고서 작성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문제는 더 있었습니다. “이 모든 사람의 임금은 또 어떻게 지불하지?” 그리하여 근무시간을 관리하는 사람, 회계담당자. 보조사무원과 법률고문이 하치장에서 새로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또 생겼습니다. “지난 1년 동안 활동하면서 우리 위원회에서는 할당된 예산보다 1만 8천 달러나 비용을 초과 지출했소. 비용을 절감해야만 합니다.” 결국 그들은 야간경비를 해고했습니다.
롤프 브레드니히의 <위트 상식사전>에 실려 있는 ‘관료주의 만세’라는 항목의 내용으로, 이른바 정부 행정과 기업 경영에서 거의 제1 법칙이라고 할 수 있는 ‘파킨슨 법칙(parkinson's law)’라는 것을 떠올리게 하는 위트입니다.
파킨슨 법칙은 “업무의 양과 공무원 수의 사이에는 관련이 없다.” 또는 “일은 그것을 처리하는 데 쓸 수 있는 시간만큼 늘어나기 마련이다.”는 것으로, 공무원들이 업무를 처리하는 데 쓰는 시간은 얼마든지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무원 조직에서 하는 일이라는 게 사람과 상황에 따라 시간과 함수관계가 비례할 때도 있고 반비례할 때도 있는 것이며, 더구나 서류 업무에 드는 시간은 충분히 조절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수행해야 할 일과 그 일을 맡을 직원의 수는 관련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부가 조직을 개편하려고 할 때 공무원 수를 줄이려고 하고 또 실제로 조금 줄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줄어들기커녕 매년 늘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째서 그럴까? 이런 물음에 대해 파킨슨은 두 가지 이유를 듭니다. 하나는 공무원의 생리가 원래 부하직원을 계속 늘리려고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공무원들이 서로를 위해 일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공무원들이 부하직원을 고용하면, 이들을 관리하기 위해 불필요한 일이 증대되어 공무원 수가 폭증한다는 겁니다.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때가 되면 정부 각 부처가 경쟁이나 하듯,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몸집 불리기’에 나서는 것처럼 말입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새로 임명되면, 어김없이 인력감축을 중심으로 하는 구조조정을 강도 있게 추진합니다. 더구나 ‘기업가 정신’을 내세우는 이명박 대통령 같은 분은 ‘작은 정부’를 더욱 강조하며, 실제로 지난해 초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청와대 인력을 노무현 정부 때보다 20% 감축하겠다는 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동안 청와대 조직이 너무 비대해져 정부 부처에 지나치게 간섭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조직을 슬림화, 정예화해서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하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현실은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보다 더 비대해졌다고 합니다. 노무현 정부 때보다 20% 줄이겠다고 공언했는데, 오히려 직원 수가 2.8% 늘어났다는 겁니다. 게다가 일부 유휴인력이 생기면서 사고를 쳐 물의를 빚는 직원까지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파킨슨 법칙이라지만, 이건 너무했다는 생각입니다.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공기업들의 인력 감축을 강도 높게 추진하면서 안으로는 ‘제 식구’를 늘리고 있는 이 정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작은 정부’를 외치던 청와대가 자기 직원은 슬그머니 늘려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는 청와대 한 관계자의 말로 덮어두기에는 너무나 슬픈 아침입니다. 우리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도 모르는 분을 대통령으로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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