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는 색으로 기억된다.

윤 중강 / 음악평론가, 공연기획가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손로원 작사, 박시춘 작곡). <봄날은 간다>는 이렇게 시작한다. 진달래와 철쭉의 꽃분홍이 흐드러진 계절! 여인의 치마는 조심스레 연분홍으로 바뀐다. 연분홍은 수줍음과 설렘을 동시에 수렴한다. 거기에는 일탈과 도발의 심리가 있다. 가부장적 규율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이 읽힌다. 가는 봄을 아쉬워하며 한번쯤 몸의 자유를 만끽하고자 하는 속내가 읽힌다.
고금아속(古今雅俗)을 막론하고, 세상에는 답답한 심신을 해방하는 장치가 있다. 이름과 방식은 달라도, 일상의 일탈이란 공통점이 있다. 요즘 세상에 그런 대표적인 장치는 축제! 하이서울페스티벌 봄 축제(5. 2 - 5. 10)는 온통 꽃분홍축제였다. 서울광장, 청계천, 오대궁이 꽃분홍으로 채워졌다. 꽃분홍은 동양의 오방색도 아니다. 궁에 어울리는 색이 아니다. 누구든 딴지를 걸 수 있다. 그러나 일상 혹은 전통의 일탈이라는 면에서 볼 때 매우 효과적인 색이다. 더욱이 봄날의 심리를 전제로 할 때, 꽃분홍의 선택은 탁월했다.
하이서울페스티벌의 안은미 예술감독을 ‘핑크 마니아’라고 불러도 좋을까? 안무가인 그는 색깔의 선택에도 탁월하다. 특히 핑크를 중심으로 해서, 다른 색깔을 배합하는 감각이 돋보인다. 하이서울페스티벌에서도 그런 능력이 발휘됐다. 청계천에선 ‘꽃분홍 소망끈 달기’를 펼쳐졌다. 축제기간 동안 청계천은 시민들의 소망을 담은 꽃분홍색으로 덥혔다. 특히 이번 축제에서는 ‘사랑패’의 활동이 돋보였다. 과거 전통사회에서 축제에 빠질 수 없었던 ‘사당패’란 존재를 이름부터 살짝 뒤튼 이들은 축제의 현장에서 크게 활약했다. 이들은 말하자면 ‘축제도우미’요, ‘놀이도우미’였다. 광장에서 노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도시사람들에게 옆에서 춤을 추면 흥을 돋아 주면서, 그들의 심신에 내재한 신명을 일깨워주는 존재였다. 이들 사랑패의 의상은 저마다 각각이었지만, 모두 꽃분홍(핑크)을 중심으로 한 스판텍스 소재의 형광색 의상이다. 무대와 광장을 누비면서 축제를 생생하게 살아있는 현장으로 만들었다. 특히 그들의 활약은 ‘봄바람댄스’ 때 돋보였다. <랄랄라>(김창환 작사, 김창환 작곡, 클론 노래)라는 노래가 하이서울페스티벌의 로고송이 되어 제 역할을 톡톡한 것이다. “더 이상 움츠리지 말고 이젠 모두 일어나 그리고 함께 춤을 추며 신나게 노래를 부르자 두 손을 높이 들고 하늘을 향해 흔들어 1.2.3.4.” 단순하게 반복되는 멜로디를 따라, 손과 발이 자유롭게 움직이다가 하늘 높이 박수를 칠 때, 축제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행복했다! 그리고 이 노래의 가사처럼 사람들은 축제를 통해서 새로운 힘을 얻게 되었다. “아무리 힘들고 괴롭더라도 가슴을 활짝 펴봐~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말고 생각을 바꿔봐 고정관념을 버려”
어느 축제의 예술감독은 축제의 성공여부는 ‘콘텐츠’와 ‘먹거리’에 달렸다고 했다. 나는 그 이전에 축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색깔’과 ‘노래’임을 강조한다. 2002년 월드컵현장으로 돌아가자. 거기에는 온통 붉은 옷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YB(윤도현밴드)의 락 버전 ‘아리랑’이 있었다. 신나는 4박자의 리듬을 맞춰서, 모두가 붉은 물결이 되어 움직였다. 그리고 7년이 지난 후, 월드컵의 열기가 뜨거웠던 서울광장에 새롭게 꽃분홍과 봄바람댄스가 새롭게 빛을 발한 것이다.
대한민국 월드컵하면 ‘레드’로 각인되듯, 하이서울페스티벌은 세계인들에게 이렇게 ‘핑크’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축제가 앞으로 어떻게 바뀌든, ‘꽃분홍’ 만큼은 변하지 않길 바란다.
축제는 색으로 기억된다! 아울러 전주세계소리축제를 비롯해서, 전라북도의 많은 축제들도 저마다의 색깔이 분명했으면 했다. 더불어서 누구든 따라서 부르고 움직일 수 있는 로고송까지 있다면 금상첨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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