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는 반복해 돈다
어렸을 적 할머니는 그림자가 발끝에 매달리면 손자들을 불렀다. 점심때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시계를 본 기억이 없다. 집안에서야 물론 시간을 정해놓고 해야 할 일이 별로 없었을 터였지만 시계가 귀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래도 학교는 등교해야 하는 시간, 아침 조회를 해야 하는 시간 등이 정해져 있었겠으나, 우리는 굳이 시계를 봐야 할 일이 없었다. 시간이 되면 땡 땡 땡하고 종이 울렸으니 종소리만 들으면 되었다. 학교에서야 끝나고 시작하는 것을 종이 울려 알려주었으나, 다른 여타의 생활은 자연의 관찰과 부지런 함이었다. 할머니처럼 그림자를 보고 대충 때를 맞추어 갔거나 아니면 일찍 서두르는 것이었다. 어제도 아침 먹을 때쯤에 버스가 마을을 지났으니, 먼 길이라도 나설랴 치면 어제 그맘때 보다 더 일찍 서둘러 나가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버스가 오가는 것도 딱히 맞는 시간이 없었음은 물론이니 해가 가는 위치를 봐가며 감각을 동원하여 맞춰 갈 수 밖에 없었다. 시간과 공간을 여유롭고 넉넉하게 쓰지 않으면 아니 되는 시절이었다.
처음 본 시계는 둥글었다. 둥근 원에 정자로 된 숫자가 돌아가면서 1에서 12까지 쓰여 있었다. 둥근 원의 크기가 다소 다른 것이 있을 뿐 모든 시계는 다 그랬다. 그러다가 시계가 네모난 것이 등장했는데 그렇더라도 숫자는 어김없이 1에서 12까지 뿐이었다. 사실 시계를 보기 전에도 시계란 당연히 그렇게 생겼을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학교에서 시계가 밤낮으로 두 바퀴 돌아가면 하루가 된다고 베웠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시계 바늘이 가리켜 주는 대로 하루를 살았다. 바늘이 12에 있으면 일을 하다말고라도 어김없이 점심을 먹었다. 시계가 인간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인간이 시계를 바라보며 살기 시작하면서 점점 상상력의 빈곤도 함께 오는 것 같다. 디지털시계가 만들어지면서 숫자는 얼마든지 계속 이어질 수 있을 것 같은데도 여전히 하루는 쳇바퀴 둘 듯 24에 머물러 있다. 아무도 하루의 사간이 50시간이라든가 하는 숫자의 폭을 의심 없이 반복하게 된다. 오늘의 12시는 어제의 12시와 똑같은 개념으로 인식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세상은 한순간도 제자리에 머물지 않는데도 우리는 그런 시간의 인식의 폭을 거의 의식 없이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오늘도 어제와 같고, 어제는 내일과 같은 숫자의 마술에 취해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작금의 주변상황을 보면서 시계의 숫자판의 한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지난해 있었던 일이 똑같은 형식으로 반복되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다. 예컨대 지난주에 끝난 한지축제나 영화제 그리고 지난달 선거과정 등을 보면서 그렇다. 한지축제는 벌써 13회가 지나지만 아직도 한지의 원산지 문제, 한지의 세계화와 산업화를 이야기 하고 있다. 물론 축제의 목표가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 논의의 내용은 10년 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는데 있다. 영화제나 한지축제의 축제 현장의 공간 활용에 있어서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영화축제는 영화관에서만 그리고 한지축제는 왜 그 공간에서만 이루어지는지, 그래서 영화인들만의 잔치, 한지 인들만의 행사로 머물러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처럼 시간적 물리적 공간 지각이 부족했던 것은 선거판에서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항상 되풀이 되는 선거판의 폐습을 보면서 역시 시계는 돌고 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시계를 보면서 사는 사람들의 지각능력의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달을 보면서 계절을 묻고, 그림자를 따라 시각을 인지했던 여유로움과 무한한 상상의 세계가 어느 때부터인지 모르게 살아진 듯하다. 작년에 피었던 꽃은 다시는 피지 않는다. 5월에 지천에 피어있는 꽃들이 내년에는 다시 피지 않는 것처럼, 내년에는 새로운 것, 새로운 연출로 축제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내년에 맞을 선거는 새로운 모습이었으면 한다. 어제 본 시계 판의 12는 작년에 본 시계 판의 12와 숫자가 똑같다. 그리고 시계바늘이 한 바퀴 돌면서 들려가는 숫자는 항상 같은 모양, 같은 숫자일 뿐이지만 우리 삶은 되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봄직 하다. 비슷한 것을 반복해서 봐야하고, 같은 소리를 반복해 들어야 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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