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에서 꽃다운 나이에 먼저 죽어간 전우를 생각하면 같이 죽지 못하고 살아 숨 쉬고 있는게 미안할 뿐이여. 뭘 잘했다고 무슨 염치가 있다고 사진을 찍겄는가~”

6·25전쟁에 참전한 참전유공자 오기탁(79·사진 왼쪽)옹은 살아서 숨 쉬고 있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함께 목숨을 바쳐 싸우다 전사한 전우들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해 일순간 주위가 숙연해졌다.

오 옹은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진격과 후퇴가 수회 반복되면서 죽어간 전우들을 얇게 판 땅에 묻었다” 며 “제대로 된 묘지에 묻어주지도 못해 지하에서 헤매고 있을 전우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메어온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1930년 완주군 구이면에서 외아들로 태어난 오씨는 6·25가 일어나자 결혼한 아내를 놔두고 21살 때인 1950년 7월 징병돼 그 때 당시 치열했던 ‘형상강 전투’를 맡은 국군 제3사단 23연대 2대대에 배치됐다.

오 옹은 당시 형상강 지역에서 북괴군과 대치한 가운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삶과 죽음을 오가는 곳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총탄이 오른쪽 허벅지에 박혀 뼈가 으스러졌다.

그때 당시 열악한 의료 환경에서 수술을 받은 오 옹은 수술했던 허벅지가 부작용으로 이어져 피부병이 발생하는 등 후유증이 나타나 30년 가까이 약을 복용하고 있었지만 전우들과 함께 피 흘려 일궈낸 일들을 보람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다.

이런 오 옹에게 애국심을 이어받아 현재 아들 영수(57)씨 또한 국가유공자로 이들 부자의 애국심은 어느 가문보다 더 강렬하다.

영수 씨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전우분들의 총탄이 빗발치는 치열했던 곳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나라를 지켰던 이야기를 들어오며 살아오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장래도 군인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수 씨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1973년 8월 장교로 자원입대했고 제1사단 사단수색대대에 소대장으로 임관, 군 생활을 시작했다.

군 복무 중 영수 씨는 지난 1978년 10월17일 발견된 제3땅굴을 수색하기 위해 특공중대장으로 임명됐다.

그때만 하더라도 제2땅굴을 수색하던 많은 군인들이 북괴군이 만들어 놓은 함정에 의해 수색작전 도중에 희생됐었다.

영수 씨는 정예부대원으로 편성된 150여명의 중대원을 이끌고 중대원 한명의 인명 피해도 없이 임무를 완수했다.

이에 대해 공로를 인정받은 영수 씨는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바 있는 용맹스런 군인이었다.

더구나 오 옹의 막내 딸 정예(42)씨도 민주화 유공자로 말 그대로 국가에 헌신하는 가문으로 귀감이 되고 있다.

한편 영수 씨는 22년간 군 복무한 뒤 1995년 소령의 계급으로 전역해 그는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전라북도지부 사무국장직을 재직하면서 2200여명의 회원들의 단결과 복지 증진에 앞장서는 등 조직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승만기자·na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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