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유월

세월은 모든 것을 망각의 세계로 몰아넣는가? 유월은 한반도 산하를 신록으로 짙게 물들이고, 지루한 장마가 시작되는 달이기도 하다. 59년이란 무심한 시간을 흘러 보낸 1950년 유월,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참혹했던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동란의 참상을 돌이켜 본다.
 이 전쟁으로 남한의 군인과 학도병, 경찰의 전사자와 실종자는 18만1000명이고 부상자는 45만명에 달하며 사망·학살·납치·행방불명된 민간인이 76만2000명, 부상 23만명으로 162만3000명이 피해를 입었다. 북한도 군인의 사망·부상이 51만2000명, 비전투손실 17만7000명, 실종·포로 10만2000명, 민간인 100만명 등 179만1000명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여기에 54만6000명의 UN군과 97만3000명의 중공군을 합하면 총 493만3000명이 6.25전쟁으로 목숨을 잃거나 행방불명, 부상을 당했다. 이는 1950년 당시 남북한 인구 2500만명의 5분의 1에 해당한다. 미 8군사령관 워커 중장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던 중 자동차사고로 숨지고(1950.12.23), 모택동 주석의 장남 모안영이 대유동에서 미 공군의 폭격으로 사망했다(1950.11.25). 그리고 한반도에 투하된 폭탄은 세계 2차 대전 때 보다 2.5배에 달해 산하는 갈기갈기 찢기었고, 남한은 1인당 GDP 67달러로 세계 최빈국으로 떨어졌으며, 북한은 심한 폭격으로 구석기 시대로 되돌아갔다.
 누가 무엇 때문에 이런 참혹한 전쟁을 일으켰는가? 일본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고 이역만리를 떠돌며 독립운동을 하던 그들이 아니었던가? 세계 2차 대전이 미국의 승리로 끝나서 얻은 해방! 소위 민족의 지도자라고 자처했던 그들은 이 기막히게 얻은 해방의 기회를, 민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신들의 정치적 야욕을 달성하는데 전리품 정도로 쓰지 않았는가? 해방된 고국에 돌아와서 사분오열되어, 전쟁을 일으켜 나라를 두 조각 내놓고, 500만명이나 되는 소중한 인명을 살상시켰으면서도 독립을 위해 싸웠다고 진정으로 말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허위였다고 민족 앞에 통곡하고 참회하시라! 그들이 남긴 치욕적인 분단의 현실은 극복될 기약도 없이 오늘도 38선에서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절규하고 있다.
 조국 분단을 역사적 유산으로 받은 이 시대의 지도자들이여!
 6.25동란이 주는 역사적 교훈을 한시라고 잊지 말아 달라. 이데올로기가 남과 북, 우리 민족 전체를 족쇄로 묶고 있는 현실과 ‘어떠한 이념이나 가치도 민족 생존과 자결의 가치를 뛰어 넘을 수는 없다’ 진리를…. 그리고 또 다른 6.25 동란을 준비하지 말라. 추호라도 무력과 핵무기로 통일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지 말라. 전쟁은 인간들이 펼치는 최악의 광란이고, 인간의 양심과 민족의 보전을 말살하는 지름길이다. 민족을 위한다는 허울로 선대들 같이 자신들의 정치적 욕망을 채우지 말라. 남북한은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휴전선의 철조망을 걷어내야 한다. 늦으면 늦을수록 민족사에 빚으로 남을 것이다.
 약소국의 운명은 강대국들에 의해 결정된다. 이미 우리는 경험하지 않았는가? 우리 근대사의 비극은 18~19세기의 세계정세를 읽지 못한 무지에서 일본에 합병 당하면서 시작된 것을…. 작금의 정세를 보라. 한반도에 대하여 일부 국가는 중국이 북한을 합병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가? 제2, 제3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또 다시 체결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지도자들은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통일된 조국에서 영원히 우리의 후손들이 자유와 평화를 존중하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세계인들과 더불어 살아가게 할 의무를 지고 있다.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더 마음을 다지자. 어떠한 이데올로기나 가치, 정치·경제 체제 그리고 핵무기도 ‘민족의 생존과 번영, 자결의 가치’에 우선할 수 없다는 것을…. /교육과학기술연수원장 김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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