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외양간을 미리 고쳐야 한다

박영학(원광대 신문방송학 교수)

온 나라가 미디어법으로 들끓는다. 누구를 위한 법 개정인가. 미디어법이 통과되면 일자리 2만개가 새로 생긴다고 한다. 이미 단골메뉴가 되었다. 현행 방송계 전체 인력이 2만 명 정도인데 말이다.
이 미디어법이 통과되었다고 치자. 다음 수순은 뻔하다. 재벌과 신문 재벌의 방송 진출이다. 거대 자본이 방송에 진입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거대 자본이 방송을 통해 거둘 수 있는 이윤은 첫째, 투자한 만큼 돈을 거두는 것. 둘째, 자신들의 입맛대로 여론은 조성하는 것이다. 설사 단기적으로 돈벌이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둘째 조건이 완성되면 다른 부가 가치 창출은 코 풀기보다 쉬울 것이다.
이(李) 정권 들어<와이티앤>의 종사자가 해고 되고 문화방송의 ‘피디수첩’이 검거되고, 촛불이 짓밟혔다.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가 거덜난지 꽤 됐다. 비판이 두려운 것이다.
묻자, <케이비에스>가 최근 들어 왜 시청자들로부터 외면 받는지……. 신뢰도와 시청률에서 늘 1등을 유지하던 1년 전 <케이비에스>를 만날 수 없다. 그 사이 <케이비에스>는 사장 하나가 바뀐 게 전부인데 그 결과가 이러하다. 미디어법이 통과되고 거대 자본이 진입한 뒤를 걱정하는 것은 이런 점 때문이다. 권언 유착은 낡은 개념이다. 지배와 종속만 남았다.
미국의 <뉴스 코퍼레이션>, <웰터 디즈니>, <타임워너>를 국제적인 3대 미디어사라고 한다. 이 가운데 <월터 디즈니>사의 사례를 보자. 테마 파크 중심의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디즈니는 ‘디즈니의 문화유지’와 ‘공연’을 으뜸으로 친다. 그런 디즈니사가 1996년 ABC와 합병한 첫째 목적은 “디즈니 제품의 홍보 정류장”으로 텔레비전 네트워크를 얻는데 있었다. 합병 후 ABC 토요일 저녁 7시 어린이 프로는 아예 ‘디즈니의 경이로운 세계(Wonderful World of Disney)라는 시리즈로 변했다. 디즈니사에게 ABC의 합병은 아이스 학키 팀인 ’마이티 덕‘과 야구팀인 ’애너하임 엔젤스‘를 거느리고 기존의 ’ABC 스포츠‘에 ’디즈니 스포츠‘를 끼워 넣는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오락 재벌의 방송 진출은 기껏 자사 제품 선전장을 확보했다는 의미 이상의 것은 없다. 선전장이라는 단어 대신 “정거장”(platform)이라는 고상한 표현을 쓸 뿐이다.
<타임 워너>가 만든 영화 ‘스페이스 젬’(Space Jam)속의 소품은 물론 인물의 패션에 이르기까지 제휴사의 제품 일색이었다. 당연히 영화는 제품 광고화로 변질되었다. 그건 미국오락 산업의 사례 아니냐고 반문하지마라. 머물 수도 나올 수도 없는 이라크, 아프칸 전쟁을 부추기는 방송은 군수 자본의 부추김 아니던가.
미디어 법은 대자본과 신문재벌의 방송 진입을 트는데 있다. 그런데 대자본의 소유자는 누군가. 눈감고도 알 수 있다. 학맥, 지맥, 돈맥으로도 모자라 혼맥으로 얽히는 소수 거대자본의 고질 때문에, 그리하여 표현의 자유가 그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한 공분의 적이 될 것이 뻔한 때문에, 투자한 만큼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자본의 생리란 것을 알기 때문에, 지키자는 것이다, 방송의 환경 감시 기능 부분을.
방송운영이 거액의 재정을 필요로 하는 사업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방송의 돈벌이는 일반 회사의 돈벌이와 다르다. 소수 자본가의 이익 극대화 논리가 아니라 방송을 잘하기 위해 필요한 만큼만 벌어야 한다는 대 전제가 깔려있다. 그걸 공공성, 즉 다수인이 관련된 이익을 담보하는데 있다. 그런 다수 관련의 공익은 가장 일차적인 “환경감시 기능”을 수행한데서 오는 반사물이다.
권력은 쥐는 순간 지배 ? 군림 ? 영속을 꿈꾼다. 절대 권력이 절대로 부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권력의 그런 생리 저변에 깃든 잇속을 미리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감시기능이다. 거덜 나고 뒷북치는 것은 감시가 아니다. 거대 권력을 비판하고 굴절된 질서를 세우는 안건설정, 그게 여론조성 또는 여론 환기이다.
권력은 총칼이 아닌 언론에서 나온다. 미디어를 장악하는 세력이 사회를 지배한다. 오늘의 신문 방송이 독주와 졸속과 무한 위기 조성 등을 감시하고 고발해야 하는 이유이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