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무원(孤立無援). 그 사전적 의미는 ‘고립되어 구원받을 데가 없음’이다. 처지가 어려운 데 도움 받을 곳이 없어 막막하다는 말이다. 전북의 요즘 처지가 딱 고립무원이다. 할 일은 많은 데 되는 일이 없다. 크고 작은 지역현안사업들은 정부와 정치권의 무관심 속에 표류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경쟁을 붙여 놓은 여러 사업에서 전북은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쓰린 속을 달래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 전북의 주변을 돌아보자. 한마디로 딱하다. 최근 나온 자료로 보면 인구증가율이나 재정자주도, 대중교통만족도 등 여러 방면에서 전북은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반론도 있겠지만 지표는 어디까지나 지표다. 현안사업 쪽으로 눈을 돌리면 그쪽 사정도 좋지 않다. 전북이 목을 빼는 새만금 사업은 아직까지도 화통한 진전이 없다. 겨우 방조제만 막아놓고 정부부처간 혹은 정부와 지자체간 엇박자만 노정되고 있다. 또 공항이나 항만, 각종 전략산업도 비용편익분석이라는 덫에 걸려 줄줄이 ‘타당성 낮음’ 판정을 받는 처지다. 광역경제권에서는 여전히 광주 전남의 들러리다.
더 괴로운 것은 이 난국을 타개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선 정부의 무관심과 홀대는 더 심해지는 듯싶다. 예산이나 정책 면에서 전북도의 입장은 정부에 의해 존중받지 못하는 양상이다. 정부가 획일적인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만 들이미는 바람에 전북으로서는 냉가슴을 앓고 있다.
정치권 역시 별 도움이 안 된다. ‘호남 혹은 전북당’으로 취급받는 민주당은 야당이라는 한계에다 중앙에서 ‘큰 정치’를 하느라 지역에는 별무관심이다. 전북출신 국회의원들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배경인데 이들 역시 자기 지역구 사업이나 챙길 뿐 전북 전체의 큰 그림에는 무덤덤하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더 말할 것이 없다. 당 지도부가 전북을 방문하거나 유력인사들이 간간히 들르지만 실속은 없다. 전북 도당은 우선 힘이 실리지 않아 할 일이 별로 없어 보인다. 과거에는 이런 저런 입장 표명이라도 하더니 최근에는 그 움직임마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물론 타시도는 절대 우군이 될 수 없다. 전국 단위 혹은 영호남 광역자치단체장들이 머리를 맞대고 협력방안을 논의한다지만 이해가 걸리면 아무 소용없는 만남이다. 새만금을 놓고 전남 등 타시도들이 딴지거는 듯한 인상을 주는 데서도 이를 읽을 수 있다. 더욱이 정부가 지자체를 경쟁시켜 효율성을 높인다는 복안이고 보니 치고받는 투쟁적 관계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
이처럼 우군이 없는 처지에서 전북도나 일선 시군의 힘으로 난국을 헤쳐 나가는 일은 힘에 부친다. 누구든 붙잡고 호소를 하려해도 붙잡을 사람이 안 보이는 처지다. 그러니 건의서나 띄우고 중앙부처에 발품팔고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에게 통사정하는 외에 별달리 대안이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고립무원의 처지다.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만도 없다.
꼬일 대로 꼬인 상황을 단칼에 풀어줄 묘안은 없다. 우선 국회의원들이 맹성해야 한다. 아무리 야당 일색이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들이 앞장서 전북을 밀어야 한다. 정가에서 ‘전북당’이라고까지 폄하 당하는 민주당이다. 당연히 대여 정치투쟁과 병행해서 자신들의 텃밭노릇을 하는 전북에 보답해야 마땅하다. 적어도 지역현안에 관한 한 민주당과 지역출신 국회의원들은 소매를 걷어붙이는 게 도리다.
도민들의 분발도 긴요하다. 이웃 광주전남의 힘은 도민들의 굳은 의지와 뜨거움이다. 일단 지역사회에 중요한 아젠다가 떠오르면 토론과 의견수렴의 과정을 밟은 뒤 뜻을 한 데 모아야 한다. 그 다음은 투쟁이다. 예산 투쟁이든 제도 투쟁이든 세게 대들어야 한다. 아마도 이 힘이 있어야만 전북이 제 몫 찾을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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