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상상하게 하라

전라북도전주교육장 유 기 태

인도나 태국에서는 야생의 어린 코끼리를 길들이기 위해 발에 굵은 쇠사슬을 채우고 쇠사슬의 한쪽 끝을 튼튼하고 우람한 나무 기둥에 묶어 둔다. 아기 코끼리는 어떻게든 쇠사슬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쳐보지만 우람한 나무 기둥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아기 코끼리는 발버둥치기를 반복하면서 사슬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코끼리는 이른바 후천적 무력감을 학습하게 되고 결국은 사슬의 길이를 넘어서는 행동을 포기하게 된다. 그래서 다 성장한 뒤에도 쇠사슬이 아닌 가느다란 밧줄로 작은 나뭇가지에 묶어놔도 도망가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 뿐이라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동물이 자기 몸무게의 몇 십분의 일에도 못 미치는 사람들에게 조종을 당하며 살고 있는 코끼리의 운명이 안타깝다는 생각도 하였지만, 우리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은연중 어떤 틀 속에 고착시켜 나약한 코끼리 같은 학생으로 만드는 일은 없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학생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들이다. 그런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역할이 기대된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기존의 가치 또는 요구에 의하여 어떤 규범적 역할을 기대하면서 일정한 틀에 가두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한다. 모든 학생들이 영어도 잘 하고, 수학도 잘 하기만을 바라는 것이다. 학생 개개인의 소질과 적성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배려 없이 모두를 하나의 틀에 가두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수업이 끝나자마자 학원으로 몰려가게 하는 등 모든 에너지를 한쪽으로만 집중하게 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자유로운 상상과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일에 소홀이 하고 있는 것 같다.

‘대한민국 소프트웨어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안철수 박사는 자유로운 상상과 열정을 통해서 훌륭한 업적을 일궈낸 사람이다.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프로그램인 V3를 개발할 당시 그는 일류대학의 의학도였다. 일류대 출신 의사로서 안정된 미래가 보장되어 있음에도 그는 엉뚱한 상상(?)에 들떠 있었던 것이다. 거의 7년 동안 매일 4~5 시간만 잠을 자면서 백신 개발에 열정을 바친 것이다. 만약 안철수 자신은 물론이고 그의 가족이나 스승이 일상적, 규범적 틀에 얽매여 백신 개발을 주저하거나, 비난하거나 폄하했다면 어떠했을까. 아마 우리가 알고 있는 안철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자유로운 상상과 열정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IT강국의 자존심을 지켜내지 못했을 것이다. 안철수 박사의 고백처럼 27년이라는 긴 배움의 여정을 통하여 지름길로 오지 않고 돌아온 아쉬움은 있지만, 그의 자유로운 상상과 열정은 잘 할 수 있는 부분을 스스로 찾게 했고, 결과적으로는 그의 표현대로 ‘영혼이 있는 승부사’가 된 것이다.

새학기를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있다. 방학은 한 학기 동안 배웠던 내용을 스스로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은 보충하기에 더없이 귀중한 시간이다. 그러나 방학이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학생들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으로 확대시켜 주는 일이다. 학부모나 교사가 학력 신장 등 어느 한 부분만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학생들의 가지고 있는 잠재역량을 개발하지 못한다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봉사활동, 탐구활동, 모험활동, 수련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새로운 것을 스스로 배우고 깨닫게 하는, 그리하여 무한한 상상력으로 들뜨게 하는 방학을 안겨주었으면 한다. 부모가 만든 학력신장 중심의 시간표에 묵묵하게 순응하게 하는 방학생활은 코끼리를 쇠사슬로 묶어 길들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느 한 부분만 잘 하여 안주하게 할 것이 아니라, 늘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사슬에 묶인 나약한 코끼리가 아닌 우주를 품은 큰 코끼리로 거듭나도록 도와주는 방학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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