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읍 관통로에서 매일시장 입구로 통하는 고창교에 들어서면 여러 가지 상(牀)을 판매하는 노인을 만나게 된다. 지금은 찻상, 교자상 정도가 팔리고 있는 상태지만 밥상문화가 발달된 지난 시대엔 하루에 20∼30개 정도의 상을 거뜬히 팔아치웠다고 자랑한다. 하루에 하나도 팔리지 않을 때도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고창 5일 시장이 열리는 날에는 어김없이 제자리에 나타난다.
 우리나라 5일장이 서기 시작한 시기는 15세기 말 조선시대 때에 열흘 간격으로 열리던 장시(시장)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그 수가 증가함에 따라 17세기 후반부터 5일 간격으로 열리게 됐다. 그 당시 시장경제를 이끌고 있던 보부상들이 시장과 시장을 옮겨다는데 가장 적당한 기간이 5일이기 때문이라는 것.
 어쨌든 1956년 해리시장 개설이후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고창지역 5일 시장은 57년 고창시장, 65년 흥덕시장과 무장시장, 부안시장 그리고 67년 대산시장, 74년에 상하시장이 개설돼 지역중심상권을 형성하고 고창경제를 이끌어 왔다. 긴 시간만큼 이곳에는 주민들의 애환과 향수가 있다. 3일과 8일은 고창시장, 4·9일은 흥덕과 해리시장, 5·10일은 무장, 부안시장, 2·7일은 대산과 상하시장 개장일이다.
 한때 지역상권의 중심으로 서민생활상을 대변하며 호황기를 누리던 각 지역 전통시장은 인구감소와 대형마트 등에 치여 명맥만 유지하는 곳이 대부분이고 고창시장만이 수산물과 청과, 야채 등 신선하고 다양한 품목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어 그런대로 활기를 띄고 있다.
 3일과 8일, 5일 간격으로 장이 서는 고창시장은 고창읍 신흥동에 위치한 상설시장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새벽 6시가 되면 촌부들이 텃밭이나 들에서 채취한 쑥, 나물, 냉이, 씀바귀 등을 들고 길거리 가장자리에 자리 잡고 이어 고추와 마늘, 양파, 대파 등을 가지고 나온 떠돌이 상인들이 도로 양편으로 즐비하게 판을 벌여 넣고 손님을 기다린다. 여기에 조개, 갈치, 병어, 꽃게를 비롯해 비교적 귀한어종으로 평가되는 광어, 농어 등 각종 물오른 생선들을 가득 쌓아 놓은 상인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고향의 정취가 묻어나고 소박함과 넉넉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역시 전통재래시장이다.
 8시가 넘으면 많은 사람들이 장을 보기 위해 몰려든다. 젊은이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대부분 중장년과 반찬거리를 사러 나온 주부, 노인들이지만 왠지 모르게 얼굴에 화색이 돌고 깔끔하게 몸단장을 했다.
 본격적으로 시장이 열리게 되는 10시쯤에는 시장분위기가 절정에 다다른다. 사람들이 북적이고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흥겨운 음악소리와 함께 물건값을 흥정하는 목소리, 상인들이 사람을 붙잡는 소리가 섞여 묘한 하모니를 연출한다. 이소리가 시장에 나온 사람들을 활기차고 흥겹게 만들고 있다. 예부터 촌로와 촌부들이 5일장을 기다리고 장을 보러가기 위해 멋을 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20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순대국밥집 아저씨는 손님맞이에 분주하다. 장이 서는 날에만 문을 여는 이집은 얼큰하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장사가 예전만큼은 안 되지만 여전히 찾는 단골손님이 많다. 막걸리와 곁들인 국밥 한 그릇이 세상 부러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 사정이 그렇게 녹록하지만은 않다. 지난 1965년 시장개설과 함께 자리를 잡은 ‘일성상회’ 주인아주머니는 “30년 이상 한자리에서 건어물을 팔아왔지만 요즈음처럼 장사가 안 되기는 처음”이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더구나 “휴가철에다 긴 장마로 매출이 절반정도까지 뚝 떨어졌다”며 “경기불황 때문에 이용객까지 크게 줄어 완전 죽을 맛이라”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고창시장은 199개 점포 중에서 현재 운영 중인 점포수는76개에 불과하다. 여기에다 12월 완공을 목표로 고창농협 대형 하나로마트가 들어설 예정이어서 상인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가고 있다.
 이에 고창군은 활기를 잃어가고 있는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팔을 걷어 부치고 시장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재래시장이 활성화돼야 지역경제가 살아난다는 방침에 따라 대책을 마련하고 시책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15억여 원의 사업비를 들여 주차장, 특산품판매장, 진입로개설을 지난 1월23일 완료한데 이어 지난해는 4억 원으로 장옥개량과 비가림 설치, 화장실 신축, 소방 설비, 간판 등을 말끔히 정비해 이용객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이 같은 시설개선 및 현대화사업과 함께 다양한 이벤트를 마련하는 등 주민들의 이용을 유도하기 위한 다각적인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침체된 전통시장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시설현대화와 함께 상인들의 의식변화 및 경영혁신도 중요하다”며 “재래시장 경쟁력 강화를 위한 지원책 마련 등 지역경제의 중심축인 재래시장 활성화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고창=신동일기자·s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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