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노조는 민주노총의 불쏘시개인가

김경미(공교육 살리기 학부모 연합 공동대표)

아무리 현대사회가 개인적 성향을 중시하는 사회라지만 집단의 위력 앞에는 특출한 개인이라 할지라도 이에 매몰되기 쉽다. 때문에 사람들은 각자의 사생활을 강조하면서도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성향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조직이나 집단을 만들어 사회활동을 한다.
이런 집단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노동조합이다. 특히 사회적 약자라는 출발선을 가지고 있는 노동조합의 결속력은 다른 집단에 비해 월등히 강하다는 특성을 보인다. 하지만 결속력이 남다른 노동조합이라 해도 반드시 그 설립취지나 노조원들의 뜻과 같이 움직이지는 않는 법이다. 처음에는 서로를 신뢰하고 북돋워주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민주적으로 운영되곤 하지만 대개는 그 규모가 커짐에 따라 소수의 운영자들이 의사결정을 독점하여 다수를 끌고 가는 체제로 바뀌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조를 대표해 이끌어가는 소수가 사심(邪心)을 가지고 있다면 필연적으로 심각한 폐단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그 소수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노조를 이용할 경우, 그 폐단은 극에 달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다.
1989년 결성된 전교조는 당시 ‘참교육’을 표방하며 촌지 거부와 학교비리 근절 운동 등을 벌여 많은 국민의 관심과 지지를 받았다. 일부에서는 교사들이 존경받는 스승의 자리를 박차고 노동자의 길을 걷는 것과 그들이 가진 경도된 이념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 탓에 부각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 될 고귀한 스승님들께서 제자들과 교육현장의 정화를 위해 목숨이라도 바치겠다’고 나섰으니, 어느 학부모, 어느 국민이 호응을 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전교조는 초심을 저버리고 교육보다는 조합원과 조직의 이익을 추구하는 철저한 이익단체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 결과 최근에는 많은 국민들에게 반교육단체로 낙인찍혔고, 공교육 황폐화의 주범이라는 지탄까지 받고 있다. 노조의 속성이자 한계인 집단 이기주의를 벗어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 민주공무원노조(민공노), 법원공무원노조(법원노조)가 이달 21일부터 이틀간 ‘노조 통합과 민주노총 가입을 위한 조합원 찬반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의 집계에 따르면 현재 3개 노조의 조합원은 모두 10만 9000여 명(전공노 4만8600명, 민공노 5만2300명, 법원노조 8300명)이다. 이들 노조가 통합되어 민주노총에 가입하게 되면 전교조를 제치고 최대 단일노조의 자리를 꿰차게 된다. 그동안 민주노총의 투쟁논리 배양과 선전에 앞장서온 전교조의 규모(7만 7000여명)를 생각할 때, 통합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이 향후 노동시장은 물론 우리사회 전체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많은 국민들이 우려를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공무원노조들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세를 불리겠다는 건 트집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어떤 점에선 효율화를 기대할 수 있는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통합단체를 민주노총으로 끌고 들어가려는 전공노의 시도는 쉽사리 용납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엄격히 유지돼야 할 공무원의 정치중립성을 깨뜨릴 우려가 크다. 현 공무원법은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금하고 있다. 공무원은 근로자이기에 앞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할 막중한 의무를 가진 특수한 신분이기 때문이다. 공무원노조법이 단체행동을 금하고 있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공무원노조가 단순히 자신들의 권익 보호를 넘어 특정 정당의 당파성을 가지고 사회적 논쟁에 개입하게 되면, 국민 전체에 대해 차별 없이 복무해야 한다는 본분에 충실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전공노가 통합공무원노조를 민주노총 산하단체로 끌어들이겠다는 것은 사실상 공무원의 정치 중립을 깨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비대해진 전교조가 교원평가제 반대 등 집단의 이익에 집착하는 것처럼 공무원3개 노조가 민주노총에 가입하려는 이유는 뻔하다. 다수의 위력을 앞세워 강경투쟁 노선에 의존함으로써 연금 개혁과 구조조정 저지 등 집단이익을 관철하겠다는 것이다.
이념에 예속된 과격한 정치투쟁과 내부 비리에 진저리를 치며 민주노총을 탈퇴한 사업장 노조가 현재 쌍용차·KT 등 올 한해만도 16개에 이르러 붕괴 위기를 맞고 있다. 공무원노조들이 이를 뻔히 지켜보고서도 전교조에 이어 민주노총의 불쏘시개 노릇이나 하겠다니 참으로 한심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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