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신나게 몰아치다 보면(원한식)
우리 인간은 누구에게나 자신을 보는 거울이 있어서, 그 거울을 통해 자신을 봅니다. 그 거울을 통해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추구하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자아개념(self concept)을 갖는다는 것인데, 중요한 점은 이 자아개념이 주변 사람들을 통해 만들어지고 바뀐다는 것입니다.
“생긴 것 하고는, 하는 짓도 생긴 대로 한다니까!” 부모한테 이런 소리를 들은 아이가 있다고 합시다. 이 아이는 자신을 보는 거울에서 늘 못난 자신을 볼 것이고, 미운 짓 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게 될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 대해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언어를 쓸 때, 멀쩡한 아이를 이상한 아이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낙인효과(烙印效果, labeling effect) 때문입니다.
범죄학 이론에 낙인이론(labeling theory)이라는 게 있습니다. 1960년대에 등장한 이론으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제도나 규범이 오히려 범죄를 유발한다는 이론입니다. 사회 규범에서 볼 때 어떤 특정인의 행위가 규범에서 벗어났을 때, 사회가 단지 규범을 벗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나쁜 행위라고 규정하고, 당사자를 일탈자로 낙인찍기 시작하면, 결국 그 사람은 범죄자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당사자의 행위 자체가 범죄가 되거나 반도덕적 행위가 아닌데도 단지 세상이 그렇게 규정함으로써 범죄를 일으키게 된다는 겁니다.
어린아이를 보고 주위에서 자꾸 ‘바보’라고 낙인찍다 보면, 이 아이가 갈수록 의기소침해지면서 자신이 진짜 바보인 줄 의심하게 되고, 끝내는 진짜 바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미국이 냉전 이후 자기한테 동조하지 않는 국가들을 ‘불량국가’로 규정하고, 다시 이라크나 북한을 ‘악의 축’으로 낙인찍은 뒤 국제사회에 자기와 뜻을 같이 할 것을 강요하다 보니, 우리가 어느새 이들 국가들이 정말 ‘악마의 나라’들로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1980년 5월 광주에서 있었던 시민군의 행동을 가지고 ‘폭도’니 ‘빨갱이’니 ‘불순분자’니 하며 몰아치는 바람에 광주시민들이 거의 10년 동안 엄청난 고통을 겪었던 적이 있습니다. 바로 당시 사건이 ‘광주사태’라고 낙인찍힌 데에 따른 비극입니다. 하지만 그 사건의 정식 이름이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바뀜으로써 폭도로 불리던 사람들이 ‘자랑스러운 시민군’으로 바뀌었습니다. 단순히 이름만 바뀐 게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완전히 바꿔놓은 것입니다. 낙인효과의 아주 좋은 본보기입니다.
우리는 흔히 “찍히면 안 된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누구누구는 어쩐다.”고 한 번 찍히게 되면,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심한 경우에는 인생이 끝장나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얼마나 쉽게 다른 사람에게 죄인이라는 낙인을 찍습니까? 그 사람이 처해있는 상황과 그 사람이 겪고 있는 고뇌를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채, 얼마나 자주 “너는 안 돼, 너는 나쁜 놈이야.” 하고 몰아세웁니까? 지금 정치권에서 정운찬 국무총리 내정자에게 “연애는 민주당과 하고 결혼은 한나라당과 했다.”며 ‘변절자’라고 몰아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잘했다고 칭찬하자는 게 아닙니다. 다만 한 가지, 너무 신나게 몰아치다 보면, 그 끝이 어디일까 하는 게 두렵다는 겁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너무 몰리다 보면 이 나라 형편이 나빠지게 되는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장은 불쾌하고 화가 나더라도, “축하한다, 이왕 들어가는 거 당신 이름값을 하기 바란다, 그래서 그간 이명박 정부가 보여준 ‘난폭 역주행’에 브레이크를 걸고 진중하게 속도를 조절하는 ‘우회전’을 선도하길 바란다.”고 말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자는 겁니다. 상황이 그리 낙관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 난 원래 이래.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하며 악을 쓰게 만드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테니 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고 말하면서, 정치란 ‘말(lexis)과 행위(praxis)’로 이루어진 예술이라고 규정했지요. 폭력으로 이루어지는 한, 말을 통해 실현될 수밖에 없는 데,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말을 발견하는 행위가 바로 정치라는 겁니다.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고 한 우리 속담은 바로 그런 정치의 속성을 잘 알고 한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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