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마대사와 양무제(梁武帝), 이 두 분의 대화는 오늘날 까지도 유명하게 회자되는 일화다.
남인도 향지국의 셋째 왕자로 태어난 달마는 중국으로 건너와 중국 선종을 창시했다.
달마는 북위시대 말기의 귀족적 가람 불교와 수행체험을 도외시한 강설불교에 날카로운 비판을 가했다. 그리고 선의실천수행에 앞장서 노력하며 중국 불교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양무제는 불교중흥에 남다른 노력을 쏟았다. 절을 짓고, 경문을 번역하고, 비구니를 양성하는 등 누가 봐도 역대 최고라고 칭송받을 만했다.
불교계 최고봉의 인물로 존경을 받던 양무제와 달마대사가 처음 만난 것은 양무제 보통(普通) 원년(520) 9월 21일이었다.
광주자사 소앙의 주선에 의해서 였다.
사람들은 숨을 죽이며 이 두 거인의 만남을 주시했다. 많은 군신들 앞에서 대사와 무제의 세기적 대화가 시작되었다.
먼저 무제가 물었다. “나는 황제로서 지금까지 수많은 절을 짓고, 경문을 직접 옮기기도 했으며 또한 많은 승려와 비구니를 육성 했소.” “앞으로 내가 얼마나 많은 보답을 받겠습니까.”
“무공덕” 달마의 대답은 명료했다.
무제가 뛰는 가슴을 누르며 다시 물었다. “무공덕이라니.”, “그렇다면 진정한 공덕은 무엇이란 말이오.”
“마음과 지혜가 온전히 하나가 되어 아무런 걱정도 없는 것….” 대사는 돌아서며 “황제가 한 일은 당연히 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일이니 아무것도 아니란 말씀입니다.”라고 덧 붙였다.
양무제와 달마대사는 섭섭한 대화를 끝으로 이렇게 헤어졌다.
무제는 훗날, 달마의 말씀을 다 이해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몹시 안타까워했다. 뒤 늦은 무제의 후회, 그것이 중국 권력자들의 불교에 대한 바른 견해가 되는 하나의 시금석이 되었다.
# 우리는 살면서 진실과 위선의 갈림길에서 방황하곤 한다.
진실을 선택하면 그만인 것을, 괜한 것을 놓고 고민하는 그 뒤에는 탐욕과 위선이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발달은 우리 생활체계에 물질만능의 사상을 자라게 하고 있다. 정신체계까지 물질에 혼돈되어 이른바 세상의 지식인, 선구자라는 사람들까지도 때로는 흔들리는 모습이 적지 않게 보인다.
지방자치가 뿌리를 내려가면서 그 단체장들의 권력도 만만치 않게 행사 되는게 요즘이다.
어느 곳의 다리를 건설하고 경로당을 세우고, 문화재를 보수하는데 지자체의 지원이 따른다. 그러면 여지없이 수혜를 받은 관계자가 지자체장의 홍보에 팔을 걷고 나선다.
주민들이 낸 세금을 가지고 지원했을 뿐인데 마치 개인이 은전을 베푸는 식으로 오도되는 것이다.
탐욕의 잔치, 이를 연출해 가는 현대판 양무제류의 시대착오적인 모습이 볼성 사납다. 그리고 여기에 부화뇌동하는 이른바 위선적 지식인들의 허망함이 안쓰럽다.
달마대사의 큰 기침이 기다려지는 때이다. <이길용. 언론인(경영학박사)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