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남용

김환규 전북대학교 생물과학부

요즈음에도 흔히 사용하는 말 중의 하나가 사이비란 말일 것이다. 사이비란 ‘겉으로는 비슷하지만 실상은 그런 것이 아닌 것’이다. 이 말은 맹자가 제자 만장과의 문답에서 유래된 것이다. 즉, “모두가 그를 ‘점잖은 사람’이라고 하면 어디를 가나 ‘점잖은 사람’일 터인데, 공자께서 그를 ‘덕의 도적’이라고 하신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하는 물음에 맹자가 답하기를 "비난을 하려해도 비난할 것이 없고 공격을 하려해도 공격할 것이 없다. 시대의 흐름에 어울리고 더러운 세상과 호흡을 같이 하여 그의 태도는 충실하고 신의가 있는 것 같으며, 그의 행동은 청렴하고 결백한 것 같다. 사람들도 다 그를 좋아하고 그 자신도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와는 함께 참다운 성현의 길로는 들어갈 수가 없다. 그래서 덕의 도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맹자는 덧붙이기를 "나는 같고도 아닌 것을 미워한다"라고 하였다.
과학의 남용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사이비 과학이란 무엇인가? 사이비 과학은 적절한 증거가 없는 주장으로, 과학 남용의 전형적인 틀이다. 지구온난화는 우리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최대의 위기이다. 지구의 기후변화에 대한 증거는 넘쳐나는데 이러한 온난화가 인간의 활동 때문이라는 점에서는 회의론자들이 많다. 이들은 탄소 배출을 억제하는 정책 때문에 대기업들이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다른 편에 있는 사람들은 사심이 없는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사이비 환경그룹과 그 종사자들은 과학을 강매해서 연명하는 수가 많다. 사람들은 사실을 왜곡하는 경제적인 모티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현재, 과학의 가장 신성한 의무는 인간을 자기멸종으로부터 구하는 일일 것이다. 종교적 신념과 마찬가지로 과학은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이데올로기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 인간은 합리성이라는 매우 얇은 겉치장과 과학을 차용한 허튼소리에 쉽게 영향 받는다. 특정 인종의 우수성에 대한 나찌의 믿음은 진화설을 잘못 적용한 사이비 과학의 한 예이다. 과도한 확신은 과학의 본질이 아니다. 종교적 몽상가들과 파시스트 등의 과격한 사람들은 그들의 생각에 반하는 명백한 증거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신념을 바꾸지 않는다. 통계, 그래프, 도표의 이용 또는 수학 공식이 어떠한 견해에 대해 권위라는 마법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예측이란 매우 힘든 일이다. 일반적으로 예측은 초기 조건에 좌우된다. 지난 몇십년간, 카오스 이론자들은 초기의 아주 작은 차이가 훗날 매우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증명하여왔다. 예측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과 함께 과학자들은 실존의 물건조차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예를 들어, 고체 백금선의 직경을 잰다고 하자. 우리는 여러 측정 도구를 이용하여 직경을 측정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정확성의 한계는 남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고체 백금선으로 보는 것은 실상 백금 이온의 중심이 전자라는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형태이다. 그렇다면 전자-영역의 어디에서부터 선이 시작되는가? 리아스식 해안선은 기하학에서 다루는 원이나 삼각형 등과 다른 불규칙적이며 복잡한 도형이다. 원둘레는 전체적으로는 휘어 있지만 이것을 작은 원호로 세분하고 다시 미세하게 분해하면 세분된 원호의 각 부분은 선분에 근사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세분됨에 따라 전체적으로 휘어 있다는 성질을 잃어간다.
과학자들이 백금선의 직경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일 조차도 어려운 문제라고 한다면, 사회과학자들은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어떻게 분석할까? 백금선은 사람에 비해 매우 단순하다. 질문을 어떻게 했느냐 또는 답변자의 기분상태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고의적으로 왜곡하지 않는 경우조차도 통계자료를 모으는데 수많은 오류가 있다. 이러한 오류는 지적 호기심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정확하고 정량화 할 수 없는 요인들이 녹아있는 통계자료들이 정책을 만드는데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정량화할 수 없는 것을 정량화하려고 시도한다. 사회병리에 대한 부정확한 진단은 그 자체로는 악의가 없다. 그러나, 사회-개조자들의 시각과 연결되면 위험해질 수 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지난 일세기 동안에만도 히틀러, 스탈린, 폴 포트와 같은 여러 유형의 사회-개조자들의 행위와 그 결과를 지켜봐왔다. 좋은 의도를 가진 사회-개조자들조차도 사회의 안녕을 위협할 수가 있다. 지식 추구와 사회여론 조성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그들의 작업이 초래하는 위험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그들은 인간의 복지 증진과 함께 사회와 지구 차원에서의 현상에 대한 이해 증진, 이 두 가지 모두를 목표로 해야 한다. 지식의 무서운 힘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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