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수칼럼///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가을은 하늘에 우물을 판다/ 파란 물로/ 그리운 사람의 눈을 적시기 위하여/ 깊고 깊은 하늘의 우물 그곳에/ 어린시절의 고향이 돈다/ 그립다는거, 그건 차라리 절실한 생존같은 거/ 가을은 구름밭에 파란 우물을 판다/ 그리운 사람의 얼굴을 비치기 위하여. 조병화의 ‘가을’ 이다.
가을이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아니 바리톤이 되고 화가가 된다. 이제 농익어가는 가을을 만끽해도 좋다. 클래식이든, 대중가요든, 문학이든 무엇이라도 챙기며 가을을 붙잡아 보자. 콘서트에도 가고 지역축제도 가보자. 문화와 예술이 어우러지는 가을에 푹 빠져보는 여유를 놓치지 말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을은 결실과 축제의 계절이었다. 추수를 마친 다음의 감사축제는 부족시대부터 여러형태의 의식으로 행해졌지만 기록에서는 삼한시대에서야 나온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 동맹, 동예의 무천이 그것이다. 삼한시대의 추수감사제는 추수와 수렵에 대한 감사가 함께 행해졌다.
그러다가 신라시대에 와서 추수감사가 추석(가위)으로 정착되기 시작했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 여름에 땀흘려 가꾼뒤 가을에 거둬들인 곡식을 놓고 성대한 축제가 벌어졌다. 당시에도 ‘가배’라 불리며 술과 음식을 장만해 먹고, 노래하고 춤추며 온갖 놀이를 즐겼다. 가을의 축제는 형태만 다를 뿐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 듯 하다.
서양에도 추사감사제가 있다. 성경에서 나오는 최초의 추수감사제는 가인과 아벨의 제사(창세기)다. 하지만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은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이 인디언들을 초대해 추수한 곡식과 과일 등을 놓고 감사를 드리며 음식을 나눠먹었던 것을 효시로 볼 수 있다.
가을은 또 독서의 계절로 꼽힌다. 책을 읽는데 계절이 따로 국한될 수 없겠지만 천고마비의 너무 좋은 날씨는 책을 가까이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책의 매력은 훈훈한 이야기를 가슴에 담아두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천하도록 하는 데 있다. 가슴 설레는 사랑과 우정, 자연과의 교감 등 간접경험은 마음을 풍요롭게 채워준다. 책을 읽는 목적중의 하나도 이러한 감동을 느끼기 위함이다. 또한 행복이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기도 하며 사라져가는 여유와 웃음을 되찾아준다.
전국적으로 지역축제는 700여개나 된다. 도내에서도 25개의 축제가 이 가을에 열린다. 상당수가 이미 끝났거나 진행중이지만 앞으로도 많이 남아있다. 해를 거듭하면서 지역축제들도 구조조정을 거치며 단체장들의 표밭의식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듯 하다. 알곡처럼 내용이 튼실한 축제들도 많다. 여행삼아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코스모스길을 나서도 괜찮을 듯 싶다. 가을을 즐겨야하기 때문이다.
4계절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을은 더더욱 발길을 붙잡아 끈다. 플라타나스 낙엽이 지는 시골길, 울긋불긋한 오색단풍은 발바닥을 간지럽혀 방안에 가만있질 못하게 한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어디라도 떠나야 한다. 반드시 풍악산(가을의 금강산)이나 내장산이 아니어도 좋다. 어느 산 어느 골짜기를 가도 이동원의 ‘향수’를 흥얼거리는데 멋지게 조화를 이뤄준다. 자전거 하이킹을 해도 좋고, 드라이브를 해도 훌륭하다.
하지만 계절을 느끼는가 하면 어느덧 초겨울이 기다리고 있다. 가을을 보내기가 아깝다.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은 시월의 마지막 밤이라는 노랫말 때문에 매년 이맘때면 어김없이 노래방 애창곡 1번이 된다. 소슬바람이 부는 가을저녁 바바리 깃을 세우고 정세훈의 ‘심연’에 도취돼 보자. 김동규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도.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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