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으로 전주를 말하다

이흥재(전주정보영상진흥원장)

고속도로를 타고 전주 가까이에 이르면 산들의 능선이 바뀐다. 글쎄 구태여 산이라 부르기 조차 민망할지 모르지만, 봉긋하게 솟다가 그냥 내려앉은 삼례나 김제부근 야산도 산은 산이다. 그 산들의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선이 이어지면 나는 전주에 이르렀음을 알게 된다. 찌를 듯이 솟구쳐 내달리는 험악한 산에 비해 우선 눈이 편안하다. 극대칭의 삼각구도가 아닌 구부정한 모습이 세련되어 보이지는 않지만 여운이 있어 고향친구 같은 정감이 든다. 뾰족각과 무딘각이 절묘하게 얽혀 나타내는 자연예술의 곡선. 전주의 선은 이 야산에서 시작된다. 전주의 문화예술이 바로 이 야산에서 배운 것일지도 모른다.
톨게이트를 지나 ‘호남제일문’을 들어서면 처마 끝을 이어주는 부드러운 선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옥마을가운데서 가장 좋은 기가 모인다는 ‘학인당’ 지붕선도 역시 가장 아름다운 곡선인 현수선(懸垂線)이다. 같은 기와지붕이라 해도 일본이나 중국의 용마루선은 직선이어서 사뭇 그 맛이 다르다. 두 점을 이어 무딘각으로 만들어 지는 굽은 선. 곡선 가운데서도 현수선은 자연스럽고 편안함을 주는 눈 맛이 좋다. 시골 초가집마당에 길게 널린 빨랫줄, 마을입구 능선을 넘어가는 축 늘어진 전기줄, 나이든 스님의 목을 타고 흐르는 염주가 모두 자연을 닮은 현수선이다. 아름다운 마음속의 평화선이다.
선에서 전주의 아름다움을 찾기로 작심한다면 부채의 곡선미를 빼 놓을 수 없다. 합죽선을 펼쳤을 때 나타나는 선두(扇頭)의 둥그런 선은 그리 심하지 않은 기교만으로도 그윽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 선은 현수선을 뒤집어 놓은 포물선 모양이다. 현수선이든 포물선이든 자연에서 배운 이 흐름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하늘가에 그려지는 전주 인근 산들은 바로 포물선 아니면 현수선을 이어놓은 것 같다.
전주 한스타일 품목가운데 하나인 한복에서도 전문가들은 곡선미를 들춰낸다. 여자저고리의 둥근 배래선이 곡선미의 극치라고들 말한다. 한 켠에서는 전통 한복에서는 직선 통소매가 원래 모습이고 둥근 배래선은 근래에 새로 만들어진 변형이라고 꼬집는 이도 있다. 아무튼 이 둥근 배래선도 하늘을 향한 한옥의 추녀선 처럼 우리네 자연미를 닮은 아름다운 선이 자르르 흐른다. 부채의 선두처럼 급격하게 곡선을 이루는 것은 아니지만 은은한 선의 예술이다. 이 선은 한옥 건물의 맞배지붕 양측 박공에 달려있는 풍판(風板)과도 많이 닮아 있다.
한국 전통 생활양식이 오롯이 남아있는 전주. 그 생활문화 속에서 우리는 전주 인근의 야산을 닮은 현수선과 포물선의 흐름을 쉽게 만난다. 자연을 닮은 생활문화 속 아름다운 선을 전주의 선으로 삼는 것은 어떤가. 통째로 한국의 미라고 바꿔 말할 수도 있겠지만 우선 전주의 상징 선으로 삼아 도시디자인에 응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선으로 전주를 말하는 것이다.
건축물의 외양장식, 천변 다리의 모습, 지나치게 딱딱한 가로등 모습, 하늘가에 닿아있는 아파트 지붕선을 상징선으로 통일시켜보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CI에도 활용한다. 도시는 이미지이다. 색깔 못지않게 선이 남겨주는 이미지를 간추리는 것은 선을 주제로 하는 또 하나 전주 나름의 시각스토리를 만드는 작업이다.
파한삼아 부질없는 생각이 뻗어나간다. 그렇다면 이런 선은 전주에서의 삶에서도 필요한가. 두 점의 대척선상에서 에둘러 말하고, 면전에서 대놓고 비판하기보다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게 하고, ‘거시기~’라는 말로 함축해버리는 어법이며, 직선의 효율성보다는 곡선의 자연성에 기대하는... 일과 휴식, 가정과 직장, 공익과 사익, 평화와 파괴, 선과 악, 오해와 이해 등 삶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모습들에서 두 점을 이어내는 가장 인간적인 선은 무엇인지... 좀 더 살아봐도 아마 정답은 알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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