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가을), 파리, ‘풍류도시’가 되다!

윤중강 / 국악평론가, 목원대학교 겸임교수

파리의 가을은 쌀쌀했다. 스산한 바람이 느껴졌다. 10월 26일과 27일, 파리지앵(Parisian)들은 모두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세계문화의 집’으로 모여 들었다. 이틀 동안 한국음악을 집중적으로 소개한 여기는, 파리에서 ‘월드뮤직의 메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월드뮤직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래서 전 세계의 유명 월드뮤직 스타들은 모두 파리를 통해 입지를 넓히고 있다.
여기서 "21C 한국 음악의 오늘 그리고(Korea's 21st Century Music : There and Now)"의 공연이 펼쳐졌다. 그간 적잖은 국악공연이 파리에서 있었지만, 아직 그 인지도는 높지 않다. 한국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즈가수인 ‘나윤선’이 한국인이란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한국문화 혹은 월드뮤직에 관심이 있는 극소수는 ‘사물놀이’와 ‘판소리’란 용어는 알고 있다. 그동안 한국에서 대규모의 공연단이 파리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불 우호증진’이란 행사성이 강한 경우는 당시엔 기사화되긴 해도, 마치 ‘스치는 바람’처럼 곧 잊혀져간다.
몇 해 전부터 문화부가 좀 달려졌다. 국악을 하는 젊은이들에게 관심을 두고, 그들이 해외에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바로 그 중심에 ‘21세기 한국음악프로젝트’가 있다. 이번 파리 공연은 1부와 2부 공연으로 나눠졌는데, 앞에선 중견 연주가의 수준 높은 무대였다. 이지영(가야금), 강권순(정가), 김정승(대금), 김웅식(장구)은 40대 중에서 가장 해외연주를 많이 한 아티스트에 속한다. 이들 사인방은 외국 청중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알고 있는 듯했다. 한국의 선비음악인 풍류(風流)를 가야금, 대금, 장구를 통해서 정교하게 그려냈다. 무엇보다 강권순의 목소리를 듣고, 파리지앵들은 놀라했다. 강권순은 나윤선과 같은 재즈가수들이 갖지 못한 묘한 매력이 있다. 더불어 다른 민족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특성이었다. 클래식과 월드뮤직을 통해 귀가 발달 될 대로 발달한 그들도 한국의 여창가곡(女唱歌曲)과 이에 뿌리를 두고 현대적 감성을 덧입힌 ‘영혼의 울림’을 숨죽이며 들었다.
국내외에서 특히 관심을 둔 것은 2부에 등장한 젊은 국악인! 그들은 모두 ‘21C 한국음악프로젝트(KMP21)’ 출신이다. 해마다 국악방송은 창의성이 높은 젊은 국악인들을 발굴하고 있고, 이들과 함께 서구의 주요도시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그간 3년에 걸쳐서 여러 팀이 이 무대에 올랐지만, 가장 월드뮤직 시장에서 가능성이 있는 팀은 이번에 참가한 ‘숨’과 ‘불세출’. 이들은 음악에서 젊은 에너지가 느껴지지만, 요즘 국내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퓨전국악’과는 일정 거리를 두고 있다. 한국적인 선율과 한국악기의 음색에 충실하면서, 서양악기를 배제하거나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여성그룹 ‘숨’은 최소인원으로 최대효과를 내는 그룹이다. 자그마한 여성 2인이 대여섯 종의 악기를 다루면서 음악을 만들어내는 모습에 파리지앵은 꽤 신기해했다. 연주가 모두 끝났을 때, 객석에서는 환호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들은 젊은 국악인들 중에서 앞으로 유럽 진출의 기회가 많아질 것 같다. 사실 외국에서 장기적인 공연을 할 경우, 연주인원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난관이 ‘숨’에겐 해당사항이 없어 보인다.
21세기 한국음악프로젝트의 최고의 스타라면 역시 남성그룹 ‘불세출(不世出)’. 이번 파리공연에는 여섯 명의 참가했다. 한국전통음악 특유의 어법(語法)을 각 악기를 통해서 능숙하게 소화해내고 있었다. 뿜어내는 에너지를 조금 자제해 주었으면 바람도 있었지만, 혈기왕성한 젊은 그들에게 무리한 요구인지도 모른다. 아니, 불세출의 뜨거움은 파리의 찬바람을 잊게 하는 에너지였을지 모른다.
‘숨’과 ‘불세출’은 음악을 만드는 방식에서 현격하게 다르다. 전자가 유럽적이라면, 후자는 한국적이라고 할까? 숨은 동양적인 신비감이 느껴지는 음악을 하지만, 전체적인 음악 진행방식은 서구인들에겐 익숙한 방식이다. 불세출은 그렇지 않다. 장단을 중시하면서, 거기에 한국인의 호흡을 실어서 음악을 끌고 나간다. 그러나 이 두 팀에겐 공통점이 있다. 모든 연주가들이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악기의 달인이라는 점!
그들은 거의 1985년생! 오직 한 명이 한 살 많고, 또 한 명은 한 살 적다. 이들은 이제 살아온 지 4반세기가 된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국악이 해외에 많이 나가서 공연을 했지만, 사실 25살 젊은이가 공연을 한 바는 많지 않았다. 젊은 연주가들과 해외공연을 성사시키는 건, 내가 아는 한에서 국악방송이 가장 체계적이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젊은 국악인들을 해외의 주요한 무대에 서게 된다면, 사반세기 후, 서구에서 국악의 판도는 많이 달라질 거다.
재즈와 파두를 알고 있듯, 풍류와 시나위를 알게 될 날을 기대한다. 그렇게 될 때, 한국음악도 비싼 입장료를 줘야한 들을 수 있는 위치가 될 것이다.
연주회의 끝 무렵, 불세출의 대표곡 <풍류도시>를 연주할 때, 파리지앵들도 그들의 장단(리듬)에 맞춰서 몸을 조금씩 움직였다. 공연을 끝내고 파리지앵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들은 파리의 쌀쌀한 바람[風]과 세느강의 유유한 흐름[流] 속에서, 한국 젊은이들의 풍류(風流)를 마음으로 느낄지 모른다. 트렌치코트에 넣은 두 손이 한국의 장단을 흉내 내고 있을지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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