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잠잠해진 것으로 여겨졌던 신종 플루(인플루엔자A/HINI) 환자가 급증하고 있고, 그로 인한 사망자도 발생하고 있다. 환자의 대부분이 초등학생이라고 하니 초등학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들로서는 노심초사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겨울철을 앞두고 신종 플루의 급속한 확산을 보면서 바이러스에 대한 인간의 투쟁을 새삼 되새겨 본다. 인플루엔자로 인한 가장 큰 피해는 1918년에 처음 발생해 2년 동안 전세계에서 2500만~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 간 스페인 독감을 빼놓을 수 없다. 스페인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는 인류사에 있어서 질병으로 인한 가장 큰 재앙으로 볼 수 있는 14세기 중기에 발생하여 전 유럽을 휩쓸었던 페스트 보다도 훨씬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물론 제1차 세계대전의 사망자보다 더 많은 사람이 한낮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인플루엔자로 인하여 목숨을 잃었다. 스페인 독감이라고 불리는 독감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우리나라에서도 14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페인 독감이 창궐할 당시에는 바이러스를 분리·보존하는 기술이 없어 그동안 스페인독감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었는데, 2005년 미국의 한 연구팀이 알래스카에 묻혀 있던 한 여성의 폐 조직에서 스페인독감 바이러스를 분리해 재생하는 데 성공하였다. 재생 결과 이 바이러스는 2000년대 초부터 아시아를 중심으로 빠르게 번지는 조류 독감(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 H5N1과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즉 스페인독감은 사람의 간에 전이될 수 있는 조류 독감 인플루엔자가 원인이었다는 것을 21세기에 들어와 비로소 밝혀지게 된 것이다. 이는 다시 말해 조류독감이 변종을 일으킬 경우, 스페인독감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간에 전이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바이러스와 세균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을 거의 다 죽게 만드는 것이 과연 그들에게도 유리할까?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는 숙주인 인간이 모두 죽어서 더 이상 기생하여 살 곳이 없어진다면, 그들 또한 공멸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인간이 속수무책 당하는 슈퍼 바이러스는 존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라고 한다. ‘아웃 브레이크’라는 영화의 소재로도 등장했던 에볼라 바이러스는 감염자의 90% 정도가 일주일 이내에 출혈로 사망하는 가공할 전염병을 일으키지만, 도리어 너무 높은 치사율 때문에 오히려 널리 확산되지는 못했고, 발견 초기에만 해도 ‘신의 형벌’이라 불리며 극심한 공포의 대상이었던 에이즈 바이러스는, 이제는 그다지 치명적이지 않은 만성 질환의 하나 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치료 방법 등이 발달한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에이즈 바이러스 역시 자신들의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해 온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래서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들이 인간을 너무 많이 죽게 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에볼라 바이러스처럼 똑똑하지(?) 못하거나, 바이러스와 세균들이 끊임없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돌연변이 등으로 전혀 새로운 무기를 갖춘 신종이 출현했을 때는 문제가 달라질 수 있다. 미처 면역력과 대응력을 갖추지 못한 인류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도 있는데, 페스트나 스페인 독감 등도 그런 경우일 것이다.
최근에는 인수(人獸) 공통 전염병들이 늘면서 인류에게 더 큰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동물로부터 감염되는 전염병은 이미 200가지가 넘는 것으로 분류된다. 몇 년 전부터 빈발하는 조류 인플루엔자는 스페인 독감과의 관련성 때문에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처음에는 돼지 인플루엔자로 불리다 명칭이 바뀌기는 했지만, 신종 플루 역시 사람·조류·돼지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들이 유전자적으로 결합된 것이다. 이들이 다시 변이를 일으켜서, 현재의 신종 플루보다 더욱 독성이 강한 바이러스가 출현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바이러스와 인류의 전쟁은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는 창과 방패의 대결처럼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 지루한 전쟁에서 인류가 바이러스를 박멸할 수도 없을 것이고, 바이러스가 인류를 멸망케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인간과 바이러스는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지 못한 채 상호간의 끊임없는 긴장관계를 유지해 나갈 것이다. 인류로서는 그저 항상 바이러스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신종 플루의 확산이 조만간 멈춰 더 이상의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 간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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