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에 대한 단상

김환규 전북대학교 생물과학부

해마다 10월이면 노벨상 관련 소식으로 뉴스가 장식되곤 한다. 과학 관련 노벨상 수상은 그 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을 나타내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우리나라에서도 과학기술부 주관으로 노벨상 수상에 근접했다고 여겨지는 과학자들을 선발하여 대규모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가동시킨 적도 있다.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은 인간의 유전정보가 들어있는 염색체 말단을 보호하는 말단소립을 발견한 세 명의 미국인 유전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염색체란 우리 몸속에 들어있는 유전정보의 집합체이다. 우리가 부모를 닮는 이유는 부모로부터 이러한 염색체를 물려받기 때문이다. 말단소립이란 이러한 염색체에 붙어있는 조그마한 구조물로 생체 내 시계장치라 할 수 있다. 쉽게 표현하면, 말단소립이란 우리가 신는 운동화 끈의 끝 부위를 단단하게 조여 주는 플라스틱 조각 같은 장치라 할 수 있다. 운동화 끈이 헤어지지 않게 잡아주는 이 부위가 다 닳아 없어진다면 운동화 끈은 풀어 해어져서 나풀거리게 될 것이다. 생물체의 염색체는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그 끝에 존재하는 말단소립이 일정부분씩 소실된다. 궁극적으로 말단소립이 모두 소실되면 세포는 더 이상 분열할 수 없고 결국 그 생물체는 죽게 된다. 이런 이유에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아무리 편안한 조건에서 스트레스 없이 살더라도 생명이 유한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진시황이 찾았다는 불로초가 이 말단소립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몸에서 일생동안 세포분열이 계속 일어나는 부위, 즉 골수나 정자를 생성하는 생식세포에서는 세포가 분열을 계속해도 말단소립이 소실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 몸이 계속해서 혈액을 만들어야 하고 막대한 수의 정자를 계속 생산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조직이나 기관을 구성하는 세포들은 일정 상태까지 자라면 더 이상의 성장이 자동적으로 멈추게 된다. 암이란 이렇게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브레이크가 없는 세포들이 무한 생장하는 것이다. 암세포의 경우 세포분열이 계속돼도 줄어들지 않는 긴 말단소립을 유지한다. 세포분열이 지속돼도 말단 소립이 짧아지지 않으려면 세포분열시마다 짧아지는 말단소립을 계속해서 보충해주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세포분열이 진행됨에 따라 짧아진 말단소립을 계속해서 보충해주는 효소가 있는데 이를 말단소립중합효소라 한다. 세포가 말단소립중합효소를 갖고 있으면 말단소립은 계속해서 일정한 길이를 유지할 수 있다. 사람의 경우, 말단소립중합효소는 정자 생성세포와 혈액세포에 다량 존재하며, 암세포의 경우 질병이 진행될수록 말단소립중합효소의 양이 증가한다. 따라서 암을 치료하는 약물을 개발하는데 이 말단소립중합효소를 불활성화시키는 논리가 적용되고 있다. 초파리 유전자에 이 말단소립중합효소를 유전공학적으로 도입한 결과 다른 야생형 초파리보다 수명이 약 3배 증가되었다는 사실로부터도 말단소립중합효소가 세포의 수명에 중요한 작용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식물은 왜 그렇게 오래 사는가? 당연히 식물은 이 말단소립중합효소를 다량 가지고 있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사람들은 위와 같은 사실들을 발견하여 암의 치료 가능성을 열었고, 나아가 사람이 어떻게 늙어 가는지를 밝힐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 공로로 수상하였다. 이들은 미국 UCSF의 생물학과 교수인 앨리자배스 블랙번, 존 홉킨스 의과대학의 유전학과 교수인 캐롤 그라이더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유전학과 교수인 잭 소스택 등이다. 이들은 우리 몸에 존재하는 염색체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또 어떻게 복제되는지에 대한 아주 단순한 주제를 가지고 일생을 바쳐온 사람들이다. 지금 당장 돈이 되는 주제가 아닌 단순히 흥미로운 주제였을 뿐이지만 30년 가까운 연구 결과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엄청난 경제적, 사회적 파급효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사실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신성장 동력을 찾는 작업이 지금 당장 상품이 나오는 것에만 고정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부와 기업, 유관기관이 기초과학에 꾸준히 투자하고 과학자들이 한 우물만 판다면 그 결과는 머지않아 엄청난 부가가치로 우리에게 되돌아 올 것이다. 이러한 예는 이웃 일본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원천기술이란 기초과학의 발달에서 나오는 것이다. 원천기술 없는 개발이란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요즘 같은 경제 침체기에 교육관련 예산과 기초과학 지원 예산이 대폭 삭감되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다. 교육에 대한 투자는 지금 당장의 결실도 있지만 길게 보면 한세대 후의 우리 후손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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