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조심하세요.” 하는 말에(원한식)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직업이 세 가지 있다고 합니다. 바로 목사, 의사, 점쟁이입니다. 목사는 신앙의 입장에서, 의사는 의료인의 입장에서, 그리고 점쟁이는 미래(?)를 쥐고 있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건강한 할머니에게 의사가 “죄송한 말씀이지만 할머니는 이 달을 넘기기가 힘들겠는데요.”라고 하면, 정말 할머니는 한 달 내에 돌아가실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목사가 “……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하면 정말 조심하게 됩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점쟁이가 “당신 남편 북서쪽에 여자 있어.” 하면서 20만 원짜리 부적을 쓰라고 하면, 부적을 안 쓸 여자가 몇 명이나 있을까?
부적을 사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에서 남편이 “나 오늘 어디 갔다 왔어.” 하면 부인은 “으응, 거기 북서쪽 아냐?” 하면서 속으로 가슴이 무너져 내립니다. 결국 “아! 점쟁이 말이 맞구나!” 하며, 다음 날 거금 20만 원을 갖다 주고 부적을 가져와 남편 베개 속에 집어넣어야 속이 편합니다.
이것이 바로 노시보(nocebo) 효과입니다. 노시보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플리시보(placebo)의 반대 개념입니다. 플라시보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긍정적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라면, 노시보는 나빠질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몸이 나빠지는 것을 말합니다.
미국의 한 의사가 노시보 효과를 실험하기 위해, 천식 환자들에게 어떤 증기를 들어 마시게 한 다음에 그것이 화학물질로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환자들 가운데 거의 절반 정도가 호흡에 문제가 생겼고, 12명은 발작을 일으켰는데, 그들에게 기관지에 작용하는 약이라며 치료제를 주자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이 치료제나 처음에 마신 증기는 모두 같은 식염수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기관지 수축은 순전히 환자들의 생각만으로 발생하고 치료된 겁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우리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들입니다. 마치 실제로는 임신하지 않았는데도 임신증세가 똑같이 나타나는 상상임신(想像姙娠)처럼, 우리 몸은 마음이 생각하는 데로 움직인다는 것인데, 요즘 난리를 치고 있는 ‘상상플루’가 바로 그런 경우라 하겠습니다.
상상플루는 신종플루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조금만 아파도 스스로 신종플루에 감염됐다고 착각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걱정하는 마음 때문에 병이 생기는 겁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독감은 우리에게 드물거나 새로운 병도 아니지요. 그런데 이번 신종플루가 엄청난 인명피해를 가져오다 보니, 단순히 신종플루에 감염됐다는 상상만으로 실제로 열이 나는 상상플루 환자까지 등장했다는 겁니다.
물론 조심하고 주의해서 나쁠 건 없습니다. 1918년 대유행했던 스페인 독감으로 전 세계에서 2천만 명이 넘게 죽었고, 1957년 유행했던 아시아 독감은 100만 명, 1968년 유행했던 홍콩 독감은 70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냈던 일들을 생각하면, 아무리 사소한 감기라도 조심할수록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요즘 분위기가 신종플루에 대한 공포감을 지나치게 조장하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신종플루의 사망률은 1.2%라고 밝혔고, 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치사율이 0.03%보다 훨씬 더 낮을 공산이 크다고 합니다. 관련 학계에서는 신종플루라는 단어를 쓰지도 않는 답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이름은 ‘인플루엔자A(H1N1)’이며, 세계보건기구(WHO)는 팬데믹 인플루엔자(H1N1) 2009‘라는 이름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심하게 말하면, 신종플루도 매년 겨울철이면 유행하는 독감 정도라는 겁니다. 그런데 공포감을 지나치게 조장하다 보니, 상상플루 환자까지 생겨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까짓 “감기 조심하세요.” 하는 말에 너무 떨지 마시고, 의연하게 대처하시기 바랍니다. 너무 걱정하다 보면, 공포심 때문에 오히려 우리 몸의 면역력이 더 떨어진다고 하니, “너 올 테면 와봐라.” 하는 자세를 갖자는 것입니다.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렸다.(一切唯心造)”는 원효 대사의 말씀처럼, 우리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노시보가 언제든지 플라시보로 바뀔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누가 그러는데, 바이러스라는 놈도 꾀는 있어서, 자기를 무서워하는 사람한테만 가지, 자기를 싫어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분 나빠 찾아가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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