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와 대나무 효과

박영학(원광대 신문방송학 교수)

2001년 9월11일, 전 세계인들은 미국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는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보았다. 대부분은 놀랐고 아랍계 극단주의자들은 크게 환호했다. 제3지대 입장에서는 즐거운 화상게임이었다. 그 후 미쳐 한 달이 되기 전에 미국의 B-52 폭격기가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하였다. 탈레반 정권이 폭격의 화염 속에 무너졌다. 미국여론은 9·11 공격에 따른 미국의 대 테러 보복 전쟁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테헤란 학생들은 9·11 테러 직후 희생자를 기리는 촛불집회를 개최하였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권위지『르몽』(Le Monde)은 이렇게 썼다. “우리는 모두 미국인이다.” 날카롭기로 유명한『르몽』의 공식 입장이다. 세계가 미국의 상처에 공감을 표시하였다.
그런 세계 여론을 업고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감행하였다. 날마다 이어지는 전쟁의 참화와 학살, 고문이 알려지고 공감은 일시에 반감으로 바뀌었다. 미국에서 반전 기류가 감지되었다.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은 경제 통합의 실상이 얼마나 대량 파괴 기술과 깊이 연계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이다. 또한 전쟁기술이 어떻게 대중화되어 무기 수출의 홍보장이 되는지를 보여준 실증이다. 미국은 쌍둥이빌딩을 잃고 단번에 침체된 군수산업의 활로를 찾았다. 미국의 대 테러 전쟁은 테러라는 가면을 쓴 전체 이슬람에 대한 전쟁이다. 국경 없는 미군수산업의 이익을 위한 전쟁이다. 무기의 세계화이다.
세계화의 어두운 면은 2000년에 들어난다. 경제대국 일본이 1985년 9월 22일 플라자 합의(Plaza Accord)에서 엔화 가치를 높였다. 일본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평가 절상을 골자로 한 합의이다. 일본의 주요 수출업체들은 생산기지를 값싼 해외로 옮겼다. 외환 차익 보전을 위한 조처이다.
저임금 국가로의 기업 이전이 일본의 일자리를 몽땅 줄였다. 기업은 국가보다 이윤에 충성한다. 일본은 대나무처럼 속(일 자리)이 텅 빈, 이른바 ‘대나무 효과’(bamboo effect)를 겪는 중이다. 실직자와 떠돌이(homeless)가 넘쳐 나는 일본이다. 세계화는 곧 실업의 대명사이다.
21세기가 시작되기 직전, 중국의 임금수준은 미국노동자 임금의 1/30 수준이라는 통계를 접한 적이 있다. 미국 기업의 생산라인이 중국으로 이전한 대신 미국 노동자들은 임금 폭락과 일자리를 잃었다. 미국이나 일본이 고용 없는 성장(jobless recovery), 또는 임금상승 없는 성장(wageless recovery)에 골머리를 앓는 중이다.
특히 미국의 엔지니어와 컴퓨터 전문 영역은 더욱 심각하다. 인도의 넘쳐나는 IT 분야 인력이 인도 현지에서 미국 내의 가정 컴퓨터를 값싸게 수리하는 지금이다. 이게 세계화의 현장이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을 포함한 세계화 국가들의 심각한 소득불균형이다. 2004년 미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상위 가정 1%가 전체 인구의 90%인 하위 가정 전체의 부보다 더 많은 부를 누린다고 한다.
세계화의 열매는 노동자들의 임금 동결이라는 모순된 결과를 빚은 반면 오직 경영진만 배 불리는 중이다. 2004년 미연방준비제도는, 미국 최고경영자들이 미국평균 근로자들의 170배에 이르는 포괄적 보상(compensation package)에 주목하였다. CEO 한명이 170명분을 누린다는 뜻이다. 영국은 22배, 일본은 11배였다.
불평들이 심화되면 사회의 결속력은 급격히 떨어진다. 민주주의가 급격히 훼손 되고 있다는 우려스런 목소리가 비등하는 지금이다. 그 해소를 위해 맞서 저항할 수밖에 없다. 소득 불균형은, 우리 같은 분단국가에게는 더욱 위험스런 징후이다. 사회 결속력의 이완은 과거처럼 애국심이나 반공논리로 추슬러 잡을 수 없는 오늘이기 때문이다. 상대적 박탈감을 극복하는 일이 4대강보다 큰 문제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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