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광대 누구인가, 사람마음 맑히는 존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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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 국악평론가, 목원대학교 겸임교수


<송년 소리나눔 광대의 노래>. 성대한 공연이 있었던 날, 조선의 내로라하는 광대들이 모두 모였다. 그들은 공연에 앞서 모악당 무대에서 사진을 찍었다. ‘역사에 남을’ 사진이다!

전통문화를 애호하는 사람이라면, 조선성악연구회 사진(1937년)을 기억한다. 당시 최고의 광대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 이동백명창의 은퇴공연 사진(1939년)도 남아있다. 실로 70년 만에 이 땅의 광대들은 사진 속에서 모두 하나가 됐다.

모악당 무대 위에 오른 우리 시대 최고의 광대를 보니,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유행가 가사에 세상의 진리가 있다고 했던가. 그들의 삶과 예술이 어떠했을까 생각하니, 당연 그래진다. 무대 위에 오른 명인명창들 또한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입은 웃고 있어도, 눈은 울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한평생 전통예술에 몸 바치며 광대로 살아온 그들에게 고개 숙인다.

조선의 상여소리엔 이런 구절이 있다. “저승길이 멀다더니, 대문 밖이 저승일세.” 살아있는 명인명창들의 모습을 뵈니, 정말 삶과 죽음이 동전의 앞뒤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20세기에 맹활약 했으나, 21세기에 이미 고인이 된 많은 분들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지금 저 자리에 김소희, 박귀희 명창이 계셨더라면.”, “박동진명창과 오정숙명창이 이번 무대에 출연하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국땅 하와이에서 생을 마친 지영희, 성금연 부부가 떠오르네.” 거기에 모인 많은 명인명창과 그들의 제자들이 객석에 함께 한 자리에서, 어디선가 그런 얘기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카메라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터졌다. 우리 시대 최고의 명무 이매방 선생이 불편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사진속의 중앙에 앉아서 무게 중심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런 뜻 깊은 자리를 마련해준 소리축제 측에 감사하며 김명곤 조직위원장과 함께 사진을 찍기를 권했다. 여기저기서 셔터가 요란하며 촬영이 길어지자, 대한민국의 최고의 국창(國唱)이라 할 조상현 명창의 재담이 좌중을 미소케 했다. “아따 이제 그만 박으시오.”

2009년 12월, ‘광대’는 내 마음에서 다시금 화두가 된다.

광대! 찬란한 단어다. 그들은 이 땅의 기예를 통해서 세상과 우주의 이치를 깨닫고, 세상의 많은 사람들과 아름답게 소통하려 했던 존재다. 조선(朝鮮)의 광대들은 누구보다 먼저[朝] 깨달은 존재요, 늘 깨어있는[鮮] 존재다. 이 땅의 새아침[朝]을 꿈꿨고, 세상을 맑게 [鮮] 정화하려 했다.

광대? 서글픈 단어다. 이 땅의 광대들은 민중들의 삶 속에서 기쁨과 슬픔을 같이 했다. 그럼에도 세상은 때론 그들을 외면했다. 신명(神明)을 세상에 알리려했으되, 신산(辛酸)한 삶을 살았던 조선의 광대여! 당신은 때때로 역사의 희생양이었다.

광대에 대한 어설픈 연민에 휩싸여 있는 내게 경종을 울리듯, 남녘에서 젊은 광대들이 판을 벌린다는 소식이 들린다. 판소리 퍼포먼스 그룹 ‘미친 광대’의 창단공연(12. 26~27. 전주소리문화의 전당 명인홀). 판소리 ‘심청가’를 새롭게 각색해서 선보인다고 들었다.

‘미친 광대’의 대표는 지기학.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남원에 있는 국립민속국악원에서 새로운 창극 만들기에 앞장서 왔다. 그가 그렇게 공 드린 창극은 분명 변별성이 있는 창극이었다. 서울에 있는 국립창극단의 그것과 달랐다. 이런 창극을 가리켜서 어떤 사람은 ‘남원표 창극’이라고 했다. 그런데 어디 남원뿐이겠는가! 전라도 곳곳에는 광대의 뿌리가 있고, 소리의 줄기가 있다. 전라도 곳곳이 ‘광대의 도시’가 됐으면 좋겠다. 그 곳에서 활동이 두드러지면서, 외지로 나간 광대들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서 터전을 잡길 희망한다.

고향땅을 지키면서 이번에 판을 만드는 주인공은 정민영, 김대일, 박추우, 정승희. 젊은 나이에 나름대로 여러 활동을 했으되, 아직은 대외적으로 좀 생소한 이름이다. 하지만 미친광대의 활동이 계속 되면서, 그들도 언젠가는 앞서 모악당에서 모여 사진을 찍은 광대들처럼, 21세기의 새로운 광대의 흐름을 만들어낼 것이다.

판소리 <심청가>에는 ‘수궁풍류’가 있다. 거기에는 ‘장양의 옥퉁소, 석연자 거문고, 곽처사 죽장고’처럼 한 시대를 풍미한 광대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런 표현들은 일종의 상투어(formula)가 되어 지금까지 전해진다. 판소리엔 이런 구전(口傳) 공식구(公式句)가 많다. 구비문학이나 민족음악학에선 이를 ‘구전 공식구 이론(oral-fomulaic theory)’이라고 한다. 판소리는 이런 구전공식구를 바탕으로 해서 점차 ‘더늠’이 만들어지면서, 오늘날과 같은 장형의 예술로 성장했다.

새롭게 출발하는 ‘미친광대’에게 이런 구전 공식구를 빌려와, 어설프나마 ‘더늠’이라 보태면서 덕담을 해주고 싶다.

정승희 소리난 흥(興)철철 한(恨)절절, 박추우 장단은 평(平)쿠쿵 화(和)구궁,
김대일 너름새 천(天)고고 지(地)저저, 정민영 아니리 심(心)청청 신(身)탄탄.

‘미친 광대’가 흥과 한을 넘나들면서, 천지의 조화를 알려주길 바란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세상의 평화에 기여하도록, 사람들의 마음[心]을 맑게[淸] 해주는 존재가 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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