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문화, 현대사 연구가 필요하다(이철량)
지난달 연말 모임자리에서 있었던 선배의 이야기다. 광주에 갔더니 “전라문화축제”라는 플랑이 보이더라는 것이다. 너무나 깜짝 놀랐고,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더란다. 이야기인즉슨 전라도하면 전주가 중심이고, 전북을 먼저 생각해왔는데, 광주가 마치 전라도 중심인양 행세하더라는 예기다. 이야기 끝에 “그러고 보면 사실 한정식도 광주가 나았다”는 예기도 있었다.
나도 선배의 말에 동감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선 이미 전라도 문화중심이 광주로 옮겨갔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었다. 이 자리에서는 전북의 발전과 미래에 대한 간단한 토론이 있었는데, 미래문화 중심엔 자연이고 그래서 오히려 전북은 “희망이 있다”라는 결론으로 끝이 났다. 그렇더라도 젊은이들이 머물고 싶지 않은 전북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어떻든 앞으로는 문화, 특히 전통문화에서 먹거리를 찾아야한다 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앞서나가는 곳이 광주라는 것이다. 그날 선배의 푸념처럼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걱정만 하고 있을 순 없다. 적어도 50년대 이후 우리는 어떻게 지내왔는지 다시 되돌아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지만 사실 우리처럼 다양한 문화의 뿌리를 가지고 있는 곳이 어디 있는가. 그런데 지금 이 전통문화의 뿌리들이 송두리째 뽑혀나가고 있는 모양이 아닌가. 광주와 비교해 예를 들어보면 하나 둘이 아니다.
우리 못지않게 전남, 광주에도 여러 축제행사들이 있다. 이들 중에는 특히 전통문화 중심의 축제들이 돋보인다. 예컨대 강진청자축제, 광주김치대축제, 낙안 남도음식문화큰잔치, 보성소리축제를 비롯하여 다산 정약용을 기리는 다산제, 장보고축제 등 곳곳에서 역사를 앞세운 축제들이 많다. 이뿐만 아니라 축제의 주제가 선명하고 분명하여 의미를 바로 이해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최근에 성공한 함평 세계나비.곤충축제를 비롯하여 연산업축제(무안백련축제), 보성다향제 그리고 최근에 열린 작곡가 정율성국제음악제 등이 그렇다.
예로든 축제 등은 사실 작은 부분에 속하는 문제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들 행사들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 가는지가 엿보인다. 광주 전남은 이미 십 수 년 전부터 집중적으로 문화 특히 전통문화에 공을 들여왔음을 읽을 수 있다. 그만큼 그들은 앞서 나갔다는 뜻이다. 간단하게 비교해 봐도 그렇다.
청자 도요지는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에 있었다. 그런데 지난 1996년에 강진에서 청자축제를 하고 박물관을 세울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1994년에 전남 승주에 고인돌공원이 세워질 때 고창에 그 많은 고인들이 왜 보이지 않았을까. 지난 1994년에 광주 사람들이 김치축제를 시작하고 있을 때 우리는 왜 김치를 왜면 했을까. 지난 16년 동안이나 남도음식문화축제를 열고 있을 때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음식은 “전주가 제일이여”하고 바라만 보고 있었지 않았을까?
문화는 사람이다. 우리 지역이 전통문화가 풍부한 곳이라는 말은 그만큼 훌륭한 인물들이 많았다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예컨대 이삼만, 황욱, 송성룡 같은 서예가를 앞세워야 한다. 소리에서 불멸의 명창들 즉 권삼득, 송흥록, 박만순, 정정렬, 진채선, 김소희, 강도근 등을 비롯한 많은 명창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현대문학사의 큰 별들이었던 채만식, 이병기, 신석정, 서정주 등 많은 문인들을 왜 묻어두어야만 하는가. 근대 대학자였으며 전북서화의 거두였던 이정직을 비롯한 많은 서화가에 대해서도 말하는 사람이 드물다. 그리고 아직 이름은 없지만 수많은 음식 장인들이 소개되어야 한다. 전북은 산천이 아름다운만큼 훌륭한 문화, 예술인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그리고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겨주었다. 이들이 어떻게 자랐으며, 어떻게 예술의 길을 걸었는지, 그리고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연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지난 50년 동안 선배들이 남긴 찬란한 유산을 우리는 어떻게 공부했고, 무엇을 위해 노력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웃 전남이 산업화를 넘어 문화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었던 시간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록해야 한다.

2010년 새해에는 우리를 되돌아보는 시간으로 삼아야겠다. 지난 50여년을 되돌아보면서 새로운 문화의 시대를 준비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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