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미래와 과학기술

김환규 전북대학교 교수

2010년에 접어든지 벌써 2주가 지나고 있다. 우리는 짧게는 몇일, 한 달, 또는 일년 뒤를, 길게는 몇 년 또는 몇 십 년 뒤까지를 계획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면 국가적 차원에서 미래를 설계하는데 있어 과학기술의 역할은 무엇인가? 많은 과학자들이 호기심에 의해 시작한 연구가 우리 사회에 큰 기여를 해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리학에 대한 기초연구 결과가 현대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많은 기술의 씨앗이 된 예는 흔하게 들 수 있다. 1960년에 레이저 조절 현상을 최초로 구명한 과학자의 논문이 물리학 관련 저널에 제출되었으나 게재가 거부되었다. 이제 레이저는 매우 큰 산업이고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이나, 이 분야 선구자의 주된 관심은 물리학이었다. 섬유 광학 분야에서는 유리과학에서의 기초연구와 광학, 그리고 양자역학이 하나의 기술로 성숙되어 지금의 통신혁명을 주도하고 있다. 핵자기공명, 반도체와 의학용 사이클로트론도 물리학에 대한 연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에디슨의 생애를 알고 있을 것이다. 에디슨은 목표 지향적 연구에 의해 유용한 물건들을 발명해냈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이러한 방법이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가끔 전혀 다른 것을 발견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결과는 원래 그들이 찾고자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유용성이 크기도 하다. 예를 들어, 테프론을 만드는데 쓰이는 테트라플루오르에틸렌 실린더는 새로운 냉각제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항-에이즈 치료제인 AZT는 원래 항암제로 만들어졌다. 과학자들은 명백하거나 또는 어렴풋하거나 또는 이론에 의해 예상할 수 있는 어떤 자연현상에 대해서 흥미를 갖고 연구한다. 세포분열에 미치는 전기장의 효과를 연구한 결과 암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었으며, 거대분자에 대한 연구 결과 나일론의 발명이 가능했다. 액정의 발견은 컴퓨터와 평판 텔레비전 스크린 같은 혁명적인 결과를 이끌었다. 이러한 모든 일들이 실험실 차원의 흥미에 이끌린 연구에 의해 시작된 것들이다.
기초연구로부터 실제 응용에 이르기까지의 길은 상당히 멀다. 나일론 같은 경우는 약 10년 정도 걸렸고, 액정의 경우에는 약 80년이 걸렸다. 따라서 지금 기초연구에 투자를 하지 않는다면 응용에 공급되는 원천기술이라는 샘물은 말라버릴 것이다. 기초연구를 지속하지 않으면 새로운 기술은 결국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학의 발전은 재정적 지원에 크게 좌우된다. 과학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관료들은 연구와 개발의 지원에 필요한 논리를 늘 바꾸려고 한다. 그들은 과학의 역할에 대해 새로운 시각에 근거해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한다. 패러다임이란 단어는 많은 뜻을 갖고 있으나 여기서는 패턴 또는 모델의 대체어라 생각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관료들은 과학계에 주는 연구비의 패턴을 바꾸고자 한다. 그들의 의도는 좀더 강한 경제, 그리고 눈에 띠는 성과를 낼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연구방향이 모아지길 원한다. 즉, 국가적 필요와 별 관련이 없다고 생각되는 연구 프로그램에는 연구비를 지원하지 않는다. 몇 년 전에는 연구비를 신청할 때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웰빙’을 들먹였고, 지금은 ‘녹색성장’을 앞세우고 있다. 이것이 패러다임 전환인가?
과학계에서는 새로운 패러다임, 우선순위와 국가경쟁력 같이 연구비와 관련된 용어에 대해 많은 의문점을 갖고 있다. 패러다임은 과연 새로운 것인가? 어느 분야가 전략적이라 결정한 근거는 무엇인가?, 누가 우선순위를 정하는가? 이로 인해 호기심에 사로잡힌 기초과학의 중요성은 희생되어도 좋은가? 국가의 필요에 의해 진행하는 연구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도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의 주된 발전은 일반적으로 호기심에 의해 유도된 연구에서 비롯되었다. 호기심에 이끌린 연구를 차단하는 것이 국가적 이익인가? 미국이 이끌고 있는 제약 산업의 경우 산업체와 기초연구가 잘 연결된 분야이다. 생물의학에 기반한 산업이 경쟁력 있는 위치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기초연구라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고 있다.
성공에 이르는 길은 예측불가능하며 변화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폭 넓은 기초연구를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적절한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목적 지향적 연구는 기업체나 관련 연구기관에서 행하면 될 것이다. 어떤 연구를 지원해야 되는가 하는 문제는 어느 프로젝트가 가장 가치 있는 아이디어인가에 대한 정보를 기반으로 선정하면 될 것이다. 연구에서 새로운 발견이 기술적 중요성을 지녔다하더라도 그 기술의 경제적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길게 봐서는 국가의 경제적 이익에 부합된다 하더라도 이러한 부분은 기업의 투자 대상이 되지 않는다. 과학과 사회는 공동 진화해간다. 이 진화의 본질은 중앙정부가 어디에 연구비의 우선순위를 두느냐에 영향을 받는다. 성공적인 새로운 기술의 개발은 기초과학에 의해 폭넓게 제공되며 이것은 미래의 경제적 번영을 약속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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