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유럽연합

사회적 책임이란 주로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피고용인의 삶을 고려하는 것이다. 즉, 기업들이 경제적, 환경적, 사회적 책임을 다함으로써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유도하는 것이다. 기업의 관점에서 볼 때 미래의 새로운 기회창출이 사회적 책임에 의존할 수 있다는 사실에 상당한 기대와 불안감을 동시에 느낀다. 따라서 기업들은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투자로 인식하고, 이는 기업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배경에는 이해관계자들과 단기적 거래관계가 아닌 장기적인 가치 중심의 관계를 추구하는 기업의 전략이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책임은 하청업체를 압박하고 해외제품의 국내시장 진입을 막는 장벽으로 변환될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UN과 OECD는 초국적기업들의 기업활동 책임에 대한 국제적 규범을 만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미 양적으로 세계경제의 상당 수준에 도달한 우리가 노동권이나 인권과 관련된 고용의 질에 대해서 더 이상 소극적일 수만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자율적 규제이든 강제적 규제이든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데 있다. 글로벌 기준에 대해 우리나라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특성을 고려한다고 하더라고 글로벌 기준에 준하는 구체적인 지표를 개발하여 활용하고 그에 따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아직도 기업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사회공헌이나 투명경영과 같은 협의적인 개념에서 접근하고 있다. 특히 사회적 성과의 중요한 구성요소인 고용의 질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시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간단한 과제는 아닐 것이다.
유럽연합은 대내적으로 도시들의 소비관행을 변화시키기 위해 역내 지역도시들 간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도시간 협력 사례 중 하나가 역내 도시들이 협력하여 책임 있는 환경적, 윤리적, 사회적 구매를 통한 혜택을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누리자는 취지의 유럽도시간 공동조달정책인 CARPE 프로젝트이다. CARPE 프로젝트는 국가-지역간 협력모델 구축의 시간적 제약과 하향적(top-down) 접근방식에서 벗어나 지역-지역간 경쟁력 강화 또는 지역발전과 혁신을 위한 제도적 장치라 할 수 있다.
CARPE 프로젝트가 사회적 책임을 확대시킴으로서 책임 있는 구매를 유도하기 위한 도시간 협력모델의 구축이라면 산업별 협력모델인 RESPIRO 프로젝트는 유럽연합 GDP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건설과 섬유분야의 새로운 사회적 책임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협력모델이다. RESPIRO 프로젝트는 공·사조직의 구매력을 이용하여 소비자로 하여금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제품, 노동, 그리고 서비스를 구매하도록 하는 지침을 제공한다. 특히 2009년부터 RESPIRO 프로젝트의 지침을 적용하고 있는 건설분야와 섬유분야는 유럽연합의 GDP의 상당부문을 차지한다. 이들 분야는 유럽의 가장 큰 고용산업 분야이고 광범위한 사회적 책임을 갖고 있다. 투명성, 비차별성, 최적의 소비는 유럽연합의 조달지침의 세 가지 중요원칙으로 유럽연합의 27개 회원국들에 대해 구속력을 갖는다. 따라서 한·EU FTA를 계기로 우리 기업들이 유럽 시장을 적극 개척하려면, 지속가능하고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는 제품소비로 인해 파생될 광범위한 영향력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겠다.

이종서 (한국외국어대학교 EU연구소 초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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