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주는 교훈(유태호)

지금 우리 사회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몸 담론에 포섭되어 있습니다. 몸짱과 얼짱을 우상으로 여기고, 몸을 잘 모시기 위한 의식주 관련 웰빙 산업은 호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한번만 마음 주면 변치 않는 여자가 정말 여자지”와 같은 노래가사는,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이 된 LP판처럼 사라졌습니다. 이를 대신해서 “예쁘기만 하면 모든 게 용서되지”라는 이데올로기적이고 소비적인 ‘몸관’으로 대치되었습니다.
왜 몸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것일까요. 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려졌기 때문입니다. 금욕과 절제를 미덕으로 삼았던 사회에서 쾌락과 소비의 시대로 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한편 과거의 몸이 영혼보다 열등한 것이기에 거세의 대상이었다면, 현재의 몸은 뼈와 살로 이루어진 살덩어리가 아니라 내면의 정신을 드러내는 주체적인 몸의 탄생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영상매체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의 얼굴과 몸매가 되기 위해 성형수술을 하고 신체관리 프로젝트에 참여합니다. 죄 없는 몸을 찢고, 잘라내고, 꿰매고 있습니다. 물론 원시시대부터 성형과 화장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아름다움을 획일화하여 자신의 상품성을 높이려는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비슷한 몸매와 얼굴로 변해가는 끔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내 아내가 갑자기 아이리스의 김태희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행복할까요. 20년을 자신만의 개성을 가지고 나와 만났던 아내가 자신을 위해, 나를 위해 김태희로 변신한 것일까요. 나는 이병헌이 아닌데 말입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놀 때가 있습니다. “마음은 박남정인데 몸은 김정구”라는 한 때 유행어가 생각납니다. 마음은 청춘인데 몸이 따라 주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 경우가 많아집니다. 마음만 먹으면 몸이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천만에 말씀이지요. 마음이 우선일 것 같지만 몸이 우선할 때가 더 많습니다. 몸은 우직하기 때문입니다. 5분만 일찍 일어나면 여유있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마음은 알고 있지만 이불을 박차고 나오는 몸은 여전히 이전의 시간표에 맞추어 작동합니다.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인 우리 아들은 집에만 오면 밤낮 가리지 않고 상습적으로 잠을 잡니다. 공부중심으로 생활습관을 바꾸라는 아내의 잔소리도 무감각하게 받아들입니다. 학교수업이 어려워지고, 성적이 안 좋아지면서 몸과 마음이 무력해진 것입니다. 학교수업과 학원이외의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없습니다. 결국 그가 선택한 것은 잠을 자는 것입니다.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는 기숙학원 간판에 새겨진 문구를 들려주어도 변화가 없습니다. 잠을 자는 것은 일상에서 몸이 기억하는 자연스러운 습관이 된 것입니다.

새해가 되면 다짐 합니다. 금연과 절주를 하겠다고 자신과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립니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겠다고 헬스클럽 년 회원에 가입합니다. 학생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일일 계획표도 세우고 학교와 학원을 번갈아가면서 공부합니다. 대부분 작심삼일로 끝납니다. 왜 그런가. 몸이 기억하고 있는 습관을 깨는 작업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습관은 관성을 가집니다. 몸의 습관이 갖는 특성을 우리는 항상성이라고 부릅니다. 늘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마음먹고 행동하는 것이지요.

몸의 외관을 다지는 하드웨어를 강하게 하기 보다는 몸의 내부에 관성으로 작용하는 소프트웨어를 강하게 하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올해는 “하드웨어는 부드럽게 소프트웨어는 강하게” 하기 위해서 몸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일에 관심과 노력을 경주하는 새해가 되길 바랍니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