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전주의 전일상호저축은행에는 예금을 찾으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예금보험공사가 지난해 말 영업정지 결정을 내린 이 저축은행 예금자에 대해 가지급금 형태로 일부 돈을 지급키로 했기 때문이다. 창구 앞에 줄을 선 이들 예금자들은 마른하늘의 날벼락에 그저 울거나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전일상호저축은행은 자산이 1조3천억 원에 고객만도 6만 명을 훌쩍 넘기는 중견 금융회사다. 전북에 근거를 둔 이 저축은행은 한 때 전북은행을 위협할 정도의 튼실한 회사였다. 하지만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중소기업과 가계를 대상으로 한 대출의 상당 부분이 부실화하면서 힘없이 쓰러지는 비운을 맞이한 것이다 .
이는 어딘지 낯익은 풍경이다. 전북 향토자본의 몰락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멀리 외환위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쌍방울과 태창, 보배, 서호, 세풍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 내지 중견기업들이 줄을 이어 파산했다. 이유야 여러 가지지만 도민들에겐 하나 같이 충격적인 사태였다. 그렇지 않아도 척박한 전북의 기업 풍토로 비춰보면 비극에 가까운 일이었다. 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렸고 그 여파로 지역경제도 휘청거렸다.
왜 이렇게 전북의 향토자본들이 줄이어 몰락한 것일까.
우선은 경영자들을 탓해야 한다. 그들은 급변하는 경제 환경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일단 경쟁력 확보에 실패했다. 품질, 가격, 브랜드 가치 등 모든 면에서 문 내린 전북 기업들은 정글에서 생존할 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또 지역사회와의 소통에서도 실패했다. 그들의 몰락은 예견된 것이었다.
하지만 경영자들에게만 책임을 돌리기에는 문제가 너무 크고 복잡하다. 지금 시장은 소비자 주권시대다. 소비자가 기업을 죽이고 살리는 생사여탈권을 쥔 상황이다. 그래서 지금 경제를 판매자 시장이 아닌 구매자 시장이라고 부른다. 주도권이 소비자 손에 있는 것이다. 당연히 어느 기업의 몰락은 소비자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전북 도민들이 이렇게 향토자본을 키우지 못하는 것은 왜 일까.
소비자 즉 도민들이 일단 지역브랜드를 외면한 때문이다. 소주는 그 상징이다. 익산에서 나는 보배 소주는 한 때 전국적 브랜드였다. 꽤 돈도 벌었다. 그런데 도민들이 이를 더 이상 사주지 않았다. 도내 시장 점유율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타지 연고 소주 브랜드가 90%를 넘나든데 비하면 기가 막히는 수준이었다. 결국 회사는 국내 대기업에 넘어가고 보배라는 브랜드도 시장에서 사라졌다.
이 대목서 애향심 부족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도민들이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지금도 전북을 연고로 한 지역 브랜드는 똑 같은 경로를 밟고 있다. 지자체나 경제계 등의 온갖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전북 브랜드는 전북에서 홀대를 받고 있다.
이대로 갈 것인가. 만약 지금처럼 간다면 전북 향토기업은 씨가 마를 것이다. 뭔가 달라져야 한다. 그 실마리는 지극히 기본적인 경제원리를 다시 확인하는 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는? 경제학자들은 주저하지 않고 인센티브라고 답한다. 사람들은 인센티브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인센티브는 유인, 동기, 장려금 등으로 번역된다. 한 마디로 이익이다.
그러면 지역연고 기업을 키워야 하는 이유를 인센티브에서 찾아보자. 이른바 경제기반이론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도시에서 생산되는 재화와 서비스가 지역 내에서 소비되고 남으면 밖으로 수출된다. 이는 곧 소득증대로 이어지고 다시 이 소득이 도시에 재투자 되며 연관효과 등을 통해 다시 생산이 는다. 이것이 누적되면 집적효과로서 그 지역경제는 성장을 거듭한다. 요컨대 지역기업이 잘 되면 지역주민들도 잘 된다. 이것이 지역산품 구매의 인센티브다. 지역주민들이 지역 브랜드에 충성하는 것은 매우 합리적 선택인 것이다.
단순한 애향심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다. 지역 브랜드에 충성하는 것은 곧 나와 가족 그리고 이웃에게 충성하는 일이다. 딴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단순한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지역경제를 살리는 첫걸음이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