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직책을 벗어버린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모습은 예전에 비해 한층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지난 15일 서울 양재동 농수산물유통센터에 위치한 정 전 장관 사무실에서 그를 만난 모습은 적어도 그랬다.
하지만 본지 기자와 인터뷰가 시작되면서 도내 현안과 관련된 얘기가 나오자 ‘낙후 전북’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전북의 미래’에 대해 여러 의견을 내놓으며 강한 애향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전북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여러 국책사업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힘차게 추진해나가지 못하고 있는 점을 크게 아쉬워하며, 탄력을 얻을 수 있는 중앙정부와의 지속적인 소통을 주문하기도 했다.
도내에 산적해 있는 국책사업이 원활한 해결과 단절되다시피 한 중앙정부와의 소통 창구 마련을 위해서는 어떤 대책이 마련돼야 하는지 정 전 장관과의 일문일답을 통해 살펴봤다./편집자주

-한나라당 전당대회 이후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 지난 7월 4일 한나라당 전당대회 이후 한나라당 최고위원 자리에서 물러난 후 한식세계화재단 위원장직도 사임했다.
그 이유는 LH공사의 전북 이전 실패로 지난 19일부터 일주일가량 함거를 타고 석고대죄까지 한 입장에서 공직이라면 공직인 한식재단 이사장직을 하고 있다는 것은 진정성 면에서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은 모든 직책을 버리고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재충전하고 있는 중이다.

-최근 한식 세계화 사업의 추진 동력이 많이 상실한 것 같다. 이 같은 상황도 이사장직 사임과 관련이 있나.
▲ 물론 연관성이 아예 없지 않다. 현재 한식재단은 너무 정치화가 된 것 같다.
한식 세계화를 추진할 당시 순수하게 우리 식품의 맛과 멋을 세계에 알리고 대한민국의 품격을 높이고자 했던 일이며, 당시에는 국민들의 92%가량이 지지했던 사업이다.
하지만 지금은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이 사업을 정치적으로만 보고 해석하면서 많이 퇴색되고 있다. 한식세계화는 정치적으로 가면 안된다.
그런 맥락에서 이 사업이 정칙적인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 정치에 몸담고 있는 내가 이사장직을 내려놓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최근 도내 여러 현안들이 안갯 속 행보를 하고 있다. 문제점은 무엇인가.
▲ 현재 전북에는 미래 발전 가능성이 매우 큰 국책사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새만금을 비롯해 국가식품클러스터, 태권도 공원 등이 그것이다. 우리에게는 매우 큰 기회인데 이 사업들이 원활히 돌아갈 수 있는 구도를 만들어줘야 한다.
하지만 이런 구도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창구가 꽉 막혀있다. 대규모 국가산단 건립 및 국제규모의 컨벤션센터 건립 등 LH 본사 유치 실패로 인한 후속 대책안 또한 난항을 겪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완주 전북지사는 부지런하고 지방행정전문가로써 수 십년의 노하우를 갖고 있는 베테랑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태생적 한계가 있는데 이는 집권 여당 및 중앙정부하고 연계할 수 있는 창구역할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김 지사가 일부 도내 현안을 추진하면서 중앙정부를 교섭대상보다는 투쟁대상으로 삭발까지 하면서 정부와 싸웠다는 점은 큰 실수라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중앙정부를 설득해 예산을 많이 가져와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전북이 주체인 중앙정부와 싸웠다는 점에서 참 가슴이 아프고 도민들에게 안타까운 일이 됐다.
전의를 불태워 싸웠는데 그 다음에 도와달라고 할 수 있겠냐. 김 지사가 투쟁가, 운동가, 정치가, 행정가를 다 해버린 것이다.
도지사는 행정을 중심으로 도민을 위해 위민정치를 해야하다. 이외에 정치적인 것은 국회의원 및 도의원이, 투쟁은 시민운동가 등 서로 역할 분담을 해서 전북의 진정한 발전을 이룩해야 할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있는지.
▲ 만시지탄(晩時之歎)의 늦은 감은 있지만 도지사는 이제부터라도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현안을 해결해 나가는 방법밖에 없다.
전북은 현재 집권여당 국회의원들이 한 명도 없는 매우 취약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전북도 행정부는 도내 11명의 국회의원과 함께 중앙정부와의 교섭을 위해 두 배, 세 배, 다섯 배 더 노력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중앙정부와 소통의 창구를 만들 수 있는 쌍발통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전북의 미래 발전을 위해 선택이 아닌 필수적인 요소가 됐다.
이는 크게는 동서갈등, 지역갈등을 극복함으로써 화합과 소통의 정치 문화가 만들어 질 수 있으며, 작게는 도내 지역이 ‘낙후 전북’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계속해서 석패율을 주장하고 있는 이유도 이런 의미에서다.

-앞으로의 계획은
▲ 향후 10년 간 정치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지난해 6.2 지방선거부터 시작했으니 8년 조금 더 남은 것 같다.
이 기간 동안 정치구도를 바꾸고 지역주의를 바꾸기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아 부을 것이다. 총선이든 대선이든 선거에 당선 여부를 떠나 지역장벽을 어떻게 깰 것이냐에 모든 목표를 두고 접근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내년 4월 지방선거에서 전주를 비롯해 익산, 고창 중 한 곳을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유권자가 주인인 만큼 그분들이 부르는 곳으로 갈 생각이다.
지금까지 중앙에서 여러 활동을 한 만큼 도민들과 직접적인 스킨십이 없었다.
이제부터는 현장 중심으로 직접 도민들과 만나 애로사항과 의견 등을 듣고 그들이 뭘 원하는지 피부로 느끼고 그에 맞는 정치를 할 생각이다.
도내 지역에 집권여당 국회의원이 없는 만큼 내가 일할 경우 상당한 추진 동력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서울=신상학기자․jshin@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1954년 4월 고창에서 태어난 정운천 전 농식품부 장관은 익산 남성고와 고려대학교 농업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9년 한국 참다래 협회 초대회장을 역임했으며, 1991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참다래유통사업단 대표이사를 지냈다.
2006년에는 한국농업인CEO연합회 회장, 2007년에는 전남대학교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이듬해인 2008년 2월 제57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역임했다.
이후 제주특별자치도 농수축산도정고문, 한식재단 이사장, 한나라당 최고위원 등을 지냈으며 현재는 국무총리 직속 새만금위원회 위원 및 한나라당 호남발전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거북선 농업’과 ‘박비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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