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旗)’는 어떤 단체나 군대, 관공서, 또는 개인을 상징하기 위해 천 등을 이용해서 만드는 표식을 말하는 것으로, ‘깃발’이라고도 한다.
이미 수백, 수천년 전부터 인류는 다양한 형태의 기를 제작해 상징으로 삼아 왔다. 왕실의 기는 왕을 상징하는 상징물이기도 했고, 전쟁이나 일상에서는 신호용으로 쓰이기도 했다.
전쟁에서는 기가 첫번째 공격 목표였고, 기가 쓰러지면 그것은 곧 패배를 의미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가지 특수한 용도에 쓰이는 기가 만들어졌다. 검은색 기는 해적의 상징이었으며, 오늘날 전 세계에 걸쳐 노란색 기는 전염병의 신호로 쓰인다. 흰색 기는 보편적으로 휴전을 뜻한다. 바다에서 기를 거두거나 낮추면 항복을 의미한다.
국가간의 관계에서는 어떤 나라의 기가 다른 나라의 기보다 위에 있으면 위에 있는 나라가 승리한 것을 나타내므로 평화시에 한 나라의 기를 다른 우호적인 나라의 기 위에 게양한다는 것은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기는 여러가지 모양이 있지만 대개는 직사각형이고, 한쪽 면을 깃발끈에 매달아 놓는다.
원래 전쟁에서 주로 쓰였던 기는 지금도 지도력을 상징하거나 아군과 적군을 식별하고 집합장소를 표시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그밖에도 오늘날에는 기능이 더욱 확대되어 신호·장식·표시 등으로 널리 쓰인다. 식별을 위한 목적으로 기를 사용할 때는 바람에 자유롭게 나부끼는 것이 효과적이므로 가벼운 재료가 많이 쓰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왕실이나 군대, 선박 등에 국한되지 않고 무속신앙이나 민속놀이 등에 기가 많이 이용됐는데, 기를 이용한 대표적인 민속놀이로 익산에 기세배놀이가 전한다.

■ 금마지역 12개 마을 농기들 모여 세배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 일대에는 정월 대보름에 여러 마을의 농기(農旗)들이 한 곳에 모여 세배(歲拜)를 교환하는 민속놀이가 전래되고 있다.
기세배는 농경문화에서 파생된 여러 민속놀이 가운데 하나로, 기(旗) 싸움이나 농기뺏기 등은 익산 함열 등 여러 곳에서 전승되고 있으나 기(旗)로 세배를 하는 형태는 국내에서 유일하다.
기세배의 유래는 삼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나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금마를 비롯해 왕궁, 함열, 삼기 등 옛 익산군 지역 일부와 옛 옥구, 김제 등지에서도 행해졌다고 하나 지금은 전래되지 않는다.
현재 원형이 비교적 가장 잘 보존되고 있는 지역은 익산 금마 지역으로, 금마 기세배의 경우 미리 서열이 정해진 12개 마을이 참여했다.
‘선생(先生)마을’이라고 하는 맏형마을의 소룡기(小龍旗)가 서열에 따라 11개의 아우마을들을 차례로 찾아다니면서 각 마을의 농기를 선생마을로 인도한다. 맏형마을 광장에 모인 농기들은 서열대로 맏형마을의 농기에 대해 정중하게 세배를 한다. 서로 세배를 교환하고 나면 흥겨운 농악놀이와 기놀이로 형제의 우의를 다지는 의례가 이어진다.
이처럼 기세배는 여러 마을의 주민들이 대동단결하여 상호 협력과 친목을 다지는 세시풍속이자 민속놀이였다.
대부분의 민속놀이가 부락단위로 이뤄지는 데 비해, 기세배는 12개 마을이 합동으로 지역사회의 협동을 공고히 하는 행사라는 점에서 특징이 있다.
일제 때인 1936년 강제 중단되었던 이 기세배놀이는 송상규 선생의 노력으로 당시 행사에 참가했던 촌로들의 고증을 거쳐 1976년 재현됐다.
그 해에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받았고, 1991년에는 지방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됐다. 1995년에는 ‘익산기세배보존회’가 설립됐으며, 2000년 11월에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5호로 변경 지정됐다.

■ 기 놀이와 농악 등 18개 놀이
기세배놀이는 좌상, 공원, 총각좌상, 총각머슴, 기받이 1명씩과 사령 2명, 7~8세 남녀 아동인 꽃나비와 꽃받이 각 2명, 보조기받이 2명, 농악대 8명 등 총 21명으로 구성된다. 다만 선생마을은 소룡기받이 1명과 소룡기 보조받이 2명이 추가된다.
기세배의 매개가 되는 기(旗)는 마을별로 7~8개 정도로, 한번 공연에는 통상 40여개의 기들이 모인다.
기는 큰 것은 무게가 5kg에 이르며, 여기에 기를 매다는 대를 포함하면 15kg에 육박한다. 야외에서 행해지는 특성상 바람의 세기 등을 고려하면 결코 가벼운 무게가 아니다. 때문에 공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숙련도와 체력이 필요하다.
총 12개 마을이 참여하는 것으로 가정하면 250여명의 인원이 참여하는 대규모 놀이마당이 꾸며지는 셈이다.
현재는 6개 마을로 참여 마을이 줄었어도 한번 행사 때마다 최소 100여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로 재현되고 있다.
기세배의 진풀이는 입장굿, 인사굿, 마을별 원진, 달아치기 을자진, 기배열안 바탕, 장사진, 각진, 나눔진, 쌍줄백이, 기제사굿, 기세배, 합류굿, 멍석말이진, 쌍발울진, 개인놀이, 기놀이, 인사굿, 퇴장굿 등 총 18가지 놀이로 구성돼 있다.
전체적으로는 기놀이와 농악놀이로 나뉘는데 농악놀이는 여느 농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기놀이에서는 전국에서도 가장 독창적인 형태로 발전해 계승되고 있다.
/소문관기자․mk7962@

■ 기세배, 마한시대 솟대놀이에서 유래
기세배는 옛날 마한시대의 솟대 행사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솟대는 소도(蘇塗)라고도 하는데, 소도행사는 농사의 신(神)을 상징하는 신기(神旗)를 중심으로 모여 은혜에 감사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놀이였다.
기세배는 기제와 연행인솔, 당산굿, 마당놀이, 기세배, 기놀이, 군무 등의 과정으로 이뤄진다.
▶기제 : 정월 열 나흗날 밤에 내일의 기 세배를 앞두고 12개 마을별로 각자의 마을 당산에 모여 농기를 세워놓고 기제사를 지낸다. 이때 풍장을 울리고 좌상이 제주가 된다.
▶연행인솔 : 정월 대보름날 아침 일찍 상대마을은 소 동기를 앞세우고 무동 농악대 좌상 총각머슴들이 나서 맨 처음 막내 동생마을부터 연달아 행차를 한다. 이들은 질굿을 치면서 차례로 동생마을을 방문해 이들을 이끌고 논길 밭길을 지나 상대마을로 향한다.
▶당산굿 : 일행이 상대마을 당산에 이르면 일렬로 서서 한바탕 당산굿을 치고 일제히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한다.
▶마당놀이 : 당산에 고한 일행은 상대마을 광장으로 진출해 마당놀이를 벌인다. 방울진 굿으로 빙빙 돌기도 하고, 미지기 굿으로 쇠와 장고가 마주보고 전진후퇴를 하기도 하면서 나중에는 마을 단위의 개인놀이로 한바탕 흥을 일으켜 논다.
▶기세배 : 12개 마을들은 형제의 서열에 따라 둘째마을이 세배를 올린 뒤 맏형마을의 옆에 선다. 다음은 셋째마을이 형 마을들에게 세배한 다음 둘째마을 옆에 나란히 선다. 원래는 서열에 따라 개별세배를 계속했으나 현재는 둘째마을 까지만 개별세배를 하고, 나머지 마을들은 합동으로 세배하는 것으로 행사가 간소화됐다. 이때 농기가 배례를 하면서 기를 조금만 수그리는 익살을 부려 승강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이 과정에서 농기뺏기 놀이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기 놀이 : 기 세배를 끝낸 마을은 여흥으로 갖가지 기 받기와 기 쓸기 등 힘자랑과 기교를 자랑하게 된다. ①상대기 쓸기 ②소 동기 쓸기 ③용기 쓸기 ④손 놀이, 어깨놀이, 이마받기 ⑤기 돌리기 ⑥딸기 치기 ⑦파장 돌리기 등 다양한 기교가 등장한다.
▶군무 : 기 놀이에서 힘과 기량을 충분히 자랑한 각 마을 사람들은 마지막 군무를 이루어 여흥의 절정을 이룬다. 상대마을에서 제공하는 주연을 끝으로 기 세배 행사의 마지막을 고하고 각자 마을로 되돌아간다.
/소문관기자․mk7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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