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교통부가 2007년에 발표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내소사 전나무 숲과 오색단풍 나무 어우러진 길’에 뽑힐 정도로 들어가는 길이 아름답다.

내소사만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자랑거리 중 하나는 이 전나무 숲이다. 경내까지 600여미터는 전나무 숲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우뚝솟은 전나무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으니 그 밑을 걷노라면 경외로움마저 든다. 바람이 훅 하고 불면 침엽수 특유의 상큼한이 코끝을 스친다. 요즘 전국 곳곳에 자연 휴양림이 많이 생기고 있다. 나무에서 내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받아보고자 하는것인데 우리는 내소사를 가면서 자연스럽게 산림욕을 할 수 있다. 몸도 마음도 청정해질 수 있는곳, 그런 곳이 바로 우리의 사찰이다. 이제 자연스레 바람과 함께 속세의 번뇌는 멀리 사라져버렸다. 천계에 오른듯하다. 경내에 들어서면 환희의 꽃비가 내리는 아름다움에 또한번 감동한다. 이제 부처님이 사시는 불국에 다다른 것이다.

이 전나무에 대해서는 내소사 주지스님으로 7년간이나 근무한적이 있는 소공스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150 년에서 200년은 넉넉히 된다고 하며 동내 촌로들의 말을 빌어도, 왜정 때도 현제의 모습대로 고색항연하고 우람하게 고목의 전나무 숲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변산의 절경과 어우러진 내소사의 이같은 역사와 아름다움은 오래 오래 보존되길 바란다. 변산은 봉래산, 영주산,능가산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불교의 영향을 받아 된 이름으로 풀이 할 수 있다. 능가(綾伽) 또는 준거(駿伽)라고도 표기하고 있는데 이 산은 본래 인도의 사자국 (獅子國) 곧, 석란도(錫蘭島)에 있는 산이라고 한다.그런데 이 능가는 능가보의 귀여운 보배가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며, 아무나 함부로 드나들수 없는 거룩하고 엄숙한 산이 즉, 변산이란 것을 그대로 강조 하고 있음을 알 것 같다.

일주문 앞을 지나면 당산목이 있다. 오래된 마을 어귀에 자리잡고 있는 여느 당산목과 마찬가지로 이 마을 사람들의 민속신앙의 대상이다. 신경써서 보지 않으면 무심코 지나가게 된다. 일주문을 지나서 있는 나무가 할아버지 나무인데 수령이 500년 된 홰나무이고, 내소사 안뜰에 있는 홰나무가 할머니 나무이다. 수령이 약 1000년쯤 되었다고 하는데 높이가 무려 20m이고 둘레가 7.5m나 된다. 이 마을 사람들은 나무 밑둥에 상석을 설치해 놓고, 제사를 모신다.

변산반도 국립공원은 우리나라 유일의 반도공원으로 천혜의 해수욕장과 기묘한 단애로 형성된 채석강 그리고 내변산의 봉래구곡과 의상봉(해발 508m)등을 포함하여 도립공원에서 1988년 6월11일 국립공원으로 승격됐다.

변산반도 국립공원에는 수많은 문화재가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동·식물이 분포돼 있다.

유서깊은 사찰을 찾아가는 길에는 으레 초입의 울창한 숲길을 거쳐 경내로 들어서게 마련이다. 그러나 내소사의 전나무 숲길만큼 운치있는 곳은 그리 흔치 않다. 내소사를 찾았던 이들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도 바로 이 전나무 숲길이다. 일주문을 들어서자마자 마주치는 전나무숲의 위용에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온다. 하늘을 찌를 듯 뻗어 올라간 수백 그루의 전나무들로 인해 마치 거대한 터널 속에 들어선 듯하다.

능가산 내소사에 이르는 수령 80~2백년 된 전나무 숲이 절경이다. 5천여평에 6백~7백그루, 높이 30~40m의 전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곧게 자라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이곳 내소사 전나무 숲은 일제때 일본사람들에 의해 건축용 자재, 가구재료로 많이 벌목되었으며 8^15해방 이후에는 선박건조 및 땔감으로 사용, 많이 훼손되었다고 얘기하고 있다.

이 숲길을 따라 걷다보면 숨을 들이 쉴 적마다 전나무의 맑은 향기가 온몸 깊숙이 파고든다. 어느덧 속진(俗塵)에 찌든 심신은 가뿐해지고 불도량(佛道場)을 향하는 발걸음도 한결 가볍다.

변산면 도청리의 호랑가시나무(천연기념물 제122호)군락지, 변산면 격포리 후박나무(천연기념물 제123호)군락지와 변산면 중계리의 꽝꽝나무(천연기념물 제124호)군락지, 상서면 청림리 미선나무(천연기념물 제370호)군락지 등 1백25과 7백38종이 변산반도에 분포,자생하고 있다.

변산면 도청리의 호랑가시나무 군락지는 1962년 12월3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나무는 제주도,완도,해남,진도 등에 분포하고 있으나 이곳 변산반도에 군락을 이루고 있어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나무의 높이는 2~3m에 이르며 가지가 많아 갈라지고 무성하며 털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호랑가시나무라는 이름은 일설에 잎 가장자리의 각점 끝에 딱딱한 가시바늘이 있어서 호랑이가 등이 가려울 때 이 나뭇잎에 등을 문질러 긁는다는데서 연유한 것이라고 하나 믿을 만한 것은 못된다.

변산면 격포리 해안가에 군락을 이루고 자생하는 후박나무숲은 해풍에 시달리면서도 상록수의 군락을 이루며 적벽강과 어울려 장관을 이루고 있다.

후박나무는 제주도를 비롯한 해남,진도,영광,어청도 등 남쪽지방의 산지에서 자라고 있으며 육지부에서는 이곳 변산 이북에는 분포하지 않으므로 이 군락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그러나 후박나무의 껍질이 이뇨제,소화제 등 한약재로 쓰는 까닭에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

또한 변산면 중계리의 꽝꽝나무 군락지는 2백여그루의 꽝꽝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 나무는 일견 회양목과 비슷하나 감탕나무과에 속하는 상록관목으로 키가 1.5~2m에 달한다. 이 꽝꽝나무도 변산군락지 이북으로는 자생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부안댐 주위에 철망속에서 보호되고 있는 미선나무 군락지가 있다. 또 나무의 줄기가 화살을 닮은 화살나무와 잎이 진 가지 끝에 빨간 열매가 아름답게 매달린 감탕나무과의 낙산홍 등 수많은 목·초본 식물이 분포하고 있다.

이처럼 변산반도는 산쪽의 안변산과 바깥변산으로 구분되어 해안의 절경과 안변산의 기암절경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아직까지는 변산반도의 전반적인 식물 연구가 되어있지 않지만 98년부터는 체계적인 탐사연구가 된다고 한다.

이곳 변산반도는 서해안 관광의 주요 거점으로 개발이 계속되고 있다. 개발의 미명 아래 파헤쳐지고 훼손되지 않게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어 개발되어야 한다.

내소사 주변 관광지

개암사
개암이라는 이름은 기원전 282년 변한의 문왕이 진한과 마한의 공격을 피해 이곳에 성을 쌓을때, 우(禹)장군과 진(陳)의 두 장군으로 하여금 좌우 계곡에 왕궁의 전각을 짓게 하였는데 동쪽을 묘암, 서쪽을 개암이라고 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려 충숙왕 1년(1314)에 원감국사가 이곳에 와서 절을 다시 지어 큰 절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며, 그 뒤에 여러번 수리가 있었다.
석가모니불상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우람한 기둥 덕에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조각기법에서도 세련미가 있는 건물로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건축이다.

절 위로는 500여 m 떨어진 곳에 울금바위라는 큰 바위가 있다. 이 바위에는 세개의 동굴이 있는데, 그 중 원효방이라는 굴 밑에는 조그만 웅덩이가 있어 물이 괸다. 전설에 의하면 원래 물이 없었으나 원효가 이곳에 수도하기 위해 오면서부터 샘이 솟았다고 하며, 이 주변의 주류성은 백제 부흥운동을 폈던 사적지로도 유명하다.

월명암
692년(통일신라, 신문왕 12) 부설거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그 후 여러차례의 중수를 거쳐 내려오다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진묵대사(震默大師)가 중건하였다.

1848년(헌종 14)에는 성암화상(性庵和尙)이 크게 고쳐 대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으나 한말에 의병들이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일본군과 싸울 때인 1908년에 다시 불타버리자 중고선사(中故禪師)가 어렵게 다시 절을 세웠다. 그러다가 8.15 광복 후 여순반란군이 이곳에 들어와서 6.25직전, 그들 반란군에 의해 또다시 불에 타는 수난을 겪게되었다.

1954년 원경(圓鏡)스님이 군내 각 기관의 협조를 얻어 지금과 같은 작은 규모의 암자나마 다시 보게 되었다.월명암에는 처음 이 절을 창건했다는 부설거사의 행적을 소설형식으로 기록한「부설전」이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40호로 지정되어 있다.

채석강
1976년 4월 2일 전라북도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었다. 면적 12만 7372㎡이다.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반도 맨 서쪽, 격포항 오른쪽 닭이봉 밑에 있다. 옛 수운(水運)의 근거지이며 조선시대에는 전라우수영(全羅右水營) 관하의 격포진(格浦鎭)이 있던 곳이다.

지형은 선캄브리아대의 화강암, 편마암을 기저층으로 한 중생대 백악기의 지층이다. 바닷물에 침식되어 퇴적한 절벽이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하다. 주변의 백사장, 맑은 물과 어울려 풍치가 더할 나위 없다. 채석강이라는 이름은 중국 당의 이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채석강과 흡사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여름철에는 해수욕을 즐기기 좋고 빼어난 경관 때문에 사진 촬영이나 영화 촬영도 자주 이루어진다. 채석강에서 해수욕장 건너 백사장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붉은 암벽으로 이루어진 적벽강이 있다.

적벽강
1976년 4월 2일 전라북도기념물 제29호로 지정되었다. 후박나무 군락(천연기념물 123)이 있는 연안으로부터 용두산(龍頭山)을 돌아 절벽과 암반으로 펼쳐지는 해안선 약 2km, 291,042㎡를 적벽강이라 하는데, 이는 중국의 적벽강만큼 경치가 뛰어나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채석강의 끝인 죽막(竹幕)마을을 경계로 북쪽이 적벽강이고, 남쪽이 격포해수욕장을 포함한 채석강(전북기념물 28)이다.

변산해변의 절경을 빚어내고 있는 적벽강은 붉은색을 띤 바위와 절벽으로 해안이 이루어져 있어 맑은 물에 붉은색이 영롱하며, 특히 석양 무렵 햇빛을 받아 바위가 진홍색으로 물들 때 장관을 이룬다. 후박나무 군락 앞 해안의 암반층에 형성된 석물상 가운데 어느 것은 여인의 유방 같고, 또 어느 것은 토끼 모양을 하고 있는 등 바위 하나하나가 만물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돌아가면 높이가 30m 정도 되는 2개의 절벽으로 된 바위가 있는데, 그 안에 용굴이라 부르는 50㎡ 면적의 동굴이 있다. 용굴에서 북쪽으로 용두를 돌아가면 검붉은 암벽으로 덮여 있다. 이곳에는 검은색·갈색 등 형형색색의 수석이 깔려 있어 절경을 이룬다.

적벽강에는 숱한 전설이 얽혀 있다. 이곳에 서있는 수성당(水城堂:전북유형문화재 58)은 수성할머니를 바다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제사 지내는 곳이다.

곰소(젓갈)
아마존이나 지중해 유역과 더불어 세계 5대 갯벌중 한곳이 바로 우리나라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이용 가치가 높은 곳이 채석강과 곰소 고창을 꼭지점으로 하는 곰소만(줄포만)의 갯벌이다.

경치좋은 변산반도의 왼쪽편이 위치한 곰소는 변산반도 여행에서 흔히 놓치고 오지만 정작은 가장 먼저 보고와야 할 곳이 바로 이곳 갯벌이다. 채석강을 기점으로 해서 곰소까지 도로를 따라 가면서 끝없이 펼쳐진 갯벌을 보게 되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갯벌은 어디서도 볼 수 없다. 곰소는 이 갯벌의 끝에 자그맣게 매달려 있는데 곰소 젓갈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직소폭포
석포리(石浦里) 소재 내소사(來蘇寺)의 북서쪽, 선인봉(仙人峰)의 동쪽 산자락에 형성된 계류폭포(溪流瀑布)로, 높이 20m 이상을 비류(飛流)하여 옥수담(玉水潭)에 떨어진다.

그 밑에 제2, 제3의 폭포가 또 있다.
현지인들은 이 폭포와 그 일대를 내변산(內邊山)의 제일 경승으로 치고, 변산 8경의 하나로도 꼽는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