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군 화산면은 소를 많이 키우는 곳으로 유명하다. 화산면 주민자치센터에 따르면 관내 400여 농가에서 1만4000여 마리의 한우를 사육, 전국 면 지역 가운데 가장 많은 사육 두수를 자랑하고 있다.
또 완주 8경의 하나인 경천저수지가 위치해 있고, 여기서 나오는 붕어로 만든 붕어찜은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하지만 한우값이 바닥을 치고 있는데다 붕어찜을 찾는 이들도 줄어들어 면의 활력이 예전만 못한 것이 사실.
이런 가운데 무너져가는 마을공동체를 복원하고 마을의 부존자원을 발굴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마을만들기’ 사업이 화산면의 한 작은마을에서 벌어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마을주민들이 십시일반 출연해 영농조합법인을 만들고, 자체 생산한 콩으로 청국장을 만들어 전국에 판매하고 있다. 꽃 대신 농특산물을 사용하는 행사용 화환을 만들어 수익사업에 활용하고, ‘감자삼굿’을 재현해 농촌관광을 추진중이다.
이른바 ‘커뮤니티 비즈니스’ 사업을 통해 6차산업을 일궈가고 있는 원우마을을 찾아 마을만들기 사업의 이모저모를 들여다봤다.

■ 마을에서 생산된 콩만으로 청국장 생산
전체 세대수가 15세대에 불과한 원우마을은 논농사와 밭농사를 중심으로 소규모 한우사육까지 아우르는 복합영농을 하고 있는 자그마한 마을이다.
조용하기만 하던 이곳에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0년부터.
완주군이 추진하는 ‘커뮤니티 비즈니스사업’에 선정된 원우마을은 군비 3,000만원을 지원받아 콩 작업 선별장과 저온창고를 설치하고 본격적인 콩 생산을 시작했다. 하지만 사업 첫해와 둘째해에 콩 흉년이 들면서 이렇다할 재미를 보지 못했고, 콩 자체보다는 콩 가공상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011년 콩나물 기계를 도입한데 이어, 2012년에는 군비와 자부담 각 2,500만원씩 총 5,000만원을 투입해 청국장 제조시설을 설치하고 식품제조영업신고를 마쳤다.
청국장 사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마을 주민들은 ‘마을만들기’ 사업을 추진할 주체인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2012년 2월 소가 드러누워 있는 형상이라는 뜻의 옛 지명인 ‘소두러니’와 콩을 합성한 ‘알콩달콩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고, 대표에 박명기(70)씨를 선출했다.
이어 9월부터는 청국장을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청국장 제조는 마을에서 가장 젊은 ‘귀농인’ 손연호(58) 씨가 강원도를 오가며 배워왔다. 상품명은 발효과정에서 솔잎을 사용해 은은한 솔향이 난다해서 ‘솔잎청국장’이라고 명명했다.
솔잎청국장은 콩을 으깨지 않아 식감이 좋고, 고추씨기름을 함유해 고춧가루를 넣지 않아도 얼큰한 맛이 난다. 청국장 특유의 냄새도 매우 적다. 전량 마을에서 생산된 콩만을 사용하고, 콩이 떨어지면 생산을 중단하는 것도 솔잎청국장만의 특징이다.
막상 상품을 생산은 했으나 판로가 문제였다. 알음알음 도회지에 나가 있는 친척이나 지인들을 통해 판촉도 하고 판매도 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한 종합편성채널에서 원우마을의 청국장을 취재해 방영했고, 이후 약 40여일만에 500만원어치가 팔려나갔다.
미국 수출길(?)에도 올랐다.
당시 한 재미교포가 방송을 보고 청국장 3kg과 된장 3kg을 주문해 솔잎청국장과 집에서 담은 된장을 보내게 된 것. 청국장과 된장값은 7만6,000원에 지나지 않았지만 택배비로 9만6,800원이 들었다. 또한 10번이 넘는 국제전화가 행해져 ‘배보다 배꼽이 큰’ 수출이 성사됐다.
완주 로컬푸드 직매장에도 납품했으나 두달만에 중단했다. 다른 마을에서 생산되는 청국장이 모두 직매장에 납품되면서 제품의 차별화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 농특산물 화환 만들고 ‘감자삼굿’도 재현
청국장 사업에 이어 농특산물 화환사업도 시작했다. 각종 애경사에 쓰이는 화환이 한번 사용되고 폐기돼 돈 낭비는 물론, 환경적 측면에서도 바람직스럽지 못하다는 판단에 따라 꽃 대신 농특산물로 화환을 장식해 행사의 의미도 살리고 농특산물도 판매하자는 취지에서 아이디어를 낸 것.
폐목재를 활용해 60개의 3단 틀을 만들었고, 화환에 장식할 농특산물은 쌀, 콩, 감자 등의 로컬푸드로 장식해 행사장에 임대했다.
이 농특산물 화환은 작년 한해 완주군청 개청식 등 군내 각종 행사에 팔려나가 2,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주민들은 판매사업에 이어 체험행사 발굴에도 나섰다.
옛날 삼베를 짜내기 위해 삼 껍질을 벗기면서 감자를 익혀 먹던 ‘감자삼굿’을 재현키로 한 것. 구덩이를 파고 불을 때 돌을 달군 뒤, 물을 붓고 수증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아 삼 껍질도 벗기고 그 열로 감자를 익히는 전통방식을 재현해 완주군 와일드푸드축제에 첫 선을 보였다.
주민들은 감자삼굿 외에도 청국장만들기, 두부만들기, 대나무물총싸움, 솔방울싸움, 대나무활쏘기, 썰매타기 등 다양한 체험코스를 개발해, ‘보고 먹고 즐기는’ 농촌체험마을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 출향인 대상 ‘산벚꽃등산대회’
주민들이 농촌체험마을 조성에 자신감을 갖게 된 또하나의 이유는 출향인들을 대상으로 매년 실시하고 있는 ‘산벚꽃등산대회’ 때문.
10년전부터 매년 산벚꽃이 피는 시기에 출향인들을 초청해 열고 있는 ‘산벚꽃등산대회’에는 적게는 80명에서 많게는 100명까지의 출향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1년에 한번 고향마을을 방문해 옛 친구나 선후배들을 만나 회포도 풀고,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소발굽 모양의 능선을 따라 걸으며 고향의 정을 담뿍 안고 돌아간다.
행사에 소요되는 비용만 해도 400만원에 이르지만 출향인들이 십시일반 내는 성금만으로도 충분하다.
박명기 대표는 이 산벚꽃등산대회를 롤모델로 삼아 체험관광 유치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하지만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체험행사도 필요하지만 도시민들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도록 기반시설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
이에 따라 주민들은 화장실과 샤워실 등을 올해 안에 갖춰 관광객들의 불편을 덜어줄 계획이다.
영농조합 박명기 대표는 “마을 주민들이 서로 단결해 ‘가난병’을 고쳐 잘 사는 마을이 됐으면 하는 것이 소망”이라며 “그러기 위해 젋은 귀농인들이 들어와서 인터넷도 개설하고 같이 협력하고 상생해 마을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문관기자·mk7962@

■ 귀농해 청국장 만드는 손연호씨
원래 부산 태생인 손연호(58)씨는 남편 문홍섭(60)씨와 결혼해 서울에서 살다 2010년 귀농했다. 사업을 하던 남편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남편 고향으로 귀농을 결심한 것.
귀농하면서 밭 5,000평을 구입해 남편과 함께 양파와 마을, 감자, 콩 등을 재배했다. 농사라곤 구경조차 해본 적이 없었던 손씨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농삿일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러나 운이 맞아서였는지 짓는 농사마다 대박을 터뜨렸다.
마침 마을만들기 사업을 한다길래 ‘가장 젊다는’ 이유로 직접 농사지은 콩 두말을 들고 강원도의 한 청국장 명인을 찾아갔다. 수업료 25만원을 내고 두 번의 실습을 거쳐 청국장 발효기술을 배운 뒤 집에 돌아왔다.
전라도식 청국장과는 달리 콩을 으깨지 않고 담는 손씨의 청국장은 많은 논란 끝에 어렵사리 마을사업으로 추진이 결정됐다. 최근 ‘솔잎청국장’의 판매가 조금씩 늘어나고 맛에 관한 소문이 나면서 손씨는 이제야 맘을 놓을 수 있게 됐다.
손씨는 이제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지천으로 널려있는’ 재료들을 활용해 장아찌를 담고 있는 것. 이를 위해 농업인대학도 다니고, 각종 장아찌교육도 두루 섭렵했다. 곰취, 깻잎, 고추, 오이, 참외 등은 기본이고, 전라도에서는 흔치 않은 콩잎장아찌도 담아놨다.
화려한 도시생활에 만족하며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시작하게 된 시골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이것저것 도전에 나섰다는 손씨는 그 이유를 “마을에 보탬이 되고 싶어서”라고 했다.
/소문관기자·mk7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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