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칼럼] 전북 지역공동체 재건하자

유동성 수석논설위원l승인2014.12.30l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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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새로운 한 해 양의 해가 밝았다. 연말연시가 되면 사람들 사이에선 덕담이 오가고 은근한 정이 흐르게 마련이다. 12간지 중 양은 평화와 순박, 공동체 정신의 상징이다. 워낙 온순한 동물인데다 환경에 순응토록 진화한 까닭에 사람들에게 더 할 나위 없이 희생적이다. 자신을 먹여 기른 인간에게 온 몸을 다 바친다. 심지어 제사상에 산 채로 오르는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어떤 각도에서 보면 어리숙 하고 둔감해보이지만 나름의 존재 이유를 충실히 실천하는 생명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양의 해를 동양권에서는 매우 긍정적으로 본다. 양의 어질고 순한 품성을 빗대어 좋은 일이 생기고 집안이 화목할 것으로 예상한다. 명리학에서는 물론 여러 복잡한 이야기들을 하지만 단순하게 평화로운 한 해를 기대해도 무방하다.

양과 관련해 초점을 맞춰볼 문제는 바로 지역공동체 정신이다. 공동체 정신이란 지역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의 긴밀한 소통과 협업 그리고 정신적 유대감이다.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우리 시골마을을 떠올리면 된다. 과거 농촌마을들은 제의와 놀이, 노동을 늘 함께 했다. 두레나 품앗이, 명절 때마다 한판 흐드러지는 민속놀이들이 대표적 예다.

양의 사회가 모범적 공동체라는 것은 그들은 집단으로 생활하면서도 서열을 정하거나 암컷을 앞서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또 양치기나 개, 선두의 양 등 지도자들의 인도에 순순히 따른다. 인간과 양을 같은 선상에 놓고 논할 수는 없다. 다만 집단 내에서 규율을 잘 지키고 서로 존중하고 아끼며 협력하는 태도를 주목하자는 것이다.

사실 전북이라는 지역공동체는 그 의미가 많이 퇴색한 것 같다. 농촌의 해체와 서구 문명의 홍수, 도시화, 정보화 등 시대적 흐름 속에서 가족과 지역공동체는 점차로 해체 수순을 밟고 있는 듯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식민지배와 민족상잔의 비극 한국전쟁, 반세기 간의 압축적 경제성장 등이 공동체를 망가뜨렸다는 인식이다. 그런 와중에 전북은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고 개발에서도 소외되면서 낙후 전북이라는 불명예스런 족쇄에 걸리고 말았다. 특히 농업중심 사회인 탓에 지역공동체의 해체는 빠르게 진행되는 양상이다.

어디 공동체의 해체뿐이랴. 전북이라는 행정구역을 중심으로 한 지역사회를 돌아보면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지난해 말 통계청이 발표한 지표가 그 중 하나다. 2013년 기준 전북의 1인당 지역소득을 보면 1453만 원으로 16개 광역시도 중 13위였다. 1위인 울산보다 463만원이나 적었다. 또 지역내 총생산액은 423조원으로 전국 대비 3%의 비중을 점하는 데 그쳤다. 늘 소외다 낙후다 하고 입버릇처럼 되뇌이는 게 결코 빈말이 아님을 증명한 셈이다.

지역정치를 언급하자니 입이 아플 지경이다. 언제부터인가 전북의 정치세력은 최약체로 추락했다. 굵직한 거물은 고사하고 모두들 힘을 합쳐봐야 자기 몫을 챙기기에도 힘이 달린다. 올 국가예산 확보액이 전국적으로 유일하게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는 사실에서 그 현실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길은 있다. 바로 지역공동체의 재건이다. 중소도시나 농촌으로 이뤄진 전북은 상대적으로 지역공동체 형성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고 볼 수 있다. 작은 마을이어야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가 가능하다.

여기서 분명히 짚어야 할 게 있다. 주민 소득이 몇 푼 많고 적고는 문제가 아니다. 지역 구성원들끼리 협력하고 존중하고 아끼며 인정해주는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강력한 생존 번영에의 무기다. 경제적으로 뒤처지는 것은 주민 결집력을 통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그러니 현 단계에선 공동체 재건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이미 싹도 텄다.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 마을 만들기 등 공동체 운동에서 전북은 꽤 선진적이라는 분석이다.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에 눈떴다는 사실 자체가 희망의 불빛이다. 사람 살기 좋은 전북이 만들어지면 관광객과 투자자, 이주민은 몰려오게 돼 있다. 이 거칠고 각박한 세상에 양처럼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웃끼리 아끼고 나누며 돕는 지역공동체야 말로 인류가 이어온 전형적 삶의 관계방식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다. 공동체를 삶의 중심에 놓는 것이 불가능할 것도 없다.

/유동성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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