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 휴렛패커드, 페어 차일드. 그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이 기업들의 공통점은 바로 실리콘 밸리가 근거지라는 점이다. 최고의 IT 기업인 이들 업체들은 미국 첨단기술의 상징인 실리콘 밸리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자리한 실리콘 밸리는 1970년대 이후 첨단기술 연구단지로 조성되면서 기술혁신의 첨병으로서 자리매김했다. 비가 적고 건조해 전자산업에 적지인데다 인근에 스탠퍼드 등 명문대가 위치해 있고 주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실리콘 밸리는 전 세계에 하나의 충격이었다. 기술혁신은 물론 벤처 캐피탈과 벤처 비즈니스 등이 어우러져 산업복합체를 이루면서 세계 기술경제를 좌지우지했기에 너도 나도 따라 하기가 유행했다. 열정과 창의력을 갖춘 사람들이 모여 혁신적 기업을 세우고 수십억 달러의 부를 창출하며 수천 수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신화였다.
  실리콘 밸리의 성공은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95년 외환위기로 나라경제가 휘청거릴 때 정부는 첨단 IT기술을 앞세운 벤처기업 육성에 적극 나섰다. 1997년 제정된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은 그 근간이 됐다. 이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우리나라에서 벤처기업 열풍이 불어 닥쳤다. 모두들 미국 실리콘 밸리를 모델로 21세기 한국 경제를 끌어갈 새로운 대안으로 IT벤처기업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1991년 창업한 팬택은 그 선두주자였다. 휴대폰 제조업체인 팬택은 자그마한 중소기업으로 출발했지만 탁월한 기술력으로 단기간 내 한국 휴대폰 제조업계 3위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데 그 팬택이 곧 문을 닫게 됐다. 경영악화로 법정관리를 받으며 인수자를 찾던 팬택은 지난 5월21일 기업회생절차 폐지신청을 냈다. 그냥 파산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5월27일 1200여명의 직원들은 한 신문광고를 통해 “지금 팬택은 멈춰서지만 우리의 창의와 열정은 멈추지 않습니다. 팬택을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 우리는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작별인사를 했다. 이 광고는 직원들의 모금으로 성사됐지만 신문사측은 광고비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세계 곳곳은 실리콘 밸리를 꿈꾼다. 노르웨이 피요르드, 이스라엘 사막, 호놀룰루 바다 등 지구촌 어디서나 실리콘 밸리를 재현하고자 하는 노력이 열기를 뿜고 있다. 한국 역시 창의성과 도전정신으로 뭉쳐진 벤처 정신 덕에 이만큼 성장해왔다. 팬택의 몰락은 그런 의미서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하지만 비즈니스 정글에선 하나가 죽어 나가면 또 새로운 도전자가 나와 언제나 활력을 잃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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