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황산은 짙은 녹색 물빛 속에 담겨있는데 그 아래 매창공원의 매미는 왜 그리 슬프게 울어대는지 모른다. 8월의 햇볕이 마치 여름을 녹여버리려는 듯 활활 타는 이유를 아는 이도 드물 것이다. 매창 무덤 앞에 핀 백일홍의 눈이 시리도록 선연한 붉은 빛이 서러운 것을 또 누가 알가 모른다. 그러나 매미울음이 아무리 애달프다 해도 매창의 눈물보다 더 애 끓진 못할 것이다. 한여름의 태양이 그렇게 뜨겁다한들 그렇더라도 애가 타는 그녀의 가슴 속만큼 더 하진 않을 터였다. 분명하다. 선연한 핏빛으로 피어난 백일홍 붉은 빛이 아무리 서럽다 한들 설마하니 사랑을 잃은 매창의 삶만큼은 슬프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매창은 그런 여성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사랑이라 했다. 사랑만을 노래했고 사랑만을 위해 거문고를 탔던 매창의 가슴은 그래서 햇볕보다 더 뜨거웠고, 그녀의 심장은 여름에 피는 태양꽃 백일홍보다 더 붉고 찬란했다. 사람들이 사랑을 아름답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달콤한 것이라는 말이 참으로 허망한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그녀에게는 실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어쩌면 사랑하느니 차라리 한 송이 작은 매화꽃으로 남는 것이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고 믿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를 매창(梅窓)이라 불렀다.
 그래서 그녀는 차라리 시인이 되었다. 아무리 울고 또 울어도 사랑은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을 알았음이다. 그래서 눈물은 오히려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아리는 가슴을 눈물로 지울 수 있었던 사랑이 아니었다. 그래서 차라리 시를 썼다. 그녀는 시 “이화우”에서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 배꽃이 흩날리던 지난 봄. 그리도 화사하고 산들 한 바람 속에 떠난 임이 서릿발이 발아래서 울고 메마른 나뭇잎이 마지막 가는 늦은 가을이 되어서도 소식이 없다. 길은 한양 땅 천리인데 정말 정말 그도 날 생각할까? 어찌 하루도 눈물이 마를 새가 있었을까마는 그녀는 눈물대신 차라리 붓을 잡았다. 그러면 잊힐까, 차라리 잊혀질까하여 잡은 붓이 더 소리 내어 울었나 보다. 얼마나 애가 타고 가슴이 메었는지 “임생각”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 애끓는 정 말로는 할 길이 없어. 밤새워 머리카락이 반(半) 남아 세였고나. 생각는 정(情) 그대도 알고프거던. 가락지도 안맞는 여윈 손 보소 ? 차라리 한바탕 소리나 내어 울고 말 것을, 소쩍새 우는 지난 봄 부터 뜬 눈으로 보낸 밤이 그 얼마인가. 님이 떠나면서 끼워준 가락지조차 맞추지 못할 여윈 몸은 오직 님 생각에만 기대어 있다.
 

이렇게 매창은 사랑의 절절한 기다림을 붓으로 남겼다. 우리 역사에서 여성시인으로 손꼽히는 매창(梅窓 1573-1610)은 그녀가 스스로 지은 호(?)고 이름은 향금이었다 한다. 향금이도 어찌 예쁜 이름이 아닐까마는 사람들은 차라리 이매창(李梅窓)이라 불렀다. 기생첩의 여식으로 태어나 숙명적으로 기생이었고, 그나마 아전 아비를 두어 일찍 한문 등을 익혔다 한다. 그렇게 엮은 시로 그녀는 조선의 3대 여류시인으로 불렸다. 그렇더라도 그녀는 타고난 예인이었다. 비록 천민 기생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존중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그와 같은 존중은 당시 신분사회에서 매우 이례적이라 할 만큼 매창은 특별한 인물이었다. 말하자면 그녀는 어찌 보면 한낱 기생에 불과한 신분이었으나 학식과 예능에 있어서 출중한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시문(詩文)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 그녀의 나이 37세에 세상을 떠났다. 이를 두고 어찌 슬프지 않았을 풍류객이 있었으랴. 허균은 “아름다운 글귀는 비단을 펴는 듯하고 . 맑은 노래는 구름도 멈추게 하네. 복숭아를 훔쳐서 인간 세계로 내려 오더니. 불사약을 훔쳐서 인간 무리를 두고 떠났네(이하 생략).”라고 ‘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며’라는 시에 남겼다. 당대 걸출한 문장가였던 허균의 매창을 향한 애절한 마음이 절절하다. 그러나 매창에게 아름다운 시어(詩語)를 심어준 이는 유희경(1545-1636)이라 전한다. 그녀의 나이 열아홉이었다. 백일홍처럼 참으로 비밀이 많은 나이 열아홉에 그녀처럼 천민출신으로 당대 걸출한 시문객이었던 유희경을 만나 깊고 애절한 사랑을 품었다. 유희경은 ?일찍이 남국의, 계랑(매창의 다른 이름) 이름을 들었는데 그녀의, 시와 노래가 서울까지 들리더라, 오늘 가까이서, 얼굴을 대하니 선녀가 지상에 내려온 듯 하구나, 나에게 신비의 선약(仙藥)이 있어, 찡그린 얼굴도 고칠 수 있는데 금낭 속 깊이, 간직한 이 약을 사랑하는 네게 아낌없이 주리라? 계량이 어찌 그 약을 받지 않을까. 그녀는 ?내게는 오래된 거문고 하나 있다오, 한번타면 온갖 정감 다투어 생기는데도, 세상 사람들이 이곡을 아는 이 없으나, 임의 피리소리에 한번 맞춰보고 싶소? 이렇게 그녀는 열아홉에 진한 꽃을 피웠다. 그리고 배꽃 바람에 흩어지듯 약속도 남기지 않은 채 사랑은 떠나갔다. 사랑은 고독의 다른 표현이다. 고독은 그녀의 텅 빈 가슴 속에 그리움을 심었다. 그리움은 서러움의 다른 이름이며 서러움은 노여움과 이웃이었다. 신기하게도 그것들이 모두 시가 되었다. 백일홍 핏빛처럼 짙게 물들여진 매창의 가슴속을 비워둔 채 떠난 사랑은 15년이 지난 후에야 한여름 먹구름처럼 들어섰다. 그러나 앞서간 묵객들이 이미 노래했다. “세월은 참으로 무심한 것이라고” 그리도 밝고 붉었던 매창의 시어(詩語)들마저 이미 병색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서럽게 세상을 떠났다. 허균이 보았던 것처럼 그녀는 “불사약을 훔쳐서” 떠났다. 그녀가 훗날 그의 아름다운 시들로 다시 태어나리라는 것을 알아 본 것이리라. 300년도 훌쩍 지나서 시인 정비석도 “엄동설한에 천릿길도 마다하고 찾아와 경건히 머리 숙인다”했다. 가람 이병기도 그의 무덤을 찾아 “그 고운 글발 그대로 정은 살아 남았다”고 적었다.
 성황산 매창공원 그녀의 무덤에는 그 때 그녀의 나이 열아홉처럼 백일홍이 붉게 피어있다. 백일홍은 그리움의 표상이다. 태양을 그리다가 그 뜨거운 햇살에 바람처럼 떨어져가는 이별의 슬픔을 드러내는 꽃이다. 그것은 사랑의 열병을 이기지 못해 꽃이 된 전설의 상징이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들은 꼭 매창을 만나 볼 일이다. 그날도 매창공원에는 사랑의 아름다운 시어들이 풀 벌래 소리를 타고 날아다니고 있었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