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한 판, 우리네 삶을 담다

<문화아이콘50선: 5. 판에서 하는 소리, 판소리> 조세훈l승인2015.08.19l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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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3D’를 검색한 적이 있다. 당연히 ‘3D 영화’가 검색 순위 1위일 줄 알았다. 하지만 검색 순위 맨 위에 있는 것은 ‘3D 프린터’였다. 3D 프린터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사람들은 인터넷 이상의 기술혁명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었다. 신기술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세상의 변화도 그 만큼 빠르다.
인터넷이나 신문, 매스미디어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단어들이 또 있다. 문화, 유산, 전통 등이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문화, 유산, 전통 등이 자주 얘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급변하는 세상이 주는 공허감을 이를 통해 채우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한 사회의 문화와 유산, 전통은 그 사회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향해 갈 것인지를 보여준다. 사람들에게 ‘나는 누구인가?’를 알려준다.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아직, 문화와 유산, 전통이 많다. 세계적인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나 인류무형유산 지정이 계속되는 것도 이러한 상황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렇다는 것이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잃어버릴 수도 있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나는 누구인가’를 말해줄 소중한 자산을 상실해서는 안 될 것이다.  
판소리는 국내외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전통예술 중 하나다. 판소리를 통해서 예술적 감흥을 얻을 수 있고 우리가 살았던 모습, 가졌던 생각도 엿볼 수 있다. 판소리는 말 그대로 판에서 하는 소리다. 판과 소리를 길라잡이로 하여 판소리 여행을 떠나보자.

1. 판소리의 ‘판’
  ‘판’에는 판소리가 공연되는 현장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장소로서의 의미뿐 만 아니라 ‘한 판 벌어졌다’ 하듯이 그 안에서 일어나는 행위까지도 포함된다. 판소리의 판은 19세기에 가장 활발하게 벌어졌다고 한다. 17세기와 18세기에 태동기와 성장기를 거쳤고 20세기 들어서 서구 문물의 유입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변화를 맞이했다. 
  초창기 판소리는 광대놀음판에서 여러 놀음들과 함께 공연되었고 야외의 넓은 공간에서 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송만재의 『관우희』나 신위의 『관극절구』를 보면 야외에서 이루어지는 판소리 공연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넓은 공간에서 여러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동네 잔치판 같다. 18세기와 19세기를 거치면서 양반층도 판소리를 자주 즐기게 되었다. 주로 야외에서 벌어졌던 판소리의 ‘판’은 양반집 마당이나 사랑채와 같은 실내공간으로도 영역을 확장했다. 장소의 변화는 내용의 변화도 가져왔다. 왁자지껄한 잔치판에서 다른 광대놀이와 함께 연행되다가 실내공간으로 들어오게 되니 소리꾼의 소리 한 자락, 행동거지 하나까지도 자세히 감상하게 되었다. 이를 감상하는 양반층은 나름의 감상평을 하게 되었고 소리꾼은 그것을 고려하게 되었다. 새로운 청중인 양반층이 선호하는 방향도 판소리의 ‘판’에 담기게 된 것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판소리가 예술적으로 깊어지는 계기였다고도 하고, 어떤 이들은 판소리 열두 바탕소리가 양반들의 구미에 맞는 다섯 바탕소리만 남게 되는 원인이었다고도 한다.  
설은 분분하지만 분명한 것은 판소리를 서민층과 양반층 모두가 즐겼으며, 다양한 장소에 서 다양한 관객을 충족시키는 예술이었다는 점이다.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많이 회자되어 있는 민담이나 설화가 가사가 되고, 친숙한 민요나 무속음악을 음악적 자양분으로 삼았다. 제례악이나 정악을 즐기는 이들이 왕족이나 양반계층에 한정되었던 것과는 다르게 판소리는 서민이나 양반 계층 그리고 왕족까지도 폭넓게 즐기는 대중적인 예술이었다.


2. 판소리의 ‘소리’
판소리의 소리는 단가와 바탕소리가 있다. 단가는 바탕소리를 하기 전에 목을 푸는 소리다. 소리꾼이 청중에게 자신의 기량을 미리 맛보게 하는 소리이기도 하다.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하는 <사철가>도 있고, ‘함평천지 늙은 몸이 광주 고향을 보랴 하고’ 로 시작하는 <호남가>도 있다. 약 60편의 단가 가사가 전해지고 있다. 단가가 바탕소리에 비해 짧다고 해서 쉬운 소리는 아니다. 어느 판소리인에게 단가 배우기가 쉽냐고 물어보니 “단가에는 기교가 압축되어 있고 가사 역시 어려운 내용이 많아 배우기 쉽지 않다”고 했다.  
판소리의 바탕소리는 열두 바탕소리였다고 한다. 판소리 연구의 고전이 되고 있는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는 열두 바탕소리가 “1)장끼타령 2)변강쇠타령 3)무숙이 타령 4)배비장 타령 5)심청전 6)흥보전(박타령) 7)토별가(수궁가, 토끼타령, 별주부타령) 8)춘향전 9)적벽가 10)강릉매화전 11)숙영낭자전 12)옹고집”이라고 소개 되었다.
1800년대 말에 판소리 이론가이자 후원자인 신재효에 의해 여섯 바탕의 사설이 정리 되었다. <춘향가>, <박흥보가>, <심청가>, <토별가>, <적벽가>, <변강쇠가>이다. 19세기에서 20세기를 거치는 사이 <변강쇠가>가 불리지 않게 되었다. 현재는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춘향가>, <흥보가>,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 이상 다섯 바탕소리가 전해지고 있다. 
판소리의 장르는 무엇일까? 이를 두고 학계에서는 많은 논쟁이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판소리의 장르는 판소리다’라는 게 다수의 의견이다. 서양의 장르개념으로는 판소리를 규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음악적 깊이와 문학적 가치, 연희의 기교가 종합적으로 어우러져 있으니 규정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판소리 바탕소리 하나를 모두 부르는 것을 판소리 완창이라고 한다. 짧게는 두세 시간부터 길게는 여덟 시간 이상 걸린다. 판소리 사설집은 웬만한 장편소설 분량이다. 수십 년에 걸쳐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질 만큼 사설의 문학적 가치가 뛰어나다. 판소리의 ‘소리’에는 많은 장단과 선율이 담겨있다.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엇모리 등이 대표적인 장단이고 셀 수 없이 많은 변형과 기교가 존재한다. 이를 토대로 희노애락을 표현하는 다양한 선율들이 펼쳐진다. 장단과 선율은 소리꾼이 가진 각양각색의 성음을 따라 더욱 풍부해진다.


판소리를 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의 수련이 필요하며 가르쳐 줄 스승도 있어야 한다. 이러한 판소리의 학습은 무대에 서서 청중을 만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판소리의 ‘소리’는 전문예술로서의 ‘소리’다. 김매기 소리 같은 민요도 ‘소리’이지만 청중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소리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구분이 없다. 또한 일을 하기 위한 소리다. 판소리처럼 소리 그 자체를 위한 것은 아니다. 부르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구분이 되고, 청중에게 보여줄 것을 전제로 전문적인 수련을 통해 만들어낸다는 점이 판소리 ‘소리’의 특징이라고 하겠다.

3. 오늘의 판소리
오늘날에는 판소리를 활용한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근대시기 만들어진 창극은 오늘날 소재와 형식이 더욱 풍부해지고 있고 기발한 발상의 창작판소리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다른 장르의 음악과 만나는 크로스오버(crossover) 공연도 자주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시대를 대표하는 더늠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더늠은 판소리 명창의 예술적 특장점으로서 독창적인 소리와 사설로 구성된 판소리 대목을 말한다. 권마성을 활용한 덜렁제가 나오는 권삼득(權三得)의 <놀보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이나, 이동백의 <새타령>, 임방울의 <쑥대머리> 등은 시대를 대표하는 더늠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더늠은 당시의 생활상을 담는다. 권마성은 높은 지위의 사람이 말이나 가마를 타고 지나갈 때 수행하는 이들이 외치던 소리다. 당시 생활 속에 있던 소리가 권삼득의 더늠에 실리게 되었다. 또한 더늠은 예술적 경쟁을 위한 비장의 카드다. 판소리는 사제간에도 기량을 견제할 만큼 예술적 경쟁이 치열하다. 여러 판소리인들 사이에서 자신을 내세울 수 있는 무기가 바로 더늠인 것이다.
하지만 더늠에 생활의 소리를 담을 수 있고 판소리인들의 예술적 경쟁이 활발하기 위해서는 판소리가 번성해야 한다. 찾는 이가 많고 부르는 이도 많아야 한다. 대중적인 예술이어야 한다. 냉정하게 말하면 오늘날 판소리를 대중적인 예술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매니아가 찾는 예술이고 국가적 보호를 필요로 하는 예술이다. 문화재 제도와 같은 보호장치가 없다면 자생성을 쉽게 장담하기 힘들다. 국악연구자 이소영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 국악은 “새로운 새것이 아니면 고물” 취급을 하는 시대적 편향과, 전통이라는 보호막에 머무르려 하는 과거지향적 편향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참 적절한 진단이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술이 출연하고 소비할 물건이 만들어지며 문화적 유행이 번져간다. 어제의 것이 오늘에는 이미 낡은 것이 되어 사람들이 돌아보지 않게 된다. 어제의 것은 버려지고 사람들은 또 새로운 것을 찾는다. 그 속에서 국악은 변화를 고민하거나 아니면 전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옛 모습을 고수하거나 또는 그 중간지점 어디엔가 머물게 된다. 판소리는 어디 쯤 있을까? 위험한 줄타기가 아닌 튼튼한 대로를 달리기 위해서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이 머리를 맞댈 때다. 조세훈(전라북도립국악원 교육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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