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영화. 백학기의 인생을 설명하자면 이 두 개념을 빼놓을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중학교 시절부터 문예반 활동을 해오다가 중고교 교사와 전라일보 기자를 거쳐 등단하는가 하면 세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어디 그 뿐인가. 연출가와 배우로 영화계에 진입, 여러 작품에 꾸준히 출연하고 있으며 현재 서울디지털대 객원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10년 넘게 영화에 더 몰두하며 문학에의 갈증이 커진 게 사실이고 더 이상 서점에서 만날 수 없는 작품을 찾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그런 이유로 문단에 데뷔한 지 35년, 첫 시집을 낸 지 30년만에 그간의 시집 3권을 엮은 시전집 ‘가슴에 남아 있는 미처 하지 못한 말’을 펴냈다. 20대 중반에 나온 첫 시집 ‘나는 조국으로 가야겠다(1990)’에서는 분단된 이 땅 한반도의 슬픔을 풀어냈다.

찢김의 비통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도 그 아픔을 보듬는데 감상이 아닌 의지로, 느낌이 아니라 세계관으로 구축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바 있다. 이어 두 번째 시집 ‘나무들은 국경의 말뚝을 꿈꾼다(1990)’에서는 누구나 겪을 법한 사랑과 상실의 아픔을 공감가면서도 새로이 그렸다.

세 번째 시집 ‘많은 날들이 지나갔다(2002)’에서는 삶과 죽음의 이미지를 사물에 비유한 허무의 세계를 형상화했다. 이렇듯 매번 다른 주제와 느낌으로 우리의 마음을 흔들었던 그의 시 200여편이 한 권의 책으로 엮여 눈길을 끈다.

‘흰소’ 연작시 10편과 신동아 논픽션 수상작 ‘내 가슴에 남아있는 천하의 박봉우’도 만날 수 있다. ‘이후’라는 제목으로 뒤편에 실린 ‘흰소’는 시전집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한 지난 봄부터 여름까지 쓴 최근작으로 봄날 고향의 자주 가는 암자를 찾았을 때 얻은 깨달음에서 비롯됐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느끼곤 하는 존재론적 상황을 불교 심우도에 비유해 시적 이미지로 구현한다. 방황하는 자신의 본성을 발견하고 어떤 경지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야생의 소를 길들이는 데 비유해 10단계로 그린 심우도와 다른 듯 맞닿아있는데, 가령 아홉 번째 그림 반본환원(본래로 돌아감)의 불교적 선의 세계를 담은 ‘흰소 9’를 보면 그 광경을 먼 산에서 조망하듯 시화하고 있다.

작가는 “문학과 영화는 내 삶의 두 축이다. 젊은 날 열병을 앓으면서 시작된 두 방향의 행보는 지천명을 넘어 이순의 세월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그동안 충무로를 떠돌았다. 어렸을 때 꿈이자 오랜 소망인 영화판에서 성공은 못했으나 불운하진 않았다.”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문학의 경우 그동안 낸 3권이 서점에서 사라진 지 오래라 간혹 찾는 이들에게 적요한 기분이 들었다. 누구나 가슴에 남아있는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이 있듯 나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더클. 396쪽. 22,000원./이수화기자·waterflower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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