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미학의 융합··· '천하에 드문 명품'

<전북 문화아이콘 50선: 7. 전주한지> 권희성 기자l승인2015.10.07l16면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문화아이콘- 전주 한지
한지의 으뜸인 전주한지. 예로부터 한 장의 한지를 만들려면 사람의 손이 아홉 번 가고, 사용하는 사람의 손이 백번째 간다하여 일백자를 써서 백지라고 하였다. 그만큼 한지를 만드는 일이 힘들고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는 뜻일 것이다. 이러한 정성을 밑바탕으로 한 한지의 정통성은 전주가 중심부를 이룬다.

인류사회에 있어서 문화의 발달은 종이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우리나라의 종이인 한지는 예로부터 주변국가에까지 널리 알려졌으며, 특히 '닥'을 주원료로 하여 만들었기에 순우리말로 '닥종이'라고도 불리워 왔다.

이러한 한지가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는지 자세히 알수는 없지만, 기원전 2세기 중국 문경제년간 (179-141 B.C.) 무렵에 제작된 방마탄에서 출토 된 종이가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종이이며그 무렵에 우리나라에서도 종이생산 기술이 전해졌으리라 추측된다.

이후 서기 105년 중국 후한때 채륜이 종이를 개량한 시기와 비슷하게 우리 나라에서도 나름 대로의 창조적인 기술개량을 통해 종이생산에 힘써왔으며, 신라시대에 이미 중국에 희고 곱게 다듬은 종이가 수출되었으며 고려시대에 들어 수공업의 전문화와 인쇄술 · 제지술이 발달 하면서 더욱 질 좋은 종이를 수출하게 되었다.

특히 중국의 걸러뜨는 방식과 달리 외발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뜨는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희고 광택이 있으며 질긴 종이를 생산, 수출하여 중국뿐만 아니라 인접 지역에까지 널리 우리나라의 종이가 알려져 천하제일로 여겨졌다.

한지는 예로부터 시대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고, 색깔이나 크기, 생산지에 따라 다르게 부르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구분은 재료 · 만드는 방법, 쓰임새, 크기에 따라 나누어졌으며,   이에 따른 종이의 종류는 대략 200여종에 이르렀다. 이처럼 다양하게 생산된 종이는 주로 그림과 글씨를 쓰기 위한 용도로 가장 많이 소비되었고 일반 민중속에서는 다양한 공예 기법을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다양한 용도의 생활 용품과 장식적 아름다움을 표현한 예술로도 활용 되었다.

전주는 자타가 공인하는 종이의 본향이다. 전주에서 생산되는 한지는 한때 먼 일본과 중국에서까지 각광받는 최고의 문화상품이었다. 근대까지만 해도 전주는 전국 최대의 종이시장이었으며, 그 명성은 국제적이었다. 전주 한지 우수성은 보존성과 보온성, 그리고 통풍성과 투명성, 습기 흡수성 등 과학적 측면에서 돋보였다. 특히 천년 한지라는 마이 있을 정도로 장기적인 보온성은 뛰어나 오늘날의 과학도 이를 해명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여기에 미학적 측면에서도 자연스러움과 다양성, 형태적 유연성 등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전주한지의 역사는 아주 멀리 거슬러 올라간다. 백제시대인 4-5세기 전주에서는 종이가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고려와 조선조에 이르러서는 전주는 종이의 주산지로 널리 회자된다. 이미 고려 때부터 우리나라의 종이제조기술은 선진적이었다. 종이발명국인 중국조차 우리 한지를 수입해 아주 귀하게 사용했다.

이후 조선조에서도 전주는 종이를 언급할 때마다 떠오른다. 조선 전기 세종실록지리에 의하면 전주 등 전라도는 수많은 종류의 종이를 생산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재료인 닥나무 재배도 활발해서 종이산업의 메카로서 전라도가 당당히 자리매김했음을 알 수 있다. 전주 한지는 그 질이 아주 우수했다. 동국여지승람은 전주가 종이의 상품지라고 부르고 있다. 임원경제지도 전주 한지를 천하에 드문 명품이라고 소개했다. 전주가 이처럼 종이의 고장으로 명성을 떨친 것은 닥나무가 풍부하게 생산되고 양질의 용수도 확보하기 용이하다는 점이 꼽혔다. 여기에 전주 한지장인만은 꼼꼼한 숨결과 손길이 스며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전주한지는 1950년대 이후 쇠퇴기에 접어든다. 양지에 밀린데다 종이생산 기술의 전근대성으로 경쟁력을 잃은 것이다. 겨우 화선지로 명맥을 이어가던 전주한지는 최근들어 맥이 끊길 우려가 제기될 지경에 이르렀다. 여기에 값싼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산 한지들이 밀물처럼 밀려와 전주한지의 설 자리는 그만큼 좁아졌다.

그러나 전주한지는 지금 호기를 맞고 있다. 전주한지문화축제등으로 외형을 넓히며 한지산업지원센터가 입주, 내실을 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주 한지는 지금 한류의 미래이자 문화의 정수라고 평가받고 있다. 중국에서 열렸던 한지문화제나 외국 영사관에의 전주 한지 인테리어는 국제적인 관심을 끌었다. 전주한지의 브랜드가 확고해진 것이다.

특히 전주한지로 빚어낸 태극선, 합죽선은 이제 전주를 넘어 세계적인 전통공예품으로 주목을 받고 있으며, 현대적인 예술성으로 재창조는 한지공예품은 명품 이상의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전주를 상징하는 전주한옥마을에도 전주한지는 이제 새로운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관광상품이자 문화아이콘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제 한지를 살리고, 전주를 살리고 그것을 후손에게 물려줄 만한 가치로 만들어가야한다는 숙제도 있다. 전주한지의 명성은 이제 진행형이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전주의 명성에 한지가 있다는 자긍심과 함께 전주한지를 최고급의 명성으로 되살려내는 작업이 절실하다. 전통이 바로 미래라는 것을 전주 한지가 말해준다./권희성기자?khs@

 


권희성 기자  khs@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권희성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여백
여백
전라일보소개기사제보광고안내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55038]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전라감영로 75  |  대표전화 : 063)232-3132  |  팩스 : 063)284-0705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유 동 성
Copyright © 2021 전라일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