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수수께끼는 문화유적 곳곳에 남아있다. 과학으로 풀지 못하는 문화유산이 전라북도의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그래서 전라북도를 문화유산의 보고라고 말한다. 그 중 단연 문화유산의 보고로 칭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고창 고인돌유적이다. 유네스코로부터 강원도 강화, 전라남도 화순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적지다. 고인돌을 주제로 한 박물관이 있을 정도로 고창의 문화콘텐츠가 고인돌 유적지다.

고창군 일대에 분포된 고인돌 유적지는 살아있는 노천 박물관이다. 화려한 장식도 없이 넓은 들판에 앉아 있는 모습은 단연 압권이다. 세상에서 이렇게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조성된 노천박물관도 없을 듯 싶다. 전북을 대표하는 문화콘텐츠인 고인돌은 시공을 초월해 전북을 상징하는 문화유산으로 위치해 있는 셈이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무덤양식으로 우리나라에 대체로 3만여 기 이상이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중에서도 전남과 전북을 포함한 한반도 서남해안 지역에 밀집분포하고 있다.그 중에서 전라북도에 분포한 고인돌은 그동안 꾸준한 발굴과 조사가 이루어져 약 2,600여 기 이상의 고인돌이 분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창지역은 전북고인돌의 63% 이상인, 1,665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어 단일 구역으로는 한국에서 가장 밀집 분포된 사실로 유명하다.

고창 고인돌은 죽림리와 상갑리, 도산리 일대에 무리지어 분포하고 있다. 고창의 심장부와 같은 성틀봉과 중봉의 남사면에 산의 등고선 방향으로 위치하고 바로 앞은 고창천이 흐르고 있다. 죽림리 일대의 442기의 고인돌과 도산리 고인돌 5기를 포함하여 447기의 고인돌이 밀집분포하며 이는 세계적으로 그 사례가 드문 경우라 할 수 있다. 또한 숫자의 방대함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식, 이른바 탁자식과 변형탁자식, 기반식(바둑판식), 개석식 등 각종 형식이 혼재되어 있어 고인돌의 발생과 전개 및 그 성격 면에서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고창지역 고인돌 발굴조사는 1965년 국립박물관에 의해서 상갑리 고인돌 3기가 처음으로 조사되었으며, 1983년에는 고창 아산댐 공사로 인해 용계리와 운곡리에 걸쳐 22기의 고인돌이 조사되었고, 현재 원광대 학교박물관 정원에 이전 복원되어 있다. 그리고 1992년에는 고창 고인돌유적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목적으로 죽림리 2지구 3군의 16기의 고인돌이 조사되었다. 2003년 태풍 루사에 의해 죽림리 2419호 고인돌은 완전히 도괴 되었고, 2433호 고인돌은 유수에 의해 도괴의 우려가 있어 재해고인돌로 명명하고 2004년 원광대학교박물관에 의해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고창 고인돌유적은 단일 구역으로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군집을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식의 고인돌이 한 지역에 분포하며, 고인돌 축조과정을 알 수 있는 채석장의 존재 등 동북아시아 고인돌 변천사를 규명하는데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를 인정하여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등재기준 제3항(독특하거나 아주 오래된 것)을 적용, 세계유산적 가치를 인정했다.

고창고인돌유적지는 그 자체가 고인돌 박물관이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군집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2008년 현장 조사 결과 고창 지역에 총 1550여 기의 고인돌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중 447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고창 고인돌유적의 가장 큰 특징은 여러 가지 형태의 고인돌을 함께 접할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곳이라는 것이다. 바둑판식을 중심으로 탁자식과 지상석곽식, 개석식이 고르게 분포돼 있다. 그중에는 바둑판식과 개석식이 많지만 탁자식과 바둑판식의 중간 형태로 석관이 땅 위에 드러난 지상석곽식 고인돌도 많다. 이 고인돌은 고창에서만 볼 수 있다.

탁자식 고인돌은 하단부에 얇고 넓은 판석을 쓰고 상석 역시 판석형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시신이 매장되는 매장부를 지하가 아닌 지상에 둔 것으로 보는데 원래는 사면을 모두 막아 판석 자체가 석관의 기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바둑판식은 하단부를 판석이 아닌 굄돌을 쓴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석실을 지하에 만들고 4∼8개 정도의 굄돌을 놓은 다음 그 위에 덮개돌을 올려놓아 바둑판 형태를 하고 있다. 지상석곽식은 하단부에 탁자형 판석보다 높이가 낮은 판석을 쓰거나 여러 개의 판석을 덧대어 지상에 석곽이나 석관을 만들었다. 개석식은 한반도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고인돌로, 땅속에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커다란 돌만 올려놓은 형태를 말한다. 덮개돌은 10∼20t 정도로 작은 것도 있지만 큰 것은 200∼300t이 넘는 것도 있다.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지위와 경제력에 따라 고인돌의 규모도 달라졌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한반도의 고인돌은 주로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기원전 8∼7세기 이전에 시작됐다는 주장과 이르게 봐도 기원전 5세기를 넘을 수 없다는 주장 등 여러 견해가 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시기에 대해서는 초기 철기시대 움무덤이 등장하기 이전 즉, 기원전 2세기경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전북을 넘어 한국의 문화유산으로, 그리고 한국을 넘어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된 고창 고인돌 유적은 시대를 넘어 전북의 살아있는 고대문화의 힘을 보여준다.                                              /고창=신동일기자?s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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